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신 K2 전차(왼쪽)와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며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다양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국방부·조선중앙통신]
군사력은 단순히 통계 수치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결정짓는 거대한 유기체의 총합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군사력 순위 지표들은 가시적인 물리적 자산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 군사력 순위와 지표는 재래식 무기 수치와 무기 구매 영수증이 만든 허상일 수 있다.
전장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통계 숫자가 아니다. 통계 숫자가 담지 못한 보이지 않는 실질적 역량과 정신력이라는 변수들이다. 주변이 4강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세계 군사력 5위라는 통계 수치를 자주국방의 근거로 삼는 것은 껍데기 통계가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통계는 안도감과 우월감도 주지만 통계 생산 과정에 오류가 있다면 심각한 오판을 야기할 수 있다.
1. 재래식 수치와 ‘구매 영수증’이 만든 세계 군사력 순위
가장 널리 알려진 세계 군사력 순위인 GFP(Global Firepower)는 병력의 수, 가용 동원 자원, 군함의 톤수, 기갑·항공·해상 장비 수량, 국방 예산 규모, 물류 능력, 지리적 조건 등 60여 개 지표를 점수화한 것이다. 각 항목에 가중치를 두어 0에 가까울수록 강력함을 나타내는 군사력 지수를 산출한다. 군사력 순위는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재래식 전력의 정량적 합계’에 치중한다.
군사력 평가는 ‘군사력’이라기보다 군사 자산의 재고 목록에 가깝다. 이러한 정량적 평가는 최첨단 기술의 질적 격차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북한은 잠수함 보유 수량에서 약 70~80여 척으로 수년째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실체는 1950년대 설계된 노후 기종이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군의 최신형 도산안창호급 잠수함 1척은 잠항 능력과 정숙성 그리고 SLBM 타격력 면에서 북한 잠수함 수십 척을 압도하는 질적 우위를 가진다. 수치상으로는 1 대 80의 열세로 보일지 모르나 실전에서의 우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또한 구세대 전차 1000대와 최신형 전차 100대가 맞붙었을 때의 전술적 우위를 단순 합산 방식으로는 산출할 수 없다. 더욱이 현대전은 드론, 사이버전, 전자전과 같은 비대칭 전력이 승패를 가르는 ‘기술 집약적 총력전’으로 변모했다. 과거의 잣대로 현대 전력을 평가하는 것은 마치 ‘워키토키’ 기준으로 ‘스마트폰’의 성능을 가늠하려는 것과 같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는 1만 대의 전차를 보유했지만 3,500대 이상의 전차를 잃은 사례는 구세대 전력이 현대전의 비대칭 무기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2. 현대 군사 평가에서 가장 치명적인 맹점은 핵전력의 배제
핵무기는 단순한 무기 체계가 아니라 전쟁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무한대의 가중치를 가진 결정적 종결체다. 한국이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으로 평가받는 것은 재래식 화력에 국한된 성적표일 뿐이다. 핵을 고려한다면 10위권 뒤로 밀려날 수 있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아무리 재래식 전력에서 상위권에 포진해 있더라도 핵보유국과의 전면전에서는 결정적 종결 억제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 31위로 평가받는 북한이 끊임없이 탄도 미사일 도발을 하면서 국제적 관심을 끄는 배경은 그들이 핵이라는 절대적 상수를 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확장 억제라는 외부 변수를 제외한 상태에서 단순히 5위 숫자에 안도한다면 이는 북핵 위협을 가리는 안보 착시현상이며, 북핵에 대한 자주적 억제력도 없이 전작권 환수와 자주국방을 주장하는 것은 안보 무지와 무능이다.
3. 군사력 수치화가 어려운 정신력과 사기(士氣) 영역을 고려한다면?
군사 전문가들이 군사력을 논할 때 가장 어려운 항목이 불굴의 정신력과 전투의지와 사기다. 이는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도 산출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월남전 당시 남베트남군은 세계 4위 규모의 공군력을 보유하고도 지도부 부패와 분열과 패배감으로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역시 천문학적인 지원을 받고도 싸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탈레반의 공세 앞에 해체되었다.
반면 개전 초기 바로 패배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민과 군인의 절박함에서 나온 강력한 저항 의지였다. 대만이 중국이라는 거대 위협 앞에서 비대칭 고슴도치 전략을 채택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모습 또한 군사력 평가에 담을 수 없는 변수다.
군대가 적을 베려고 만든 칼이라면 정신력과 사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적을 지향하고 베는 칼날이다. 군이 정치에 휘둘리느라 정신과 사기가 바닥난 실태를 군사력 지수에 반영한다면 50위 안에 들 수 있을까?
4. 현대전의 실제 전력 계산
△재래식 전력 : 탱크, 비행기, 군함, 군인 수. 눈에 보이는 물리력 60가지
△비대칭 전력 : 드론, 사이버, 미사일 등 적이 대적할 수 없는 '깜짝 필살기’
△핵 억제력: 상대방이 공격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라는 공포의 위력
△전쟁 수행 의지: "우리는 끝까지 싸워서 나라를 지키겠다!"라는 마음가짐.
△‘0’의 법칙: 수학에서 아무리 큰 숫자라도 ‘0’을 곱하면 ‘0’이 된다.
핵은 판도를 뒤엎는 절대 상수이고, 전쟁 수행 의지와 사기는 결정적 요소임에도 군사력 지표에서 배제되어 있다.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정신력이 ‘0’이면 총체적 전력은 ‘0’이 된다. 월남과 아프간의 패배가 이를 증명했다.
국가 생존의 유기체인 군사력의 본질을 직시하여, 질적 격차와 비대칭 위협을 가리는 '세계 5위'라는 수치적 환상과 안보 착시에서 즉각 벗어나야 한다. 북핵 위협에 대응할 실질적 3축 체계의 조속한 완성이 시급하다.
군은 본연의 임무 수행을 어렵게 하는 정치적 간섭에 흔들리지 말고, 철저한 대비태세와 정신력 회복과 사기 진작으로 실전적 안보 태세 확립에 집중해야 한다. 안보라인은 자체 핵무장이라는 전략적 결단을 조언할 수 없다면, 전작권 전환과 자주국방이라는 주장을 삼가길 바란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