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등 특위 위원들이 2일 현장 조사를 위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를 방문,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거 무결성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선거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절차라면, 그 절차에는 결과 못지않은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유권자가 방해 없이 투표했는지, 한 사람의 표가 다른 사람의 표와 같은 가치로 취급됐는지, 투표의 비밀이 보장됐는지, 투표함과 투표지가 안전하게 보존됐는지, 개표와 사법구제가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졌는지가 모두 선거 무결성의 일부다.
대한민국 헌법도 이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헌법 제41조는 국회를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한다. 헌법 제67조 역시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된다고 정하고 있다.
선거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국민주권이 국가권력으로 전환되는 헌법 절차다.
문제는 한국의 선거 쟁송 법리가 이 헌법적 의미를 충분히 반영해 왔느냐는 점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24조는 선거에 관한 규정 위반이 있더라도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해 선거무효 또는 당선무효를 판결하도록 한다.
대법원 판례도 이 문턱을 “후보자의 당락에 관하여 현실로 있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발생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인정되는 때”로 해석해 왔다.
이 법리는 선거 결과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설명 가능하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모든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결과를 흔들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선거 무결성의 관점에서 보면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유권자가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는지, 선거관리 절차가 무너졌는지, 투표함과 투표지의 보전 과정이 검증 가능한지보다 최종 당락 산식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국제기준은 ‘투표권 행사의 효과적 기회’를 본다
국제기준은 선거를 단순한 개표 결과로 보지 않는다.
자유권규약(ICCPR) 제25조는 시민이 공적 사무에 참여하고, 보통·평등선거와 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될 권리를 보장한다.
유엔 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25호는 이 조항이 국민의 동의에 기초한 민주정부의 핵심에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또 국가는 시민이 권리를 향유할 “효과적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입법적·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국제기준은 “결과가 바뀌었는가”만 묻지 않는다. 유권자에게 실제로 투표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됐는지, 선거 절차가 자유롭고 공정했는지, 개표와 검증이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됐는지를 함께 본다.
베니스위원회 선거문제 모범규준도 보통·평등·자유·비밀·직접선거와 정기선거를 선거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면서, 이 기준이 선거 전·선거 기간·투표 직후까지 적용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국제의회연맹(IPU)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기준도 같은 방향이다.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후보자와 정당의 공정한 경쟁, 선거권 침해에 대한 구제 가능성은 선거의 본질적 조건이다.
선거는 투표소 문이 닫히고 숫자가 발표됐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그 숫자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권력은 정당성을 얻는다.
‘당락 영향론’이 무결성 원칙을 압도했다
한국 사법부는 이 지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선거 무결성의 최종 방어선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선거 쟁송과 헌법 판단은 절차적 무결성보다 결과 안정성에 무게를 둬 왔다.
선거관리의 위법, 투표권 행사의 장애, 투표함과 투표지 관리의 불투명성이 제기돼도 최종 판단의 문턱은 대체로 “당락에 영향을 미쳤는가”로 수렴됐다.
물론 선거 결과의 안정성도 민주주의에 필요하다. 아무런 문턱 없이 선거 결과를 뒤집는 일은 또 다른 혼란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안정성은 무결성 위에 서야 한다. 절차가 무너졌는데도 결과가 안정돼야 한다는 논리는 민주주의의 자기부정이다. 선거의 안정성은 국민이 선거 과정을 신뢰할 때 생기는 것이지, 사법부가 사후적으로 의혹을 좁게 잘라낼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선거 무결성 원칙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라는 비판은 정치적 과장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 기관은 무결성을 직접 훼손한 1차 행위자가 아닐 수는 있다. 1차 책임은 선거를 관리한 기관에 있다. 그러나 선거관리기관의 실패를 헌법적으로 통제하고, 참정권 침해를 권리 침해로 판단하며, 절차적 무결성을 회복해야 할 최종 책임은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에 있다.
그 최종 방어선이 당락 영향론과 결과 안정성의 논리 뒤로 물러섰다면, 이는 단순한 판례 경향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를 권리의 문제에서 산식의 문제로 축소한 것이다. 참정권 침해를 헌법 문제로 보지 않고 당락 계산의 변수로만 취급한 것이다. 이때 선거 무결성은 제도 안에서 후퇴한다.
6·3 참정권 박탈 사건이 던진 질문
6·3 참정권 박탈 사건은 바로 이 낡은 법리를 정면으로 시험하고 있다.
쟁점은 단순히 어느 후보가 이겼느냐, 몇 표 차였느냐가 아니다.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는지, 투표가 중단됐는지, 투표함과 투표지가 온전히 보존됐는지, 사전투표와 본투표, 이송과 개표 과정이 검증 가능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지가 핵심이다.
공직선거법 제198조도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어느 투표구의 투표를 실시하지 못한 때와 투표함의 분실·멸실 등의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재투표를 실시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재투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재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당선인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 역시 결과 영향이라는 문턱을 두고 있지만, 그 출발점은 분명하다. 투표가 실시되지 못했거나 투표함의 보전이 무너진 경우, 선거 절차 자체가 문제 된다는 것이다.
이제 사법부가 답해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존재해도 당락 차이가 크면 문제가 없는가. 투표함과 투표지 관리의 체인 오브 커스터디가 흔들려도 결과 숫자만 맞으면 선거는 유효한가. 선거관리기관의 책임 있는 기록이 부존재하거나 검증이 불가능해도 사법부는 결과 안정성만 말할 수 있는가.
국제기준의 답은 분명하다.
선거는 숫자가 아니라 신뢰다. 개표 결과는 선거의 결론일 뿐, 선거의 전부가 아니다.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 선거관리의 투명성, 투표함과 투표지의 보전, 개표 검증, 사법구제가 하나의 사슬로 이어질 때 선거는 무결성을 갖는다.
그 사슬이 끊어졌다면 사법부는 당락 영향만 물어서는 안 된다. 헌법상 참정권이 침해됐는지, 국민주권의 행사 절차가 훼손됐는지, 선거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 가능한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다.
선거 무결성은 패자의 불복을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패자가 승복할 수 있게 만드는 최소 조건이다. 절차가 투명했고, 관리가 공정했으며, 의혹이 제기됐을 때 검증이 가능했다는 확신이 있을 때 패자는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 확신이 무너진 선거에서 승복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의 강요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선거를 당락 계산의 영역에 계속 가둘 것인가, 아니면 선거 무결성을 헌법적 기준으로 다시 세울 것인가.
6·3 참정권 박탈 사건은 단순한 선거 분쟁이 아니다. 대한민국 선거법리 전체가 국제기준과 헌법 원칙 앞에서 다시 심판받는 사건이다.
■ 주요 국제기준 약어
ICCPR: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내에서는 통상 자유권규약으로 불린다.
UN Human Rights Committee: 유엔 자유권위원회 ICCPR의 이행을 감독하고 일반논평을 통해 조약 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유엔 기구다.
General Comment No. 25: 일반논평 25호 ICCPR 제25조의 정치 참여권·선거권·피선거권 보장 기준을 설명한 해석 문서다.
Venice Commission: 베니스위원회 유럽평의회 산하 헌법 자문기구로, 선거제도와 헌정질서에 관한 국제 기준을 제시해 왔다.
IPU: Inter-Parliamentary Union 국제의회연맹. 1994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기준에 관한 선언’을 채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