12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사 피의자가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면, 권력의 자기방어 본능이 법의 독립성을 침식하게 된다. 지금의 혼란은 제도의 결함이 아니라, 그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결과다”-전 검찰총장
이 문장은 지금 한국 사법체계가 처한 현실을 압축한다. 법 위에 선 권력이 법을 재단하기 시작하면, 검찰의 독립성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2일 저녁에 밝힌 “지우려는 쪽과 지울 수 없는 쪽”이라는 발언은, 바로 그 생존의 갈등을 내부자의 언어로 드러낸 폭탄 선언이었다.
노 총장 대행의 발언은 단순한 언급이 아니다. 정권의 정당성과 검찰의 독립성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흔드는 발언이어서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그의 말이 공개된 직후, 여권은 “검찰의 정치화”를 언급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실상은 정권 내부의 긴장선이 한층 노출된 셈이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향후 어떤 형태로든 검찰 인사나 조직 개편을 통해 ‘통제 복원’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권에서는 이번 발언을 ‘정권의 수사 개입’ 내부 증언으로 간주하며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발언의 파장은 단순한 검찰 내부 갈등을 넘어, 향후 사법·정치 지형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정권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조직이 무너지고, 거부하면 해체된다”는 체념이 번지고 있다. 내년 10월 공수청으로 바뀔 예정이지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로 읽힌다.
반대로 정권 입장에서는 노 대행의 발언이 ‘정치적 도전’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어, 향후 고위 간부 인사 및 수사라인 재편 과정에서 긴장 국면이 불가피하다.
결국 노 대행의 발언은 정권이 검찰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구상 자체를 흔들고 있다. 검찰의 독립이 무너진 자리에 정치의 개입이 들어오면, 그 공백은 다시 새로운 저항과 균열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노만석의 발언은 그 경고의 신호탄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은 그 단적인 사례였다. 1심에서 일부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항소는 없었다. 법무부의 의견이 반영된 뒤 대검의 결론이 바뀌었고, 일선 공판팀과 중앙지검장이 반발했다. 내부망에는 집단 성명이 이어졌고, 검찰 조직은 스스로의 원칙을 지킬 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다. “지우려는 쪽과 지울 수 없는 쪽”이라는 노만석의 말은, 바로 그 경계에서 터져 나온 경고음이었다.
그의 퇴진은 단순한 인사 조정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법 앞의 평등 원칙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 시절의 기소가 ‘현 정권의 부담’으로 둔갑하는 순간, 검찰은 법의 집행기관이 아닌 정치의 부속물이 된다. 정권은 수사를 계산하고, 검찰은 그 압력 속에서 스스로의 자율성을 잃는다.
“제가 빠져줘야 조직이 빨리 정착된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조직의 자율성을 더는 지킬 수 없다”는 반어였다. 검찰총장 대행의 자리는 단순한 행정직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칼날을 쥔 손이자, 법의 무게를 견디는 어깨다. 이번 사퇴는 그 어깨가 정권의 손에 의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였다.
이제 검찰은 또 다른 대행 체제로 넘어간다. 그러나 본질은 인사가 아니다. 법을 지우려는 자와 법을 지킬 수밖에 없는 자 사이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노 대행의 퇴진은 종결이 아니라, 검찰 독립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신호일 뿐이다.
〈노만석 발언 전문〉연합뉴스 기사 발췌
• 사퇴 배경과 심경
“사실 제가 한 일이 비굴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검찰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입니다.”
“제가 빠져줘야 (검찰 조직이) 빨리 정착된다고 생각해서 빠져 나온 겁니다.”
“이 시점에서는 ‘잘못한 게 없다’고 부득부득 우겨서 조직에 득이 될 게 없다 싶어서, 이 정도에서 빠져주자 이렇게 된 겁니다.”
• 조직 내 갈등과 고뇌
“4개월 동안 차장을 했던 것이 20년 검사 생활보다 더 길었고, 4일 동안 있었던 일이 4개월보다 더 길었습니다.”
“어제는 천 번 만 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 정권과의 관계, 조율의 어려움
“전 정권이 기소해놨던 게 전부 다 현 정권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현 검찰청에서는 저쪽(현 정권)에서 요구사항을 받아주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쪽에서 지우려고 하고, 우리(검찰)는 지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시로 많이 부대껴왔고, 조율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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