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① 지방선거 동시실시, 참여 확대인가 투표율 계산인가
② 헌법 전문에 부마·5·18, 추모인가 정통성 재서술인가
③ 계엄 승인권 개헌, 재발방지인가 의회 우위 개헌인가
④ 부칙의 한 줄, 경과규정인가 1심 논리의 정당화 효과인가
⑤ ‘균등한 삶의 질’의 함정, 지역발전인가 국가주의의 헌법화인가
⑥ 종합- 무엇이 문제인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3일 국회 집무실에서 발의를 앞둔 헌법개정안을 들고 제정당 원내대표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① 지방선거 동시실시, 참여 확대인가 투표율 계산인가
지방선거와 묶지 않으면 어렵다는 말은 개헌안 독자 동력 약하다는 뜻 높아지는 것은 국민투표 참여만이 아니라 지방선거 투표율일 수 있어 왜 개헌은 지방선거에 기대고, 왜 지방선거는 다시 개헌에 올라타야 하나 |
이번 개헌안을 둘러싼 첫 번째 쟁점은 내용보다 절차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방선거와 함께하지 않으면 투표율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고, 발의안 제안이유 역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면 “국민 참여를 높임과 동시에”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 문장 하나로 이번 개헌 추진의 계산은 거의 드러난다. 개헌안 자체의 설득력보다 먼저 계산되는 것이 투표율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투표율이 이처럼 중요한가.
헌법 제130조 제2항은 헌법개정안이 확정되려면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모두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현행 국민투표법 제50조 제1항도 같은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개헌은 단순히 찬성이 반대보다 많으면 되는 절차가 아니다. 유권자 절반 이상이 실제로 투표장에 와야 비로소 성립 심판이 시작된다. 이 높은 문턱은 장식이 아니다. 광범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 없이 최고 규범을 바꾸지 말라는 헌법의 의사다.
이 점에서 우 의장의 발언은 꽤 솔직하다.
“전국 선거와 함께하지 않으면 투표율 문제가 생긴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별도 국민투표로는 그 과반 문턱을 자신하기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곧 개헌안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개헌안이 독자적으로 국민을 움직여 과반 투표를 만들어낼 동력은 아직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은 된다.
헌법 개정이 정말 국민적 요구라면, 왜 지방선거의 기본 참여율에 기대야 하느냐는 질문이 여기서 나온다.
과거 개헌 국민투표는 투표율 자체가 문제였던 적이 없었다.
중앙선관위 선거역사관에 따르면 역대 헌법 개정 국민투표 투표율은 1962년 85.3%, 1969년 77.1%, 1972년 91.9%, 1975년 79.8%, 1980년 95.5%, 1987년 78.2%였다. 모두 50%를 크게 넘겼다.
반면 최근 지방선거 투표율은 2014년 56.8%, 2018년 60.2%, 2022년 50.9%였다. 결국 이번 동시실시 구상은 개헌안 자체의 독자적 동원력보다 지방선거의 기본 투표율에 기대어 헌법상 성립 문턱을 넘기겠다는 계산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구상은 단순히 국민투표율을 높이려는 방안이 아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개헌 국민투표가 지방선거의 참여율에 기대는 동시에 지방선거 역시 개헌 이슈의 동원 효과를 빌려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구조가 된다.
원래 지방선거는 지역 행정과 지방의회, 교육감 선거를 중심으로 지역 현안을 묻는 선거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개헌이라는 전국 단위 정치 의제를 얹는 순간, 지방선거는 지역 대표를 뽑는 자리가 아니라 전국 정치의 동원장으로 성격이 바뀔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지방선거 투표율을 높이려 하는가. 지방선거는 본래 지역 일꾼과 지역 권력을 선택하는 절차다. 그런데 개헌을 얹어 전국적 정치 이슈를 결합하면, 지역선거는 지역 판단보다 정권 찬반이나 전국 정치 구도에 더 크게 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지방선거를 개헌의 우산 아래 넣는 것은 개헌 성립 문턱을 넘기기 위한 계산일 뿐 아니라, 지방선거 자체의 참여율과 정치적 열기까지 함께 끌어올리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결국 “국민 참여 확대”라는 표현 뒤에는, 사실상 지방선거까지 정치 동원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흔히 나오는 반론은 동시실시가 참여 편의를 높이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형식적으로는 맞다. 한 번의 선거일에 여러 투표를 함께 치르면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고, 유권자 입장에서도 편의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개헌 국민투표는 일반 선거와 다르다. 후보를 뽑는 경쟁이 아니라 헌법이라는 최고 규범을 바꾸는 행위다. 그래서 헌법은 일반 선거보다 더 높은 성립 요건을 둔다.
이런 문턱을 넘기기 위해 별도의 국민적 열기 대신 지방선거의 기본 참여율을 가져다 쓰고, 나아가 지방선거 자체도 개헌 이슈로 덧씌워 동원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편의의 언어로 포장된 계산일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국민의 거부권”이라는 표현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법적으로 불참이 곧 반대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의 뜻을 모두 반대로 읽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는 그렇게 설계돼 있다.
개헌안이 확정되려면 과반 투표가 필요하므로, 불참은 결과적으로 개헌을 성립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불참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헌법이 예정한 소극적 저지 기능으로도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선거와의 동시실시는 국민의 적극적 반대만이 아니라, 투표하지 않음으로써 개헌을 성립시키지 않는 선택까지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국 이번 개헌 추진을 둘러싼 첫 번째 팩트는 이것이다.
헌법은 개헌에 높은 문턱을 걸어 두었고, 그 문턱은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확인하는 장치다.
그런데 별도 국민투표로는 그 문턱이 불안하다고 보고 지방선거와 묶겠다는 순간, 개헌안 자체의 독자적 국민동력은 약하다는 자백이 된다.
더 나아가 그 결합이 결과적으로 지방선거 투표율까지 함께 끌어올리는 구조라면, 이것은 단순한 참여 확대가 아니라 계산된 동원이다.
왜 개헌은 지방선거에 기대야 하고, 왜 지방선거는 다시 개헌에 올라타야 하는가. 이번 개헌안의 첫 번째 문제는 바로 그 점이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 추모제 [사진=연합뉴스]
② 헌법 전문에 부마·5·18, 추모인가 정통성 재서술인가
현행 전문은 3·1운동, 임시정부 법통, 4·19 민주이념만 적시 개정안은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을 추가 문제는 기념이 아니라 특정 역사 해석을 헌법 문장으로 고정하는 일 |
이번 개헌안에서 많은 관심은 계엄 조항과 부칙에 쏠려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가장 오래 남을 문장은 따로 있을 수 있다.
바로 헌법 전문 개정이다.
발의안은 현행 전문 중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이라는 부분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으로 바꾸겠다고 적고 있다.
발의안은 이를 이번 개헌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며, 현행 전문이 4·19혁명 이후 민주주의의 역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이 조항을 단순한 기념 문구 추가로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헌법 전문은 추모문이 아니다. 전문은 국가가 어떤 역사적 경험을 자신의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지, 헌법 질서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 선언하는 문장이다.
한 사건을 전문에 넣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역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선택한 헌법적 역사서술이 된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의 전문 조항은 단순한 보완이 아니라 국가 정통성의 계보를 다시 쓰는 작업으로 읽어야 한다.
발의안 제안이유도 이 점을 숨기지 않는다.
제안이유는 4·19혁명에서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적시하면서, 그 정신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단순히 빠진 이름을 넣자는 차원이 아니다. 현재의 헌법 질서가 무엇을 계승하는지, 어떤 정치적 기억을 헌법 차원에서 승인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바로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하필 부마와 5·18인가. 이 질문은 두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을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헌법 전문이라는 최고 수준의 국가 문장에 올릴 때는 더 높은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떤 사건을 전문에 넣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기억이 아니라 헌법 해석과 정치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장이 된다.
다시 말해 이번 개정안은 역사적 추모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민주화 서사를 국가 정통성의 공식 계보로 확정하려는 것이다.
혹자는 5·18은 이미 진상이 규명된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이다.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 아래 특별법이 제정됐고, 국가 조사기구가 만들어졌으며, 5·18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는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다시 말해 오늘의 ‘규명’은 열린 질문과 자유로운 검증의 결과라기보다, 권력이 법률과 제도를 통해 공식 결론을 고정해 온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2021년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허위사실 유포 처벌 조항을 두고 있고, 별도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은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설치와 조사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이 문제를 더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이번 개헌안이 스스로를 “합의 가능한 범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개헌”이라고 설명한다는 점이다.
발의안은 여러 차례 전면 개헌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고 여야가 이견 없이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을 중심으로 단계적 개헌을 추진한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개헌안이 전문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가장 정치적이며, 가장 해석이 갈릴 수 있는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
계엄 조항이나 국민투표 절차는 제도 문제로 설명할 여지가 있지만, 전문 개정은 제도 보완이 아니라 역사 인식의 문제다. “최소 개헌”이라는 이름과 전문 개정은 쉽게 조화되지 않는다.
현행 전문이 이미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이념을 적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것은 87헌법이 국가 정통성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구조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그 구조를 단순히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다시 편집하고 있다. 4·19 뒤에 부마와 5·18을 붙임으로써 현대 민주화의 계보를 재정렬하는 것이다.
편집은 언제나 선택을 수반한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는가, 어느 사건을 헌법적 계승의 대상으로 삼고 어느 사건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국가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이번 전문 개정은 바로 그 선택의 문제다.
여기서 더 본질적인 의문이 나온다.
헌법 전문은 국민 전체를 묶는 최소한의 합의 문장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 해석을 더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방향으로 계속 확장돼야 하는가.
만약 후자라면, 앞으로도 다른 역사적 사건을 넣자는 요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다른 민주화 사건을, 누군가는 산업화의 공로를, 누군가는 전쟁과 안보의 기억을 헌법 전문에 넣자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헌법 전문은 정통성의 압축 문장이 아니라 시대마다 다시 쓰는 기억의 목록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 점은 전문 개정이 단순한 상징 정치가 아니라, 국가가 기억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해석을 헌법으로 봉인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전문 개정의 쟁점은 “부마와 5·18이 중요하냐 아니냐”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가 특정 역사 해석을 헌법 문장으로 고정하는 것이 과연 통합에 도움이 되느냐는 점이다.
헌법 전문은 추모의 벽이 아니다.
국가가 스스로를 어디서 왔고 무엇을 지키는 공동체로 정의하는 문장이다. 그런 자리에 새로운 사건을 추가하는 일은 언제나 정치적이고, 언제나 선택적이며, 언제나 후대의 해석을 묶는다.
그래서 이번 전문 개정은 가장 상징적인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오래 남는 정치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조항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③ 계엄 승인권 개헌, 재발방지인가 의회 우위 개헌인가
현행 헌법은 ‘국회 통고’와 ‘해제 요구’ 구조 개정안은 ‘국회 승인’과 ‘즉시 효력 상실’ 구조로 전환 문제는 계엄 통제 강화가 아니라 권력균형과 비상 대응 능력의 변화다 |
이번 개헌안의 실질적 본체는 제77조 개정이다.
발의안은 현행 헌법의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로 바꾸고, 승인이 부결되거나 계엄 선포 후 48시간 안에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엄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고 적었다.
또 현행 헌법이 국회의 ‘해제 요구’와 대통령의 ‘해제 의무’를 두고 있는 것과 달리, 개정안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해제를 의결하면 계엄이 즉시 효력을 상실하도록 바꿨다. 통고-요구 구조를 승인-실효 구조로 갈아엎는 것이다.
발의안 제출 측은 그 이유도 분명히 적어 놓았다.
제안이유는 12·3 비상계엄을 직접 거론하며, 현행 헌법은 위헌·위법한 계엄 시도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하고, 계엄군이 국회를 봉쇄하거나 다수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할 경우 국회의 계엄해제요구 절차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래서 계엄해제요구권을 해제권으로 강화하고, 승인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명만 놓고 보면, 이번 개정은 “다시는 그런 계엄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재발방지 장치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조항을 거기서 멈춰 읽으면 절반만 본 셈이다.
현행 헌법도 이미 국회에 계엄 해제 통제권을 부여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엄의 발동 이후 존속 자체를 국회 승인 구조에 묶었다.
이 변화의 의미는 단순한 절차 보강이 아니다. 대통령의 비상권을 의회의 사후 승인 질서 안으로 밀어 넣는 권력구조 조정이다. 발의안 스스로도 이를 “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 강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는 삼권분립의 형식 논쟁이 아니라 권력균형의 실질 문제로 넘어간다.
우리 헌정질서에서 국회는 이미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소추권을 가진다. 헌법 제65조 제3항은 탄핵소추 의결만으로 피소추자의 권한행사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윤석열은 2024년 12월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87헌법 체제는 대통령 권력을 풀어놓은 체제가 아니었다. 전두환·노태우는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형확정 판단을 받았고, 이명박은 2020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박근혜와 윤석열 두 현직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반면 대통령에게는 국회해산권이 없다. 이런 구조에서 비상권마저 국회 승인에 종속시키면, 이는 단순한 남용 방지 장치를 넘어 대통령제의 권력추를 한 번 더 의회 쪽으로 기울이는 조정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비상사태 대응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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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사태는 본질적으로 신속한 판단과 즉각적 대응을 요구한다. 그래서 계엄은 평상시 행정권과 다른 특별한 헌법상 비상권으로 설계돼 왔다.
그런데 그 발동 이후 존속을 국회 승인 구조에 묶어 버리면, 앞으로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비상 대응의 연속성이 다수당의 정치적 판단이나 의회 대치 상황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진다.
계엄 남용을 막겠다는 명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명분만으로 헌법 조항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통제 장치를 하나 넣을 때마다, 그 장치가 실제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대응 능력을 얼마나 약화시킬 수 있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헌법은 남용 방지 장치이면서 동시에 국가 기능 보전 장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위험한 역설을 품고 있다. 위헌적 계엄을 막겠다고 하면서도, 정당한 비상 대응까지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승인 없이는 비상권의 존속이 불가능한 구조라면, 실제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과 행정부는 사태의 성격과 속도보다 의회 다수파의 정치적 계산을 먼저 의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헌법은 비상권 남용을 막는 장치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비상사태 대응 자체를 마비시키는 장치로도 작동할 수 있다.
통제와 무력화는 한 글자 차이지만, 국가 운영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재발방지의 명분만이 아니다.
다수당의 의회 독주가 대통령과 행정부를 어떻게 무력화할 수 있는지를 이미 목도한 상황에서, 계엄권까지 국회 승인 구조에 묶는 개헌이 과연 권력균형에 부합하느냐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현행 헌법은 국회에 탄핵소추권을 주면서도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은 부여하지 않았다. 이런 구조에서 계엄의 발동과 존속까지 국회 승인에 종속시키는 것은 위헌성 여부를 떠나, 대통령제의 비상권을 의회 우위 질서 쪽으로 한 걸음 더 밀어 넣는 개헌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제77조 개정의 쟁점은 계엄 통제 강화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 통제 방식이 현재의 대통령제 권력균형을 어떻게 바꾸고, 동시에 국가의 비상 대응 능력을 어디까지 흔들 수 있느냐에 있다.
재발방지라는 말은 쉽게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헌법은 좋은 명분만으로 고치는 문서가 아니다. 그 명분이 실제로 어느 권력에 더 큰 힘을 실어 주는지, 그리고 국가의 위기 대응 구조를 얼마나 약화시킬 수 있는지까지 끝까지 따져야 한다.
그 점에서 이번 계엄 승인권 개헌은 단순한 예방 조항이 아니라, 권력구조와 국가기능을 함께 건드리는 중대한 개헌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