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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데이터 랩] 리포트 “반도체에 가려진 잠재성장률, 다음 업종은”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27 16: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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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대 잠재성장률의 경고
  • 다음 성장은 전력 주권에 달렸다

1분기 성장률은 반도체와 환율 효과에 힘입어 반등했지만,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대로 내려앉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경제 전체의 체력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장률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성장축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전력이 국가권력이라면 반도체 다음의 핵심은 배터리이고, 

배터리 다음의 장기 전략축은 수소다.

 

 

한국경제의 1분기 성장률은 시장 예상보다 강했다. 

 

로이터는 한국의 2026년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1.7% 증가했고, 수출은 반도체 등 인공지능(AI) 인프라 관련 IT 부품 수요에 힘입어 5.1% 늘었다고 보도했다.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도 3.6%를 기록했다. 

 

숫자만 보면 경기 회복의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성장률에는 착시가 있다. 

 

지난해 저성장에 따른 기저효과, 반도체 나홀로 호조, 원화 약세에 따른 환율 효과가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성장률을 끌어올렸다고 해서 한국경제 전체의 기초 체력이 좋아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금의 성장률 반등은 한국경제가 얼마나 특정 업종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문제는 잠재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물가 상승 압력 없이 노동·자본·기술을 활용해 낼 수 있는 최대 성장 속도다. 이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단기 경기 부진이 아니라 경제의 장기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올해 1.71%, 내년 1.57%로 전망했고, KDI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1%대 후반 수준이며 2040년대에는 0% 내외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피치도 지난 1월 한국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2.1%에서 1.9%로 낮췄다.

 

성장률은 반등했지만, 성장 체력은 낮아지고 있다. 이것이 이번 리포트의 핵심이다.

 

한국경제가 반도체에 의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도체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데이터센터, 서버, 고성능 컴퓨팅, 자율주행, 로봇, 방산 시스템은 모두 더 많은 연산 능력을 요구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AI 투자 확대의 직접 수혜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는 경기 사이클이 크고, 글로벌 수요와 미중 기술 갈등에 민감하다. 특정 업종 하나가 전체 성장률을 떠받치는 구조에서는 충격 흡수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가격이 꺾이거나, 수출 규제가 강화되거나, 중동전쟁 등 지정학 리스크가 에너지 가격과 환율을 흔들면 성장률은 빠르게 낮아질 수 있다.

 

따라서 질문은 “반도체가 계속 좋을 것인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반도체 다음의 성장축을 어디에서 만들 것인가”다.

 

그 첫 번째 후보는 배터리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배터리는 전기차용 배터리 셀만을 뜻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고체 배터리, 소재, 재활용, 전력망 안정화, 장주기 저장기술까지 포함한 에너지 저장 산업 전체를 의미한다.

 

반도체가 정보를 처리하는 산업이라면, 배터리는 전력을 저장하는 산업이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로봇, 스마트공장, 방산, 재생에너지 모두 전기를 더 많이 쓰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전력 수요가 커질수록 전기를 언제, 어디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저장하느냐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 에너지 정책 검토에서 배터리 저장장치가 전력망 안정화, 피크 수요 대응, 재생에너지 변동성 완화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2025년 7월 첫 ESS 중앙계약시장을 시작했고, 리튬 배터리 기반 ESS 경쟁력 강화와 비리튬 장주기 저장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도 방향은 이미 바뀌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한화큐셀 미국 법인에 2028~2030년 ESS용 LFP 배터리 5GWh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K온도 미국 플랫아이언 에너지에 2026~2030년 최대 7.2GWh 규모 ESS용 LFP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 속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ESS 시장으로 축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배터리는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전력 주권 산업이 된다. 전력이 국가권력이라면,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은 산업권력이다. 

 

발전소를 지어도 저장하지 못하면 전력망은 불안정해진다. 재생에너지를 늘려도 저장하지 못하면 공급 변동성을 피할 수 없다. AI 데이터센터를 세워도 안정적인 전력 저장과 배분이 없으면 산업 기반은 흔들린다.

 

그래서 반도체 다음 업종을 하나만 꼽으라면 배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배터리 셀”이 아니라 “배터리 기반 에너지 저장 산업”이다. 이 산업은 전력망, 소재, 재활용, 전력시장 제도, 장주기 저장기술과 함께 움직일 때 성장축이 된다.

 

그다음 장기 축은 수소다. 

 

수소는 배터리와 경쟁하는 기술이 아니다. 배터리가 단기 저장과 빠른 방전에 강하다면, 수소는 장기 저장, 장거리 운송, 산업용 연료에 강점을 가질 수 있다. 

 

철강, 화학, 해운, 대형 운송, 장거리 에너지 운반처럼 전기화가 어려운 영역에서는 수소가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IEA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수소 수요는 거의 1억t에 달했지만, 저배출 수소 생산은 아직 전체의 1% 미만에 머물고 있다. 수소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고 비용·수요·인프라 불확실성이 크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장기 전략산업으로 볼 필요가 있다.

 

결국 한국경제의 다음 성장 전략은 “반도체냐, 배터리냐”의 선택이 아니다. 

 

반도체는 정보 처리의 축이고, 배터리는 전력 저장의 축이며, 수소는 에너지 운반과 장기 저장의 축이다. 세 산업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AI·전력·방산·로봇·모빌리티·전력망을 통해 하나의 산업질서로 연결된다.

 

정부도 잠재성장률 반등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는 올해를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AI 대전환, 녹색 대전환, 방산·바이오·K-컬처 등 제2, 제3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언급했다. 또 6월께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업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잠재성장률은 오르지 않는다. 

 

반도체 이후의 성장축은 기술, 자본, 인력, 전력, 규제, 시장이 함께 움직일 때 만들어진다. 배터리와 수소가 제2, 제3의 성장축이 되려면 제조업 육성책을 넘어 전력시장 개편, 전력망 투자, 소재 공급망, 재활용 체계, 안전 기준, 전문인력 양성이 동시에 설계돼야 한다.

 

한국경제의 위험은 반도체가 강하다는 데 있지 않다. 위험은 반도체가 강한 동안 다른 성장축을 만들지 못하는 데 있다. 1분기 성장률 반등은 안도할 숫자이지만, 잠재성장률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경고다.

 

이번 리포트의 결론은 분명하다. 

 

반도체는 여전히 한국경제의 현재다. 그러나 다음 업종은 배터리이고, 그다음 전략축은 수소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반도체·배터리·수소를 잇는 전력 주권 산업을 누가 먼저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장률은 숫자로 반등할 수 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은 산업구조가 바뀌어야 반등한다. 

 

한국경제가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올해 몇 % 성장하느냐”가 아니라 “반도체 다음의 전력 산업질서를 누가 장악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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