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의 생태, 문화, 역사 자원을 눈으로 확인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DMZ 평화의 길’. [사진=임요희 기자]
‘DMZ 평화의 길’이 민간에 개방된 것은 정전 협정 65년 만인 2018년의 일이다. 비무장지대(DMZ)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현장이자 자연 생태계의 보고이면서 남북 간 군사적 충돌 위험이 상존했던 곳이다.
그러던 2018년 남북 간 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고 민간에 개방했다. 평화의 길은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의 생태, 문화, 역사 자원을 눈으로 확인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어 ‘외국인이 꼭 가보고 싶은 한국 여행지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반도 DMZ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냉전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꼭 가보고 싶은 한국 여행지 1위
강화, 김포, 고양, 파주,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의 10개 접경지역 가운데 동부 전선에 속하는 고성 코스는 남방한계선까지 접근 가능하다.
통일전망대의 뒷 모습(왼쪽)과 앞 모습. ‘DMZ 평화의 길’ 탐방자에게는 뒷 모습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사진=임요희 기자]그동안 민간인이 출입할 수 있는 최북단 지대는 고성통일전망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DMZ 평화의 길’ 출구를 통해 해안을 따라 비무장지대 코앞까지 걷는 게 가능해졌다. 고성통일전망대로부터 1612m나 더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코스는 고성 통일전망대 → 해안 전망대 → 통전터널 → 남방한계선으로 이어지며 동해의 아름다움과 분단 현실을 동시에 느껴 볼 수 있는 장소로 동선이 구성된다.
평화의 길은 그 이름이 지닌 무게만큼이나 출발부터 녹록하지 않다.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고를 마친 뒤 제진검문소에서 군부대 확인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고성통일전망대 출입이 허락된다. 일련의 과정을 다 밟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여유 있게 길을 나서는 게 좋다. 코스 예약자 20명이 집결해 동시에 출발하기에 집합 시간(오전 10시, 오후 2시 출발)에 늦으면 바로 낙오다.
DMZ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지만 초입 해안전망대에서는 예외적으로 셔터를 누를 수 있다. 탐방객들은 또 언제 와보겠냐며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부지런히 인증 사진을 남긴다.
평화의 길 트래킹에는 군인 2명과 해설사 2명이 동반한다. 해설사는 출발 전 절대 철책을 건드리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과거에는 군인이 24시간 보초를 섰지만 요즘에는 센서가 대신 보초를 선다. 철책을 건드리는 즉시 군병력이 출동하면서 투어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길은 있지만 갈 수 없다! 동해북부선, 금강산육로
해안전망대를 지나면 통전터널을 관통하는 동해북부선 철길을 만나게 된다. 동해북부선은 양양에서 원산에 이르는 192㎞ 거리를 한 줄로 잇는 철도다. 6·25전쟁 때 파손된 것을 남북이 협의해 2007년 제진역에서 북한 금강산 청년역까지 25.5㎞를 복원해 시험 운행했다.
해안전망대를 지나면 동해북부선 철길이 통과하는 통진터널이 나타난다. [사진=임요희 기자]
[국방부 자료사진]
동해북부선 복구사업은 한반도를 넘어 유럽까지 기차로 내달릴 수 있다는 큰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이듬해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철길 옆으로 7번 국도의 연장인 ‘금강산 육로’가 나란히 지난다. 한때 저 도로를 따라 20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금강산 유람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길은 한적하고 쓸쓸하다.
파도는 무심하게 철썩이는데 무엇에 압도된 것일까. 바닥에 바짝 엎드린 해당화가 조심조심 붉은빛을 토해낸다. 탐방객들은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남한 최북단 교량인 송현1교, 송현 2교를 지난다. 다리 밑으로 전차의 진입을 막는 육중한 철문이 내려져 있다. 큰비가 내릴 때만 홍수에 대비해 문을 개방한다고 한다.
마음으로 그려보는 북방한계선
평화의 길 탐방은 통일전망대로부터 1612m 더 들어간 ‘남방한계선’에서 끝이 난다. 바로 앞 ‘송도전망대’까지만이라도 갔으면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동해로 비죽이 튀어나온 해금강도, 말머리 반도도, 바다 위에 점점이 뿌려진 섬도 잡힐 듯하지만 갈 수 없다.
해안전망대. [사진=임요희 기자]
맑은 날 고성 통일전망대에 서면 멀리 금강산 자락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맨 왼쪽 봉우리에 고성 GP가 있다. 그 옆 경사면을 따라 가다가 한 번 융기한 곳에는 북한군 초소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줄기가 금강산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일출봉, 채화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 [사진=임요희 기자]
금강산 가장 동쪽 봉우리 구선봉(낙타봉) 기슭에 있다는 북방한계선과 그 아래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깃든 호수 ‘감호’는 상상으로만 그려볼 뿐이다.
고성 코스는 회차별 정원이 20명이다. 주 5회 화·수·금·토·일에만 하루 2회(오전 10시, 오후 2시) 운영한다. 참가비는 1만 원이지만 투어가 끝난 후 기념품을 증정하므로 돈은 상징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혹서기와 혹한기를 제외한 4월17일부터 11월 말까지 운영한다.
고성 코스를 완주한 후에는 인근 금강산전망대 코스에도 도전해 보자. 고성 코스와 똑같이 고성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하지만 차량을 이용해 남방한계선 너머 금강산전망대까지 이동한다. 고성 코스가, 오래 걸어야 하는 특성상 7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 비해 금강산전망대코스는 차량을 이용하므로 나이 제한이 없다.
▲ 비무장지대에선 정말 무장하면 안 되나
한반도 비무장지대는 1953년 정전 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총 4km 폭의 완충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무장한 채 대치하고 있는, 가장 중무장된 지대다.

‘DMZ 평화의 길 고성코스(위)와 금강산코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