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진영 간의 정치적 도구로 쓰이면서, 이를 비판조차 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나 기득권화된 서사화로 진행하고 있는 것에 많은 사람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진=5·18묘지 관리소 누리집]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더 평등하고 더 관용적인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혐오표현을 막고 불편한 발언을 규제하면 차별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는 혐오표현 규제법을 강화하고, 온라인 게시물을 삭제하며, 특정 발언을 형사처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과연 사회를 더 관용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실증적 연구가 부족했다.
표현의 자유와 관용은 비례 관계
이러한 상황에서 2026년 국제 학술지 Kyklos에 발표된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1981년부터 2022년까지 115개국, 60만9000여 명을 대상으로 세계가치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관계를 개인 수준에서 분석한 연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랐다. 표현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국가적 가치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종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2.3%포인트 높았다.
연구진은 교육 수준, 소득, 종교, 정치 성향, 연령, 성별, 도시 거주 여부, 사회적 신뢰, 개인주의 성향 등 다양한 변수를 모두 통제한 뒤에도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 분석 모형을 바꾸고 국가별·연도별 차이를 제거해도 결과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더 주목할 부분은 관용의 대상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인종뿐 아니라 이민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무슬림, 유대인, 동성애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서도 더 높은 수용성을 보였다.
표현의 자유가 편견을 확대한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 자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다양한 집단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거짓도 공개되지만, 그것을 반박할 기회 역시 공개된다. 편견은 토론 속에서 검증되고, 허위 정보는 사실에 의해 수정된다.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수록 타인을 이해할 가능성도 커진다.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편견도 사라져
표현의 자유는 갈등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갈등을 폭력이 아닌 토론으로 해결하는 제도이다.
반대로 검열은 토론 자체를 차단한다. 국가나 거대 권력이 어떤 의견은 허용하고 어떤 의견은 금지하기 시작하면 시민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잃는다.
반론이 사라지고, 비판도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권력이 허용한 이야기뿐이다. 검열은 거짓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날 기회도 함께 없앤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나치 독일은 언론을 장악하여 반유대주의 선전을 대대적으로 확산시켰다. 르완다 대학살 당시에도 특정 라디오 방송은 증오를 선동하며 학살을 부추겼다.
두 사례 모두 표현의 자유가 지나쳐 발생한 비극이 아니었다. 권력이 정보와 언론을 장악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관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절차만 지키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기술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말할 권리를 인정할 때, 나 역시 언젠가 소수 의견이 되었을 때 보호받을 수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다수의 권리가 아니라 소수의 권리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연구가 표현의 자유가 관용을 ‘원인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도 인과관계가 아니라 강한 상관관계를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적어도 표현의 자유가 혐오와 차별을 키우는 가치라는 주장에는 실증적 근거가 약하다는 사실은 분명히 보여준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안전과 질서, 혐오 방지라는 명분 아래 표현의 자유를 조금씩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줄일수록 사회가 더 관용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이제 실증적 검증 앞에서 다시 평가받아야 한다.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표현의 자유와 관용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가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일수록 서로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능력도 커질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단지 한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다원사회를 유지하며, 관용의 문화를 키우는 가장 중요한 토대 가운데 하나를 지키는 일이다.

◆ 松山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송산)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