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18 北개입 황장엽 명단 YS 묵살, CIA는 알았다”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내려온 북한 공작대 명단을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제출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묵살한 것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알고 있었다는 전직 한국계 CIA 요원의 증언이 나왔다. 40년간 한국계 미국 정보요원으로서 굵직한 대공(對共)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누구보다 가까이 접근하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직접 조사했던 마이클 이(93·Michael P. Yi)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박사는 지난 17일 <한미일보>와 만나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며 이같이 폭로했다.
고팔 발라크리슈난의 ‘더 애너미- 카를 슈미트 분석’(왼쪽)과 크누트 베르크바우어 등이 저술한 한스 리텐 전기 ‘히틀러에 맞선 변호사(Hans Litten– Anwalt gegen Hitler)’.
국가가 허물어지는 징후는 악당들의 요란한 폭주에서 오지 않는다. 진짜 소름 돋는 파국의 신호는 그 폭주를 제어해야 할 브레이크, 즉 ‘배운 자들의 비겁한 침묵과 동조’가 시작될 때다.
소돔과 고모라가 잿더미가 된 것은 악인이 넘쳐나서가 아니라, 그 도시를 지탱할 단 10명의 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영 논리가 사법 체계를 유린하는 데도 입을 굳게 닫은 작금의 엘리트들을 보며 절망하는 이들에게, 100년 전 독일이 어떻게 거대한 괴물로 전락했는지 그 서늘한 인과율과 결말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훗날의 독재자 궁지에 몬 ‘한스 리텐’
1931년 베를린 법정. 스물여덟 살의 풋내기 변호사 한스 리텐(Hans Litten)은 나치 돌격대의 폭력 사건을 추궁하며 아돌프 히틀러를 증인석에 세웠다.
리텐은 3시간 동안 날 선 법리로 훗날의 독재자를 몰아붙였다. 논리가 파훼(破毀)된 히틀러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식은땀을 흘리며 고함을 질렀다. 리텐은 법의 여신이 쥐고 있는 공정한 칼날 그 자체였다.
그러나 2년 뒤 히틀러가 권력을 쥐자마자, 이 젊은 변호사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5년의 잔혹한 고문 끝에 그는 다하우 수용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념을 지킨 대가는 참혹했다.
반면, 리텐이 수용소의 차가운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독일 법조계의 진짜 엘리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당대 최고의 헌법학자이자 지성으로 추앙받던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를 보라.
그는 히틀러가 적법한 절차 없이 정적들을 학살하자, “총통이 곧 최고의 법관이며, 총통의 행동이 곧 법이다”라는 기적의 궤변으로 독재에 합법의 도장을 찍어주었다. 슈미트를 비롯한 수많은 판검사와 변호사들은 알량한 지위와 밥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치의 충견이 되었다.
바보 같은 의인 리텐은 철저히 패배했고, 권력에 기생한 똑똑한 엘리트 슈미트는 승리하여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노쇠하고 영악한 ‘카를 슈미트’들이 정의감에 넘치는 여러 ‘한스 리텐’들을 기어이 이겨버린 결과, 독일은 전범국이 되었고 결국 패망하였다.
법을 수호해야 할 엘리트들이 권력의 불법에 논리를 제공하고 침묵으로 동조하자,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에는 더 이상 어떠한 브레이크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는 수백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멸이었다.
“시대의 독을 마셨을 뿐”… 비겁한 카를 슈미트
독재에 합법 도장을 찍어주고 호의호식하던 카를 슈미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어떤 죗값을 치렀을까. 다들 그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이라도 당했을 거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전범 재판에 끌려간 그는 기가 막힌 논리로 법망을 빠져나간다.
“나는 그저 책을 쓰고 이론을 만들었을 뿐, 직접 사람을 죽이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 학문적 사유는 범죄가 될 수 없다.”
말장난의 달인답게 그는 교수대와 감옥행을 교묘하게 면했다. 악마의 뇌를 가진 지식인이 형벌을 피했다며 분노할 수 있겠지만, 역사의 응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후 독일 사회는 그를 살려두는 대신 가장 굴욕적인 형벌을 내렸다. 바로 영구적인 학계 퇴출과 사회적 매장이었다. 대학교수직은 박탈당했고, 죽을 때까지 독일의 어떤 공직이나 강단에도 서지 못하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베를린의 모든 권력자가 우러러보던 법조계의 아이돌은 하루아침에 고향 플레텐베르크의 좁은 방구석에 처박혀 평생 조롱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방구석에서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대의 독을 마셨을 뿐”이라며 정신승리를 시전하다 96세까지 질기게 살다 죽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철저히 ‘법학계의 볼드모트’로 박제해 버렸다.
그의 정치학 이론이 천재적이라 좌·우파 학자들이 몰래 참고하긴 하지만, 감히 대놓고 슈미트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순간 학계에서 매장당한다. 그의 이름 자체가 ‘지식의 매춘’을 상징하는 영원한 금기어가 된 것이다.
반면, 권력에 짓밟혀 이름 없이 사라진 줄 알았던 28세의 풋내기 변호사 한스 리텐은 어떻게 되었는가. 현재 독일 베를린 지방변호사회관의 공식 명칭은 ‘한스 리텐 하우스(Hans-Litten-Haus)’다.
독일 베를린 지방변호사회관 ‘한스 리텐 하우스(Hans-Litten-Haus)’의 현판.
독일 법조계는 매일 아침 그의 이름이 적힌 건물을 드나들며 법치주의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되새긴다.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바보는 영원한 정의의 상징으로 부활해 추앙받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와 여의도 주변을 서성이는 엘리트들을 본다. 진영의 이익과 권력자의 방탄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법망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사법 체계를 농락하는 법 기술자들이 넘쳐난다. 당장 눈앞의 권력을 등에 업고 법적 처벌을 피했으니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믿을 것이다.
카를 슈미트의 끈질기고도 비참한 말년은 바로 이들을 향한 역사의 서늘한 스포일러다. 당장 감옥행은 피했더라도, 결국 ‘배운 머리로 악마의 발을 핥은 지식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평생 세상의 멸시 속에서 격리될 것이다.
현실의 감옥 창살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것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추악한 기회주의자’로 활자화되어 갇히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지식의 매춘부들을 용서한 적이 없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