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선 사림파의 경제 정책: '무본억말'과 절대적 빈곤 사회
글쓴이 : 대연림
작성일 : 25-12-04 19:33
조회수 : 100

조선 사림파의 경제 정책: '무본억말'과 절대적 빈곤 사회

1. 사림이 상업을 억제한 표면적 이유: 고려의 망국에 대한 반성

사림파의 핵심 경제 정책은 '무본억말(務本抑末)', 즉 농업(본, 本)을 힘쓰게 하고 상업(말, 末)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경제의 파이를 키우고 국부를 증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상업과 무역임에도 사림은 상업 발달을 적극적으로 억제했다.

무본억말을 선택한 표면적 이유는 선행 왕조인 고려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었다. 사림은 고려가 상업을 진흥해  화려하고 문란한 생활을 즐긴 결과, 사회가 탐욕에 찌들고 도덕이 무너져 결국 망국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조선이 고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상업을 천시하고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2. 무본억말의 근본 이유: 성리학적 지배 질서 유지

그러나 사림이 무본억말을 고수한 더 근본적 이유는 성리학적 지배 질서의 유지에 있었다.

성리학 질서에 대한 도전 차단: 상업과 교역이 발달하여 상인이나 농민이 부를 축적하게 되면, 그 경제력은 곧 성리학적 신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림은 이를 두려워했고, 부가 순환하는 길을 막아 잠재적인 도전자들을 원천 봉쇄하고자 했다.

'순후한 덕성' 강조: 사림은 백성들이 부자가 되기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며 순후한 본성을 유지하는 도덕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순후한 본성'이란 사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성리학적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림은 재화의 생산과 유통, 무역을 통해 경제적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그로 인해 초래될 '도덕적 타락'(즉,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의문과 도전)이 더 큰 문제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라의 문을 닫고 무역을 통제했다.

3. 무본억말의 결과: 절대적 빈곤 사회와 통치술

산업을 키우지 않고 무역을 포기한 채 오로지 농업 위주의 도덕 경제 정책만을 고수한 결과, 조선은 절대적 빈곤 사회가 되었다.

국민의 절대적 빈곤: 극소수의 명문가와 중인을 제외하면 대다수 백성이 극도로 가난했고, 이는 곧 국가 재정의 허약함으로 이어져 국방력 확충이나 경제력 확대는 꿈꾸기 어려웠습니다.

빈곤을 통한 순응 유도: 사림은 백성들의 풍요로운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금 배고프더라도 백성의 덕성이 순후한' 도덕 경제를 추구했다. 사림이 원하는 절대적 빈곤은 다음과 같은 통치술로 작용했다.

집단적 체념 유도: 모두가 다 같이 가난한 사회에서는 계층 이동의 욕구가 좌절되고, 사람들은 현 상태를 받아들이고 체념하며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권력에 대한 순응: 돈 버는 길을 막아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고, 배급이나 구휼에 의존하게 만들어 성리학적 질서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림의 통치술이었다.

4. 오늘날 좌파에게 계승된 사림의 통치술

이처럼 '가난하게 만들어 권력에 도전하지 않고 순응하게 만드는' 사림의 통치술은 오늘날 좌파 정치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서민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각종 정책을 내놓지만, 실제로는 계층 사다리를 걷어차고 영원한 서민으로 남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즉, "돈을 벌어 부자가 될 수 있는 길" 대신 "다 같이 임대주택에 사는 평등한 세상"을 프레임화하여, 국민들을 집단적 체념과 무기력 속에 빠뜨리고 권력이 주는 혜택에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배고픈 공산주의 사회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 국보법 폐지 주장은 반역을 모의하는 것과 같다.
  •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 정치
댓글
유니세프-기본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