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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변신, 친미(親美)로 전향인가? 생존을 위한 친트럼프인가?
  •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 등록 2025-08-26 11: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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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 육사 40기 

한미 정상회담의 막이 오르기 전, 워싱턴의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숙청(Purge)이나 혁명(Revolution)이 벌어지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선 사업을 할 수 없다”는 폭탄선언을 던졌다. 


동맹국 정상을 향한 전례 없는 압박이자, 회담의 모든 의제를 집어삼킬 듯한 경고였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펼쳐진 풍경은 놀라웠다. 이재명의 극진한 찬사에 트럼프는 웃음으로 화답했고, 외신들은 “이 대통령이 젤렌스키의 운명을 피했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타전했다.


이 극적인 반전을 두고 평가는 엇갈린다. 혹자는 트럼프라는 ‘스트롱맨’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유연하게 대처한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빛을 발했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의 자존심과 원칙을 내어주고 얻은 정권 유지와 위태로운 이익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과연 이 대통령의 모습은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친미로의 전향’이었을까, 아니면 단기적 위기 모면과 ‘정권 생존을 위한 임시 변신’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익과 국격의 잣대로 회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 립서비스가 통한 실용주의 외교인가?  국격 실종 외교인가?


이재명은 ‘트럼프 사용 설명서’를 완벽히 숙지한 듯했다. 백악관의 금빛 장식을 칭찬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세계사적인 평화 메이커”라 치켜세웠으며, “트럼프가 피스메이커를 하면 나는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며 몸을 낮췄다. ‘북한에 트럼프 월드를 짓자’는 제안에 이르러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기도취를 충족시켜주는 것처럼 보였다. 


외신도 이재명의 외교 전술이 단기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도했다. AP, BBC, 로이터 등 외신들은 이를 두고 “세계 정상들이 트럼프와의 과거 회담에서 교훈을 얻었음을 보여준다”며 “대결보다 칭송과 아부를 택했다”고 분석했다.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며 외교 참사를 겪었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대응을 위기관리 능력의 발현으로 평가했다. 


2.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었는가?


국가의 외교 품격이란 순간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미래를 팔아넘기지 않겠다는 원칙이며, 외부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복기하면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이재명은 트럼프의 ‘숙청’ 발언을 특검과 사법시스템으로 무마하는 거짓의 순발력을 발휘했다. 동등한 주권 국가의 정상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순발력을 보여주었지만, 정권 유지를 위해 국가의 품격을 희생시킨 전례로 남을 것이다. 


이는 트럼프에게 ‘한국은 압박하면 통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기에 충분하다. 당장의 화를 피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더 큰 청구서가 날아올 수 있는 문을 열어준 셈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배치 권한을 ‘소유권’으로 바꾸려는 황당한 주장까지 꺼내 들었다. 품격을 잃은 외교가 어떻게 더 큰 국익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위험한 징후다. 


3. 친미(親美)로 전향인가? 생존을 위한 친트럼프 임시방편인가?


이번 회담의 본질적인 문제는 이 대통령의 행보가 진정한 의미의 ‘친미’로의 전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외교는 한미동맹이라는 제도와 가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라는 한 개인에게 모든 것을 거는 극도로 인위적이고 인격화된 접근법에 가깝다. 이 시점에서 이재명이 야당 대표 시절인 2023년 1월에 시진핑에게 보낸 친서 내용과 이번 회담 직전 중국 특사를 통해서 보낸 친서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는 트럼프를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규정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의 모든 권한을 헌납했다. 이는 시스템과 원칙에 기반한 동맹을 개인 간의 거래 관계로 격하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트럼프의 변덕 한 번에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를 자청한 것이다. 이것은 동맹의 안정성을 지향하는 친미 노선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거는 ‘친트럼프’ 노선에 불과하다. 


4. 회담에서 오고간 발언들, 장기적인 국익으로 이어질 것인가?


회담간 무수한 약속과 방법론이 오고갔다. 이재명은 트럼프를 한반도 평화의 '피스메이커'로 추대하며 대북 문제의 주도권을 넘기는 역할 분담을 제안했다. 노벨 평화상 가능성을 암시하며 트럼프의 적극적 역할을 유도했고, 즉석에서 '중국 공동 방문'을 언급하며 미중 사이의 유연한 외교 가능성도 제안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생존’을 위한 ‘변신’이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국익으로 이어진다면 기적이다. 진정한 국익은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순발력이 아니라, 어떤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품격에서 나온다. 단기적 정권 생존을 위해 국가의 품격을 내주고 ‘숙청과 혁명’으로 비유되는 현 정권의 수많은 문제를 비켜간 오늘의 한미 회담을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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