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6 중기관총. [사진=연합뉴스 자료]국민이 체감하는 경제는 정부의 설명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3.2%, 생활물가는 3.4%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은 76주 연속 상승했고, 코스피는 7월28일과 29일 이틀간 16.17% 폭락했다.
장바구니 물가는 뛰고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으며, 국민의 금융자산은 무너졌다.
이재명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가 안정책과 부동산 규제, 증시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것은 보도자료의 개수가 아니다. 무엇을 예측했고 무엇을 막았으며, 결과가 나빴을 때 누가 책임졌느냐는 것이다.
국제유가와 해외 금리, 전임 정부와 시장 과열을 탓하는 것은 원인 설명일 수는 있어도 국정 성과는 될 수 없다. 집권은 변명할 권리를 얻는 일이 아니라 결과에 책임질 의무를 떠맡는 일이다.
안보에서는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전방부대 초병의 총기를 삼단봉 등 비살상 장비로 대체하는 방안이 추진됐다가 논란 끝에 철회됐다.
육군 1군단 예하 GP·GOP에서는 K6 중기관총에 실탄을 장전하지 않은 채 탄통을 옆에 두고 경계작전을 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합동참모본부는 해당 지침이 누구의 판단으로 내려졌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정부가 자주국방을 말한다. 올해 한미연합연습 기간의 야외기동훈련 횟수는 크게 줄었다. 정부는 훈련을 연중 분산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전체 훈련의 병력·장비·기간·강도가 실제로 유지됐는지 공개하면 된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야외기동훈련을 축소했다면 이는 군사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자체가 한미동맹의 해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군사적 조건보다 정권의 시간표를 앞세우고, 연합훈련과 연합지휘체계의 실질을 약화하면서 전환을 서두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채 중국·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중·러의 위협은 그대로인데 한국의 훈련과 동맹의 억지력만 줄이는 것은 자주국방이 아니다. 동맹이 분담하던 위험을 한국 국민에게 단독으로 떠넘기고 전략적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장도영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과 라이언 도날드 주한미군사 공보실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2026 자유의방패(FS) 연습 계획 관련 공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2.25 [사진=연합뉴스]
‘평화가 경제’라는 주장도 현실을 거꾸로 읽는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다고 물가가 내려가고 집값이 안정되며 공장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북한 핵이 제거되고 도발 위험이 낮아지며, 협정 위반을 검증하고 응징할 힘이 있을 때 경제적 위험도 줄어든다.
평화협정은 안보 위험이 해소됐다는 결과물이어야 한다. 북한의 핵과 북·중·러 군사관계는 그대로 둔 채 우리의 방어장치부터 줄이는 평화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 위험을 키운다.
친중 외교의 성과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한국이 중국에 외교적 공간을 열어준 만큼, 중국은 북핵 억제와 한한령 해제, 서해 문제 해결에서 어떤 상응 조치를 내놓았는가.
북한조차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중국이 한국을 위해 북한을 통제할 것이라는 기대는 전략이 아니라 희망사항이다. 중국은 한국의 선의가 아니라 자국의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통상에서는 그 대가가 구체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역내 판매와 수입·수출을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도 강제노동 문제를 무역법 301조 관세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에 대한 규제를 기업 자율에 맡겼다. 이 제도적 공백은 미국이 한국산 상품에 12.5% 관세를 부과하는 데 활용할 빌미가 됐다.
한국은 과잉생산 문제를 이유로 한 별도의 무역법 301조 추가 관세 위험까지 안고 있다. 중국을 의식해 국제 통상규범의 변화를 외면한 대가를 한국 수출기업이 떠안게 된 것 아닌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태도도 선택적이다.
6·3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7,194장이 부족했고, 26곳에서 투표가 중단됐다. 최장 중단 시간은 105분이었다. 투표하지 못한 채 돌아간 유권자가 있었는지, 실제 참정권 침해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국민의 선거권이 훼손된 사태에는 침묵하면서 권력기관을 뜯어고치는 입법에는 속도를 낸다.
그러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법률들이 ‘국민의 권리를 넓히기보다 집권 세력의 임기 이후 안전판을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조롱까지 자초했다.
민주주의는 정권에 유리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권에 불리하더라도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데서 증명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램프 레스토랑에서 열린 글로벌 AI 리더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해외 순방 자체가 잘못일 수는 없다. 국익을 위한 정상외교는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고물가와 집값 폭등, 증시 폭락, 최전방 경계태세 논란과 참정권 침해 사태가 동시에 터진 상황이라면 국정 최고책임자는 국민에게 위기의 원인과 대책, 책임 소재부터 설명했어야 한다.
이 정권의 문제는 발표한 대책이 하나도 없다는 데 있지 않다.
대책은 많았지만 결과가 없었고, 결과가 나쁘면 변명했으며, 책임져야 할 순간에는 책임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민생을 지키지 못한 정부가 경제를 말하고, 북·중·러를 감당할 준비를 보여주지 못한 정권이 자주국방을 말한다. 우리의 억지력부터 줄이면서 평화를 말하고, 국민의 투표가 중단된 사태에는 눈을 감은 채 개혁을 외친다.
자주국방과 평화는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그러나 삼단봉과 빈총으로 자주국방을 말하고, 북한 핵과 북·중·러의 군사협력은 그대로 둔 채 연합훈련을 줄이면서 ‘평화가 경제’라고 선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장 선한 언어로 가장 위험한 무장해제를 권하는 것, 그것이 악마의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