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의 ‘깽판’ 발언과 성조기 소각 유공자 논란은 국가 보훈 체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미일보 그래픽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할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비속어를 내뱉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중 집회를 ‘깽판’으로 규정한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깽판’이란 일을 망치거나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행위, 또는 난장판을 만드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대통령 스스로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자기고백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자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의 구현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대통령이 ‘깽판’으로 프레임화한 것은 국민 기본권에 대한 모독이자, 권력이 불편한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위험한 신호다. 더구나 대통령 스스로가 재판을 회피하고 권력을 찬탈했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저항을 ‘깽판’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공감과 설득이 아니라 분열과 불신만 키운다.
국무회의는 국정을 심의하는 최고 회의체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생중계되면서 국민들은 국무위원들의 천박한 웃음과 가벼운 태도를 지켜봐야 했다. 최근 파주 폭발사고와 같은 안보 공백, 미국 조지아에서 300여 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체포·구금된 사건 등 국가 위기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국사를 진중하게 다루기는커녕 희화화된 회의 장면을 내보낸 것은 국민을 더 큰 불안에 몰아넣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 발언은 현장에서 집회를 이어가던 청년들에게 곧바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혹여 대통령의 발언이 강경한 법집행으로 이어질까” 두려움에 청년들이 급히 합류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이는 집회의 자유와 안전이 국가 권력의 태도 하나에 크게 흔들릴 수 있음을 방증한다.
남대문경찰서가 중국 오성홍기를 찢으면 처벌될 수 있다는 경고 방송을 내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과잉 대응은 이미 헌법적 논란을 불러왔다. 그런데 여기서 강원대 성조기 소각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사건은 학교 측의 제지로 미수에 그쳤으나, 이후 관련자 다수가 민주화유공자로 지정됐다.
1982년 4월 22일 강원대 성조기 소각 사건은 송민석 신학대생이 주도해 동료들과 함께 성조기를 불태우려 했으나 실패로 끝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양키 고 홈” 구호와 함께 성명서를 낭독했으나, 실제 방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자 중 일부는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민주화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강원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이들도 포함됐다.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대통령의 언어대로라면 성조기 소각 사건은 ‘깽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그 ‘깽판’을 친 인물들이 민주화유공자로 지정돼 존경받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국가가 기려야 할 민주화운동과 단순한 반미·반국가적 일탈 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보훈 체계가 불공정하다는 국민 불신은 바로 이러한 모순에서 비롯된다.
헌법과 법률은 민주화유공자의 지정 및 위훈 삭제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공적이 허위로 판명되거나 민주 질서에 반하는 행위가 드러나면 위훈을 취소할 수 있다. 따라서 성조기 소각 사건 관련 유공자 지정 문제는 재검토돼야 하며, 필요하다면 위훈 삭제가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화 정신을 지키는 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언어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국무회의라는 권위 있는 자리를 스스로 희화화했을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가 보훈 체계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언어와 태도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내는 최소한의 신뢰 위에서 성립한다. 그 신뢰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허약한 껍데기에 불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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