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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문학의 세계와 사상’ ⑰거부 반응의 상실
  • 松山 작가
  • 등록 2026-07-02 19: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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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관점이 불쾌해지는 이유

레이 브래드버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화씨 451’. [영화 스틸] 

문학은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는가보다 무엇을 견디지 못하는가를 더 자주 묘사한다. 어떤 사람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사상이 인간의 내면을 깊이 점령하기 시작하면 또 하나의 변화가 나타난다. 다른 생각 자체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논쟁은 가능하지만, 존재 자체는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낯선 주장에 의문을 품는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누구나 익숙한 세계가 흔들리면 긴장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긴장은 불쾌감으로 바뀌고, 불쾌감은 적개심으로 변한다. 상대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존재가 자신의 정신적 질서를 흔들기 때문이다.

 

이 심리를 문학은 오래전부터 예리하게 포착했다.

 

책은 질문을 만들고, 질문은 확신을 흔든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이 금지된 이유는 종이가 위험해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설 속 사회는 갈등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없애는 길을 선택한다. 책은 질문을 만들고, 질문은 확신을 흔든다. 그래서 가장 쉬운 해결책은 질문 자체를 태워 버리는 것이었다.

 

브래드버리가 경고한 것은 검열만이 아니었다. 인간은 평온을 위해 스스로 사고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원하는 순간, 자유로운 정신은 가장 먼저 사라진다.

 

헨리크 입센의 희곡 ‘민중의 적’도 같은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 의사는 마을 온천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공동체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진실이 틀려서가 아니다. 진실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경제도 흔들리고 명예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실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결국 공동체는 진실을 말한 사람을 ‘민중의 적’으로 만든다.

 

입센은 다수결이 언제나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거짓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흔드는 진실을 싫어하기 때문에 진실을 배척하기도 한다.

 

아서 밀러의 시련에서는 더욱 극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마녀사냥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증거보다 분위기를 믿는다. 의심은 곧 유죄가 되고, 침묵도 유죄가 된다.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큰 의심을 받는다. 공동체가 하나의 믿음에 사로잡히면 합리적인 질문은 가장 위험한 행동이 된다.

 

이 작품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 가지다. 사람은 거짓말보다 불편한 진실을 더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거짓말보다 불편한 진실이 더 싫을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기존 신념과 충돌하는 정보를 접할 때 나타나는 불편함을 ‘인지 부조화’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이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자료를 무시하기도 하고, 상대의 동기를 의심하기도 하며, 믿을 수 있는 정보원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때로는 사실보다 감정을 먼저 믿는다. 그러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현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문학은 이러한 과정을 논문보다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자는 등장인물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장을 덮는 순간 깨닫는다. 우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강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언론만 읽고,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는 영상만 시청하며,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만 대화한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분석하여 비슷한 정보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결국 다른 생각은 점점 낯선 것이 되고, 낯선 것은 곧 불쾌한 것이 된다.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어떤 주장이 틀렸다는 이유보다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거부하기 시작한다. 논리보다 감정이 먼저 판단을 내린다. “듣기 싫다”는 말이 “틀렸다”는 말을 대신한다. 불편함이 곧 오류의 증거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은 진실의 기준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사상은 언제나 불편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주장은 불편했고, 찰스 다윈의 이론도 불편했다. 

 

많은 문학 작품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도 외설적이거나 위험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새로운 생각은 기존 질서를 흔들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의 언제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위대한 독자는 좋아하는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니다. 읽기 싫은 책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위대한 사회 역시 같은 의견만 허용하는 사회가 아니다. 서로 불편한 주장도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이다. 사상의 성숙은 박수갈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질문을 견디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공감만이 아니다. 낯선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평생 만나지 못할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고, 동의하지 않는 인물의 논리를 끝까지 듣게 만든다. 그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이며, 희곡을 읽는 이유이다. 문학은 우리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타인의 정신 속으로 초대한다.

 

생각의 자유는 내가 말할 자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인내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문학은 그 인내를 훈련시키는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깊은 학교이다.




 

◆ 松山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송산)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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