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소주차만행(少主且慢行)’에는 유독 시녀들만 한복과 유사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 ‘한복을 중국의 하위문화로 인식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사진=넷플릭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동북아역사재단 업무 보고 중 ‘한단고기’ 관련 논란인 ‘환빠 논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주류 사학계와 언론에서는 이미 위서로 규정된 한단고기를 이재명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실제 역사 문헌으로 인식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 청와대 대변인은 이재명이 한단고기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재명이 문제 제기 하루 만에 이를 철회한 것이다.
늘 그렇듯 이재명의 얕은 지식과 사고의 깊이, 그리고 가벼운 언행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재명이 자신을 지지하는 어느 종교단체 인사에게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환단고기는 신뢰할 만한 고구려 역사서
만약 이재명이 한단고기를 여러 차례 읽고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 그 내용을 체득했다면 그렇게 하루 만에 물러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재명이 어설픈 귀동냥 수준이 아닌 한단고기를 제대로 읽고 조상들이 물려준 한민족의 역사와 철학, 종교, 문화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면 망상가 수준인 마르크스나 레닌의 공산주의 사상이나 어쭙잖은 종북 주사파 논리에 세뇌되어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한단고기는 좌파와 우파가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근현대사와 달리 한민족의 상고사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와 철학, 문화와 사상, 그리고 정체성의 확립에 관한 문제이다.
중화사상으로 물든 조선왕조의 관료와 유학자들에 이어 일제시대의 잔재인 식민사학에 오염된 현재의 주류 사학계에 의한 한민족 역사 조작과 말살 시도를 극복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중국의 비군사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침략인 초한전(超限戰)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정상회담 차원에서도 진행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회담 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이 중국과 한국의 역사 이야기를 했다. 북한이 아닌 한반도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국은 실제로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한단고기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는 시진핑의 주장과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준다. 오히려 고대 수천 년 동안 중국이 한국의 일부였다(China used to be a part of Korea during the Goguryeo and preceding Korean dynasties for thousands of years.)
한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를 엮어 만든 역사서로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1979년 출간한 책이다.
삼성기 상권의 저자는 신라 승려 안함로, 삼성기 하권의 저자는 고려말 학자 원동중, 단군세기의 저자는 고려 후기 재상 이암, 북부여기 저자는 고려말 학자 범장, 태백일사의 저자는 조선 연산군과 중종 시기 학자이며 관료인 일십당 이맥이다.
이맥은 이암의 고손자이다. 이맥은 찬수관 재직 시 궁궐 깊숙한 곳 내각의 비장 도서를 읽고 한인의 한국, 한웅의 배달국, 그리고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상고사를 쓴다고 밝힌다.
한민족의 상고사에 관한 비장 도서는 명나라를 천자국으로 섬기는 조선왕조에서 여러 차례 민가에서 압수된 적이 있는 금서이므로 이맥은 내각에서 비장 도서를 읽고 집에 가서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쓰고 다시 가서 읽고 쓰고를 반복한다.
이맥이 읽은 비장 도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계속 인용되는 여러 가지 고기이며 모두가 지금은 사라진 고구려의 역사서이다.
삼국사기는 그러한 사라진 고서들의 편집본이며 사대주의자 김부식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발췌해서 만든 중화주의 역사서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는 집채만큼 큰 돌덩이에 글자를 새겨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것이다.
바위에 글을 새긴 고구려인이 종이에 기록한 역사서 한 권 남기지 않은 이유는 뭔가. 고구려 역사서는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 의해 모두 불태워졌다.
수개월에 걸친 고구려 역사서 소각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와 신라는 천 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시아의 패권국 고구려의 흔적을 없애고 중화사상에 입각한 왜곡된 역사서를 저술한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여러 편의 고구려의 역사서를 모은 것이 한단고기다.
진위 타령 전에 내용 집중해야
기존 사학계는 한단고기에 사용된 일부 단어가 근세 용어라거나 한단고기가 기존 역사에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난 문건이라거나 한단고기의 일부 기록이 기존의 중국 사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서라고 배척한다. 이런 주장은 모두 근거가 없다.
환국은 환단고기에서 주장하는 인류 최초의 국가로 태초의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국가, 산업, 자유, 평등, 인류, 헌법, 만방, 문명, 개벽 등 그들이 문제 삼는 단어는 대부분 중국이나 우리나라 옛 기록에 이미 등장한다.
또한 삼성기, 표훈천사 등 서적을 국가에 바치면 보상을 주고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공고 내용이 예종실록에 나오며 세조실록에는 조대기, 삼성기, 대변설, 고조선 비사 등의 서적을 관청에 바치라는 기록 등 한단고기에 수록된 문헌에 관한 수도 없이 많은 언급이 역사 기록에 나온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은 1934년 임시정부 시절 쓴 감시만어(感時漫語)에서 신라 최치원이 단군 시대 천부경(天符經)의 고비(古碑)를 구해 한문으로 번역하고 발문을 붙여 묘향산 석벽에 각(刻)하고 단기 4250년 정사년(1917) 계연수가 천부경(天符經)을 묘향산 숲속에서 발견했다고 전한다.
이시영의 ‘감시만어’에 등장하는 금서 목록은 △신지비사(神誌秘詞) △대변설(大辨說) △조대기(朝代記)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천사(表訓天詞) △삼성밀기(三聖密記) △도증기(道證記) △동천록(動天錄) △곤중록(壼中錄) △지화록(地華錄) △서운관비기(書雲觀秘記) △삼성기(三聖記) 등이며 이중 다수가 한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나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무오류의 역사서인가. 수천 년 전의 역사서는 인쇄본이 아닌 필사본이 기본이며 필사 과정에서 당대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비판자들이 사기(詐欺)라고 부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어떤가. 이천 년 동안 필사본을 만들면서 후대에 가필과 첨삭이 계속되며 중국 사서들도 서로 다른 충돌하는 사실관계와 용어가 부지기수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공자의 저술이든 역사서든 수천 년 전의 저술은 모두 필사본으로 전승되며 필사 당시의 언어와 환경에 맞추어 계속 바뀌며 원본은 없다. 심지어 석가모니 말씀은 부처님 사후 여시아문(如是我聞)의 형태로 구전되다 수백 년 후에 책으로 만들어진다.
이들 서적에 대한 신뢰는 그 출처가 분명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용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천 년 전의 역사서 한단고기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원본과 진위 타령을 하기 전에 내용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로 굳어지는 것 막아야
한단고기 문헌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발굴이 황하 문명보다 수천 년 앞선 중국 요령성 홍산 문화 유적이다. 적석총 등 고인돌의 연장선상인 돌무덤 그리고 각종 제단, 옥 제품, 빗살무늬토기 등 한반도계열의 유물이 요하 부근 홍산 유적지에서 출토된다.
쌀농사의 흔적인 볍씨와 토기의 갑골문 등 모두가 동아시아 문명의 원류가 황하 문명이 아닌 한민족의 홍산 문명이라는 걸 보여준다. 홍산 문명의 유적은 모두 하늘을 섬기고 제단을 쌓는 한민족의 문화다.
공자는 끝없이 전쟁으로 지새는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을 한탄하며 중국에 도가 없으니 군자의 나라인 청구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국은 한민족을 동쪽에 사는 큰활을 사용하는 두려운 민족이라는 뜻의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는 큰 대(大)자와 활 궁(弓)이 합쳐진 글이다. 한민족은 양보를 즐겨하고 다투지 않으며 스스로가 대국이나 작은 나라를 경시하거나 침공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쉽게 길을 양보하고 음식 대접을 즐겨하고 남녀가 따로 예를 지켰으므로 동방예의군자지국(東方禮儀君子之國)이라는 기록이 있다.
장인용의 저서 ‘주나라와 조선’에 의하면 공자는 은나라 왕족인 미자의 후손인 숙량흘의 아들이니 동이족이다. 숙량흘은 여러 전투에서 무공을 날린 이름난 무장으로 딸만 여럿인 이유로 칠순을 넘어 15세의 어린 신부를 맞아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인 공자를 얻는다.
단군조선의 전례를 따라 요와 순, 우임금의 경우와 같이 장자 상속이 아닌 혈연과 관계없이 현인에게 왕위를 양도하는 하나라, 은나라와 달리 주나라의 장자 중심 종법에 공자가 집착하는 이유를 공자의 탄생에서 짐작할 수 있다.
미자는 기자와 함께 은나라 말기 은나라 현인으로 불리던 사람으로 은나라 주왕의 이복형으로서 동족인 주왕을 배신하고 은나라를 침범해서 멸망시킨 주나라 무왕의 편에 선다.
미자는 주나라 무왕의 은나라 정벌 후 은나라 유민을 중심으로 세워진 제후국 송나라의 초대 제후로 봉해진다. 미자와 달리 기자는 한족인 주나라가 다스리는 송나라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단군조선으로 가서 고조선의 제후로 임명된다.
기자는 백이, 숙제와 마찬가지로 한족 치하의 주나라에서 살기를 거부한 사람이며 반면에 미자는 동족을 배신하고 한족에 투항한 경우이다. 동이족 후예인 공자의 한족 중심 중화사상인 춘추필법이 탄생한 배경이다.
한민족의 배달국과 고조선, 고구려의 영광이 고구려 멸망 이후에 중국과 신라에 의해 수천 년 동안 멸실과 조작이 반복되었으나 ‘한단고기’가 살아남아 사마천 ‘사기’를 비롯한 중국의 정사인 25사와 일부 역사서에 단편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충하여 한민족의 상고사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철저한 애국심 교육으로 세뇌된 ‘소분홍’이라 불리는 중국의 젊은 층은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쳐 동북공정을 시도하고 시진핑이 트럼프를 만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얘기해도 한국 내 반응은 없다.
그러는 사이 중국의 동북공정은 세계로 전파되어 한 세대, 두 세대가 지나면 조작된 역사가 정설이 된다. 중국이 역사를 조작하는 오래된 방법이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고구려와 단군조선의 일부
중국은 수천 년 동안 고구려와 단군조선의 일부였다. 중국의 하, 은(상)은 동이족 나라이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다. 유향 ‘설원’에 의하면 은 탕왕이 하 걸왕을 칠 때 조선의 승낙과 지원을 요청한다. ‘단군세기’에 의하면 하, 은, 주는 조선에 조공을 바치고 13세 단군 흘달은 걸왕의 요청에 하, 은 지역을 정벌한다. 23세 단군 아흘은 은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고 여섯 읍을 설치한다. ‘수서’ ‘송서’ ‘양서’ ‘남제서’는 고구려의 요동(현재 북경 지역) 점령과 백제의 요서, 호남, 일본 점령을 기술한다. 큰 호수가 없는 전라도를 현재 호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백제가 산동, 강소, 절강을 지나 중국 최대 담수호 동정호 이남의 호남성(후난성)을 지배한 역사 때문이다.
임승국 역 ‘한단고기’에 의하면 연개소문은 신라의 사신 김춘추에게 고구려, 백제, 신라가 힘을 합쳐 당나라를 멸하고 삼국이 단군조선 이래의 옛 영토에 따라 중국을 다시 분할 통치할 것을 제안하나 김춘추는 거절한다.
“당나라 사람들은 패역하기를 짐승에 가깝습니다. 청컨대 우리나 그대들은 반드시 사사로운 원수를 잊고 지금부터 삼국은 백성의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곧바로 당나라 서울 장안을 쳐들어가 도륙한다면 당나라 괴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오. 전승의 뒤에 옛 영토에 따라서 연정을 실시하고 인의로써 함께 다스려 약속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영구 준수의 계획으로 함이 어떻겠소?” 라며 이를 재삼 권하였으나 김춘추는 종내 듣지 않았으니 애처롭고 가석한 일이었다.
북애노인(北崖老人)은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 “김유신이 (당나라) 태종과 함께 고구려와 백제를 치는 한을 남긴 것은 국위를 살피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하고 봉책(封冊)을 받들어 조종(祖宗)을 욕되게 했으니 실상 이는 만세에 씻지 못할 더러움의 시작이라 하겠다”라고 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의하면 연암은 조선의 청나라 사신으로 떠나는 팔촌 형인 사신단 정사의 수행원 자격으로 연경(북경)까지 가지만 북쪽으로 300km 거리에 있는 열하의 청 황제 여름 궁전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다시 길을 나선다.
가는 도중에 고북구 조하를 건넌다는 기술이 나온다. 가는 곳마다 각종 중국 사서와 공자, 맹자, 주자의 글에 나오는 관련된 고사를 장황하게 들먹이며 감회에 젖는 연암은 조하를 건너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조하는 조선하의 바뀐 이름이다. 조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중국 한족이 한 짓이다.
북경 일대와 고북구를 포함한 하북성 지역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강역이며 후에 백이와 숙제의 고죽국과 연나라의 차지가 된다.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족의 나라인 요순의 하나라를 이은 은(상)나라가 한족의 주나라에 멸망하자 은나라에 속한 고죽국 왕자 백이와 숙제는 무도한 한족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며 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 사망한다.
춘추필법의 중화사상에 세뇌된 조선의 선비 연암은 이런 역사를 알 리가 없으며 끊임없이 만주족을 비하하고 한족을 찬양한다. 고구려와 중국의 경계를 이루는 패수가 압록강이나 대동강이 아닌 만주의 요하이며 고구려 평양성도 요하 근처에 있었다는 연암의 주장은 가상하나 이 역시 만주족에 대한 비하심에서 나온 것일 뿐이며 단군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강역이 북경을 넘어 중국의 중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연개소문의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요동성 함락에 실패하고 왼쪽 눈에 화살을 맞고 패퇴하고 장안에 입성한 연개소문에게 장안과 낙양 등 남부를 제외한 지금의 북경을 포함하는 북쪽 지방을 고구려에 복속시키는 협정을 체결한다.
“이세민은 궁하여 조치할 방도가 없어 사람을 보내 항복을 구걸하였다. 연개소문이 요령 성주 양만춘 등 수만의 기병을 이끌고 당나라 수도 장안에 입성하여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 강좌성을 고구려에 귀속하는 약정을 맺었다. 연개소문은 비상한 인걸이다. 막리지 연개소문이 죽고 나니 고구려에 의존하던 백제와 고구려가 같이 망하였다.” (김은수 역 ‘한단고기’)
한단고기에 수록된 천부경, 최치원이 번역
개천절은 서기전 2333년 10월3일 단군왕검의 고조선 개국을 기념하는 날이며 상해임시정부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다 같이 국경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1919년 삼일운동 독립선언서에도 단기 4252년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며 해방 후 단기연호가 정부의 공용연호가 되었으나 근대화의 물결 속에 1962년 단기연호는 서기로 교체된다.
단군왕검의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개국이념은 대한민국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한다고 법제화되어 있다.
올림픽 성화는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되나 대한민국 전국체전 성화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식을 거행한다.
북한은 1993년 평양의 단군릉에서 단군 유골을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단군릉에 대한 대대적인 조성작업을 한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도 국가 차원에서 단군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개천절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의 고조선 개국이 아닌 그보다 수천 년 앞선 한인(桓因)이라는 음차 표기의 하느님 나라 한국(桓囯)에서 한인의 아들 한웅이 태백산에서 신시개천(神市開天)을 하고 배달국을 세운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조 한웅의 신시개천으로 시작된 배달국은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 한민족이 단군 민족이 아닌 배달민족으로 불리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시작이 단군조선이 아닌 한웅의 배달국이기 때문이다.
신시개천 이후 다시 찾게 된 우리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한국이다. 하늘나라다. 대한민국이나 대한국 보다 상위의 개념이 한국이다. 아무리 커도 하늘만큼 클 수가 없으니 클 대(大)자는 사족이다.
홍익인간은 신시개천의 배달국에서 전래한 신교의 가르침인 삼신 사상과 일신강충, 성통공완, 제세이화, 홍익인간으로 이어지는 한단고기의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에 등장하는 가르침의 핵심 개념이다.
하늘의 뜻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 내려앉아 있다는 일신강충(一神降衷), 마음을 하늘의 뜻과 통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성통공완(性通功完), 세상을 구하고 하늘의 이치대로 구현한다는 제세이화(濟世理化), 그리고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홍익인간의 유교 버전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홍익인간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속적 수준의 사고에 머문 유교, 죽음 이후에 관한 제자의 질문에 삶도 모르는데 내세를 논할 수 없다는 수준의 공자와 유교의 모습이다.
한인, 한웅, 단군의 삼성 중 첫째인 한인은 한자 표기이며 우리말로 하면 하느님이다. 하느님을 한자로 음만 딴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 한웅, 한웅의 후예 단군이 이끌어 간 삼성과 삼신의 나라가 배달국과 단군조선이다.
수천 년간 이어온 신교에서 삼신은 또한 성명정(性命精)의 삼위일체를 나타낸다. 성은 마음, 명은 호흡, 정은 몸이다. 조의와 화랑을 비롯한 우리 선조들이 수행하던 법이다. 삼일신고에 설명된 대로 몸과 마음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고 유지하는 호흡을 잘 조절해서 하늘의 이치에 닿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불교는 정신의 수도를 강조하는 성, 기도에 방점을 두는 기독교와 단전 등 호흡으로 하늘에 닿고자 하는 선도는 명, 유교는 몸가짐을 강조하는 정에 치우친다.
유불선(儒佛仙)을 통합하는 현묘지도(賢妙地道)가 우리나라에 있다고 신라 시대 최치원이 신교(神敎)를 설명한다. 단전호흡, 국선도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수행법은 모두 수천 년을 이어온 신교의 가르침이다.
삼신(三神) 사상은 이미 성, 명, 정의 삼신이 개개인에 내려있으며 누구나 수련을 통해 하늘의 이치에 닿는다. 불교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의 원형이다. 시작되었으나 시작된 것이 없고 끝이 났으나 끝난 것도 없다는, 그래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은 전생과 윤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신교의 성, 명, 정 또는 천, 지, 인을 아우르는 삼신 사상, 삼위일체는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동학 개념에도 나타난다. 천, 지, 인은 한글의 창제 원리이며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천(•), 지(ㅡ), 인(ㅣ)을 조합해서 훈민정음 28자를 만든다.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자방고전(字倣古篆)’은 훈민정음이 새로 만든 문자가 아니라 옛 전자를 모방했다는 것이며 한글은 배달국과 단군조선에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문자의 복원이다.
한단고기에 수록된 천부경은 고대 언어로 쓰인 것을 최치원이 한자로 번역한 것이며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 발해에서 보낸 국서를 당나라 이태백이 한자로 번역하고 답서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사찰의 대웅전 위쪽 큰 원에 작은 점 3개 표시된 기호가 있다. 삼신 사상을 나타내는 기호다. 대웅전은 한웅을 모시던 한웅전이 불교의 유입과 함께 대웅전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대, 한 모두 크다는 같은 의미이다.
대웅전에서 밀려난 한인, 한웅, 단군은 대웅전 옆 삼성각에 자리를 잡는다. 성, 명, 정을 관통해 하늘, 땅, 인간과 만물이 하나가 되는 삼신 사상, 이는 천부경 81자에도 3의 배수, 9의 배수를 거쳐 전체 81자로 나타난다.
연암과 조선의 선비들이 비하하던 청나라 만주족은 단군과 고구려의 후손이며 만주족 예법인 삼육구배(三六九拜)도 신시개천 이래 한민족의 전통 예법이다.
돌고 도는 우주, 하늘, 진리의 이치를 숫자로 표기한 것이 한단고기 천부경이다. 만물은 하나다. 삶과 죽음도 하나다.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로 돌아간다. 하늘과 나는 원래 하나이며 하늘의 뜻이 이미 몸에 내려와 있으니 공부와 수양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고 널리 다른 사람이 깨닫게 도움을 주는 홍익인간의 삶을 살다 복본(復本) 하라는 것이 한단고기 천부경의 가르침이다.

◆ 황두형
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前 연합뉴스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