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군중. [사진=연합뉴스]
정치 권력의 변화는 눈에 잘 보인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하며, 정책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회가 특정 이념으로 기울어졌을 때 사람들은 먼저 정치인을 탓한다.
그러나 정치 권력은 사회의 흐름 위에 올라탄 결과일 뿐이다. 정치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류가 먼저 형성되고 정치가 그 뒤를 따른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 사회에서 특정 사상이 장기간 영향력을 갖게 된 원인은 정치인보다 시민의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 세력이 문화와 여론 영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좌파 지식인들이 문화 주도권 잡아
많은 사람이 이를 정치권의 문제로 설명하려 한다. 어떤 정권이 집권했기 때문이라거나 특정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사회의 문화와 여론 구조는 정권 교체 몇 번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축적된 결과다.
실제로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영역은 정치보다 문화와 교육이다.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출판과 언론에서 어떤 이야기가 반복되는지, 영화와 드라마에서 어떤 가치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지가 사람들의 사고를 형성한다. 이 영역에서 누가 더 오래, 더 꾸준히 활동했는지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
한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 대학, 시민단체, 출판계, 문화예술계에서 좌파 계열 지식인들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대학에서는 특정 이념을 중심으로 한 역사 해석과 사회 이론이 널리 퍼졌다. 출판과 문화 영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흐름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파 시민 사회의 대응이 매우 약했다는 점이다. 정치 영역에서는 선거 때마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사회의 장기적인 사상 경쟁에서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책을 쓰는 일, 잡지를 만드는 일, 연구 모임을 만드는 일, 문화 활동을 하는 일은 오랫동안 소수의 사람에게만 맡겨졌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의 언어 자체가 바뀌기 시작한다. 어떤 개념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생각은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 단계에 이르면 정치 논쟁은 이미 절반 이상 끝난 상태가 된다. 정치인은 결국 여론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보면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정치인은 사회의 축소판에 가깝다.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각이 정치에서도 힘을 얻는다.
만약 특정 사상이 사회 전반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 정치 역시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우파 시민 사회가 오랫동안 간과해 온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선거 때 투표하는 것으로 정치 참여가 끝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사회의 방향은 투표장 밖에서 더 많이 결정된다.
학교, 책, 문화, 시민단체, 학문, 언론 같은 공간에서 어떤 생각이 꾸준히 생산되고 확산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치 경제에 앞선 것이 문화와 사상 영역
좌파 세력은 오랫동안 이러한 공간을 조직적으로 활용해 왔다. 학생 운동, 시민 운동, 문화 운동 같은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정치에 앞선 것이 문화와 사상 영역이다.
대학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졸업 후 언론, 출판, 학계, 시민단체로 이동하면서 하나의 연결망이 형성되었다. 이 연결망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반면 우파 시민 사회는 오랫동안 이런 활동을 가볍게 보았다. 정치와 경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문화와 사상 영역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문화와 사상 영역이 정치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 권력은 몇 년마다 바뀔 수 있지만 문화와 교육에서 형성된 사고 방식은 한 세대 이상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에서 사상 경쟁이 벌어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몇 번의 선거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활동하는 시민 네트워크다.
연구 모임, 출판 활동, 강연, 문화 활동, 온라인 글쓰기 같은 일들이 쌓이면 하나의 사상적 기반이 형성된다.
이런 기반이 약하면 정치적 영향력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정치인은 여론을 무시하고 오래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론이 바뀌면 정치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결국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시민 사회다.
따라서 사회가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졌다면 그 책임을 정치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시민 사회가 오랫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집권했을 때 시민 활동이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다. 정치가 대신 모든 일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 정치와 시민 활동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정치인은 정책을 만들고 행정을 운영한다. 반면 시민은 사회의 가치와 방향을 만들어 간다. 책을 쓰고 토론을 하고 연구를 하고 문화 활동을 통해 생각을 퍼뜨리는 일은 시민의 영역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한 사회에서 특정 사상이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를 정치인의 책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시민 사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 장기적인 사상 경쟁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가 더 중요한 변수다.
사회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작은 활동들이 오랜 시간 쌓이면서 방향이 형성된다. 결국 사회의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다. 어떤 생각이 사회에서 살아남을지는 시민들이 얼마나 꾸준히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역사심리학 해설서 ‘신화가 된 조선’(2026)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