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2일 부산 서면 하트광장에서 열린 참정권 침해 규탄 집회에 참석해 단상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 대표가 장외 정치와 당원 중심 정당을 선택한 가운데, 이를 특검과 제도개혁이라는 성과로 연결할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장외 정치와 당원 중심 정당을 선택했다. 8일 인천·수도권 청년단체 간담회에 이어 12일 부산·경남권 청년·대학생 간담회와 시민 집회에 참석하며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전국 의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장 대표가 내건 요구는 국민특검과 재선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거제도 개혁이다.
문제의 출발점은 확인된 사실이다.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본투표에서 전국 91개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분은 7194장이었다. 이 가운데 26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중단됐고, 최장 중단 시간은 105분이었다. 다만 이 사실이 곧바로 조직적 부정이나 선거 결과의 무효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여부는 자료와 증언,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야 한다.
장 대표는 당 운영에서도 “당원이 선택한 당대표의 거취나 해당 행위자에 대한 징계는 당원의 뜻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며 당원 중심 정당을 강조했다. 동시에 당원 중심 정당이 국민정당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방향은 정해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역을 도는 일이 아니라 장외 정치의 설계도를 만드는 일이다.
일부 언론은 장 대표의 전국 순회를 참정권 문제보다 대표직 방어와 강성 지지층 결집, 원내지도부와의 이견이라는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런 보도 흐름을 모두 언론의 편향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같은 주장을 들고 도시만 바꾸면 새로운 사실이 없는 자리를 정치적 의도에 대한 해석이 채우게 된다.
장 대표가 불리한 언론 지형을 넘으려면 우호적인 보도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보도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과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사립학교법 투쟁은 그 운영 방식에서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다.
박근혜는 같은 주장을 ‘다른 뉴스’로 만들었다
열린우리당이 2005년 12월 9일 개방형 이사제 등을 담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처리하자 한나라당은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들어갔다. 국회 파행은 이듬해 1월 말까지 53일간 이어졌고, 새해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를 지연시켰다는 비판도 받았다.
박근혜식 투쟁의 특징은 한 차례 대규모 집회를 여는 데 있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12월 13일 서울 명동과 서울역에서 박 대표와 의원·당직자들이 참여하는 가두집회를 열었다. 국회에는 사학법 처리 절차를 문제 삼는 국회의장 불신임 결의안도 제출했다. 장외 여론전과 원내 절차 대응을 처음부터 병행한 것이다.
사흘 뒤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무대를 옮겨 촛불집회와 거리행진을 결합했다. 이후 지역 조직과 지방의원, 사학·학부모·종교단체까지 참여 주체를 넓혔다. 핵심 주장은 사학법 재개정으로 같았지만 장소와 등장인물, 행동 방식은 계속 달라졌다.
명동에서는 가두전, 서울광장에서는 촛불과 행진, 지역에서는 시·도당과 관련 단체의 결합, 국회에서는 절차적 대응이 이어졌다. 그 결과 보도도 “박근혜가 또 사학법을 비판했다”는 반복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장소가 열리고 새로운 조직이 합류할 때마다 별개의 장면과 사건이 만들어졌다.
장외투쟁이 거리에서만 끝난 것도 아니다. 2006년 1월 30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북한산 회담을 통해 2월 1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고,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안을 제출하면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53일간의 장외투쟁은 원내 협상으로 넘어갔다.
사립학교법이 법률 제8545호로 다시 개정된 것은 2007년 7월이었다. 장외투쟁이 재개정의 단일하거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재개정 요구를 한나라당의 지속적인 원내 의제로 남기고 여당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2005년 12월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는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가두집회와 촛불집회, 지역 순회와 관련 단체 연대를 이어가며 하나의 의제를 연속적인 뉴스로 확장했다. [사진=연합뉴스]장동혁이 바꿔야 할 5가지
장동혁이 배워야 할 것은 53일간의 국회 보이콧이나 거리 연설의 강도가 아니다. 하나의 의제를 매번 다른 뉴스로 만들고, 장외에서 확보한 힘을 원내 법안과 협상으로 옮긴 운영 방식이다.
첫째, 지역을 바꾸지 말고 뉴스를 바꿔라
인천에서 한 연설을 부산과 광주, 대구·경북에서 반복해서는 일정은 늘어나도 정치적 성과는 쌓이지 않는다. 지역 방문마다 해당 지역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립된 뉴스가 있어야 한다.
인천에서는 투표용지 부족과 투표 중단 피해를 증언할 당사자를 확보하고, 부산에서는 지역 선관위의 보고·지시 체계와 대응 기록을 확인하는 식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경찰의 초동 대응이나 선관위의 인사·감사·기록 보존 체계를 바꿀 제도개혁안을 발표할 수 있다.
각 방문에는 새로운 사실과 기록, 새로운 당사자, 새로운 행동, 후속 시간표가 따라야 한다. 정치인의 연설만 있으면 집회 보도가 된다. 피해자의 증언과 문서가 결합하면 사건 보도가 된다. 정보공개 청구와 증거보전, 고발·수사의뢰, 법안 발의까지 이어지면 후속 보도가 만들어진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날까지 어떤 자료를 요구하고, 누가 어떤 조치를 맡으며, 관계기관이 답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할 것인지 공개해야 한다.
새로운 사실과 당사자, 행동과 시간표가 없는 방문은 일정이다. 네 가지가 갖춰지면 뉴스가 된다.
둘째, 당원을 청중 아닌 제보·행동 조직으로 전환하라
당원 중심 정당이 대표의 거취를 방어하는 논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원이 집회장의 숫자를 채우고 박수를 보내는 청중으로만 동원된다면 당원 중심 정당이 아니라 대표 중심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원은 지역의 피해 사례와 제보를 모으고 선거관리 현장의 기록을 확인하며, 피해자와 법률지원 조직을 연결할 수 있다. 지역 당협은 자료와 증언을 수집하고, 중앙당은 전국에서 올라온 기록을 검증해 공개 데이터베이스로 통합해야 한다.
지역별 제보 창구와 표준 피해 진술서, 자료 보존 지침, 정보공개 청구 양식, 법률지원 연락망을 마련하면 당원은 동원 대상에서 사실을 수집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바뀐다. 당원 중심 정당은 당원의 감정을 앞세우는 정당이 아니라 당원의 참여를 사실 확인과 정책 생산으로 연결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12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마리나파크에서 자유와혁신 창당 1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한미일보]셋째, 자유와혁신과 원포인트 공동전선을 구축하라
장 대표가 국민의힘 밖 시민사회와 연대하려면 황교안 대표의 자유와혁신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자유와혁신은 창당 과정에서 부정선거 척결과 주권 회복을 핵심 목표로 제시했으며, 제도권 정당 가운데 선거관리 의혹과 부정선거 문제를 가장 적극적인 의제로 내세워온 세력 중 하나다.
필요한 것은 정당 통합이나 모든 주장에 대한 포괄적 동의가 아니다. 중앙선관위 제출자료로 확인된 투표용지 부족과 투표 중단, 관련 기록의 보존, 피해자 법률지원, 특검과 선거관리제도 개혁처럼 공동 대응이 가능한 사안부터 연대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회 의석과 특검법·국정조사·상임위원회라는 제도적 수단을 갖고 있다. 자유와혁신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조직과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양측이 공동 검증단과 법률지원단을 구성하고, 지역별 현장조사와 피해자 간담회, 공개 토론회를 진행한다면 장외전선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
다만 연대의 토대는 입증 가능한 사실이어야 한다. 6·3 선거의 투표용지 부족·투표 중단과 과거 선거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의혹은 구분해야 한다. 자유와혁신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양당이 공동 검증 기준을 세우고, 의혹은 문서와 증언·법적 절차로 확인하며, 검증된 사안은 국민의힘이 특검과 입법으로 연결해야 한다.
넷째, 지역·중소 미디어에 먼저 문을 열어라
장 대표가 처한 언론 지형이 불리하다면 대형 신문과 방송만을 바라보는 소통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국회 출입 기자단에 같은 보도자료만 배포하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사건과 증언을 깊게 전달하기 어렵다.
지역 언론은 중앙 정치부가 지나치기 쉬운 지역 선관위의 대응과 유권자 피해를 추적할 수 있다. 정치·법률 전문 매체는 특검 추천 구조와 재선거의 법적 요건, 증거보전과 기록 관리 문제를 긴 호흡으로 다룰 수 있다. 중소·독립 미디어와 유튜브·팟캐스트는 짧은 인용문을 넘어 전체 논리와 반론에 대한 답을 전달할 수 있다.
지역 방문 때마다 공개 기자간담회를 열고 매체 규모와 성향에 관계없이 질문권을 보장해야 한다. 질의응답 전체 영상과 발언록, 근거 문서와 원자료를 동시에 공개하고 후속 취재를 맡을 의원과 실무자의 연락 창구도 제공해야 한다.
목표는 우호적인 기사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대형 매체 한두 곳이 어떤 제목과 프레임을 선택하더라도 전체 사실과 증언이 사라지지 않는 다층적인 정보 유통망을 만드는 일이다.
다섯째, 장외 동력과 원내 실행력의 교집합을 만들어라
장외 정치와 당원 중심 정당은 원내 정치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다. 장 대표가 전국을 돌며 국민특검과 재선거, 선관위 개혁을 국민적 의제로 만든다면 원내지도부는 이를 실행 가능한 법률과 제도로 옮겨야 한다.
특검을 요구한다면 수사 대상과 추천 방식, 수사 기간, 증거보전 조치부터 제시해야 한다. 재선거를 주장한다면 어떤 사실이 확인될 경우 어떤 법적 절차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선관위 개혁도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를 넘어 투표용지 산정과 공급, 현장 보고, 기록 보존, 외부 감사, 인사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한다.
법률가 출신 의원은 특검법과 소송 절차를 맡고, 행정·예산 분야 의원은 선관위의 조직과 감사 체계를 분석하며, 지역구 의원은 피해자 면담과 자료 확보를 담당할 수 있다. 원내지도부는 국정조사와 상임위원회 활동을 통해 장외에서 확인된 사실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박근혜의 사학법 투쟁에서도 당 대표가 장외 압력을 만들고 원내대표가 국회 정상화와 재개정 논의를 협상했다. 장동혁이 가야 할 길도 원내를 우회하는 길이 아니라 원내를 움직이는 길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가 국회 최고위원회의장으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 장외 정치의 동력은 원내 입법과 제도개혁으로 연결돼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
장외 정치에도 성과표가 필요하다
장동혁의 장외 정치가 성공하려면 몇 개 도시를 방문했고 몇 명이 모였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새로 확인했고 어떤 조치를 실행했으며 어느 법안과 제도 변화로 이어졌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매주 성과표를 내놓을 수 있다. 새로 확보한 자료와 확인된 피해자, 정보공개 청구와 고발·수사의뢰, 법률지원 진행 상황, 발의·준비 중인 법안, 관계기관의 답변 여부를 국민에게 보고하는 방식이다.
장외는 국민적 압력을 만드는 공간이고 당원은 그 압력을 지속시키는 조직이다. 자유와혁신과 시민사회는 공동전선의 외연을 넓히고, 지역·중소·전문 미디어는 사실을 확산하며, 원내는 이를 특검과 수사, 법률과 제도개혁으로 완성해야 한다.
더 많은 지역을 도는 것보다 방문한 곳에서 무엇을 새로 밝혔는지가 중요하다. 더 강한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그 구호를 누구와 연대해 어떤 법안과 행동으로 옮겼는지가 중요하다.
장외는 동력을 만들고, 당원은 조직하며, 자유와혁신·시민사회는 전선을 넓히고, 미디어는 확산하며, 원내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장동혁의 선택이 성공할지는 방문 지역의 숫자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들어낸 뉴스와 제도적 성과가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