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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국제이슈] 中, ‘카이로선언’ 꺼내든 역사전쟁의 속내
  • 임명신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 등록 2026-05-06 22: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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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집트 카이로 메나하우스 호텔에 설치한 ‘카이로 선언 기념비’. 1943년 11월 미·영·중 3국 정상이 메나하우스 호텔에 모여 회의한 뒤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이 갑자기 ‘카이로선언’을 대대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카이로선언은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이 논의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틀이다.


3일 주(駐)이집트 중국대사관에 따르면 83년 전 3국 정상회담 장소인 카이로 메나하우스 호텔에 기념비가 들어섰다. 기념비엔 중국어로 “대만의 중국 반환은 2차대전 승리의 성과이자 전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고 새겨져 있다. 1943년 당시 선언문의 ‘일본이 탈취한 만주·대만 등을 중국에 반환한다’ 조항에 기반한 내용이다.


‘전승국 중국’과 ‘중국공산당 중국’은 다르다


하지만 심각한 논리 비약이 발견된다. 우선 카이로회담 당사자 ‘차이나’는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PRC)이 아니라 장제스의 중화민국(ROC)이었고, 회담 의제는 일본 제국주의 처리였다. 다시 말해, 청일전쟁 이후 일본에 할양된 대만을 전승국 중국에 반환한다는 얘기지, 중국공산당 정권의 대만 통치권까지 국제사회가 승인한 게 아니었다. 미국 정치권과 유럽 학계에선 ‘유엔 총회 결의 2758호는 중국 대표권 문제일 뿐, 대만 주권 문제를 확정한 바 없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결의문엔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로 명시한 구절이 없다.


중국 곳곳에선 관련 기념비와 전시공간 정비가 이뤄졌으며, 관영매체들은 ‘국제사회가 이미 대만의 중국 귀속을 확인했다’ 식의 해설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의 심리적 조급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커지는 ‘대만인 정체성’과 중국의 위기감

최근 몇 년 사이 대만을 둘러싼 국제 여론이 중국에 유리하지 않았다. 심지어 매우 다른 문맥의 사안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겹쳐서 바라본 ‘대만 동정론’까지 힘을 얻는다. 서방 세계가 ‘대만해협 평화’를 거듭 촉구하며, 국제사회 일각에선 ‘대만의 미래는 대만 주민 의사에 따라야 한다’ 등의 관점이 확산됐다. 무엇보다 대만 내부가 빠르게 ‘중국인’ 아닌 ‘대만인’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게 된 점은 중국공산당의 위기 의식을 키웠을 것이다.


대만 통일이야말로 공산당의 정통성 확인인 동시에 그간의 모든 오류를 만회할 만한 카드다. 최상의 소재가 카이로선언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미·영·중이 공동 발표한 연합국 전시 선언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만 문제를 ‘이미 국제사회에서 결론 난 사안’으로 몰아가고 싶은 속내가 드러난다.


‘항일 승리’ 서사를 다시 쓰는 중국


중국공산당은 국민당 정권을 ‘반동’으로 비판해 왔으면서, 정작 그 정부가 얻어낸 전승국 지위와 외교 성과를 자기 정당성에 활용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대만 이슈를 ‘현상 유지’와 ‘자유민주주의 방어’ 문제로 접근하자, 중국은 ‘반파시즘 전승 질서 수호’ 프레임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대만 압박을 현대 패권행위가 아니라 ‘전후 질서 회복’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계산이다.


중국의 ‘항일’ 서사 강조는 개혁개방 이전과 너무나도 판이한 태도다. 항일전쟁 때 일본과 싸운 주력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였다. 마오쩌둥 공산당의 승리는 항일전으로 탈진한 국민당을 국공내전에서 압도하며 얻어낸 것이다. 충분한 명분이 있었던 대일 배상 요구를 훗날 마오가 포기한 일, ‘일본 침략 덕분에 공산당이 승리했다’ 취지의 발언 등은 해당 분야 연구자들에겐 익숙한 사실들이다.


경제 침체와 청년실업, 부동산 위기, 지방재정 악화 등 자체 모순이 폭발 중인 가운데, 중국은 내부 결속용 역사 서사가 절실해졌다. 특히 시진핑 체제 들어 중국공산당은 정통성을 경제 성장뿐 아니라 ‘민족 부흥’과 ‘역사적 치욕 극복’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노골화했다. 이때 최강의 정치 자산이 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승리 역사를, 엄밀히 말해 훔쳐다 쓴 셈이다.


대만은 이미 다른 길을 걸어왔다


‘대만 통일’을 항일전쟁의 완결로 만들려는 시도엔 무리가 많다. 우선 중국공산당은 항일전쟁의 주역이 아니었다. 또 중국어 7대 방언 중 북방계 표준중국어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게 대만어(민난어)다. 구어 상호 소통이 사실상 어렵다. 중국사의 변방이었던 대만은 일본 식민지 시기를 통해 근대화했고, 전후 고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다. 대한민국과 대만은 세계 수십 개 식민지 출신 중 오늘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드문 사례에 속한다.


중국의 카이로선언 소환이 역사적 논리와 명분 축적 시도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군사 압박만으로 국제사회를 향한 위신이 서지 않자, 오래된 외교 문서를 현대 지정학적 무기로 재활용하려는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주변국의 하나로서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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