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역사국민운동은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4일 대구시 담수회 건물 3층 강당에서 창립 기념 학술토론회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주동식, 김용삼, 이영훈, 류석춘 발표자. [사진=임요희 기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새역사국민운동’이 대구에서 학술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번에 결성된 새역사국민운동은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4일 대구시 담수회 건물 3층 강당에서 창립 기념 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앞서 이영훈 교수는 선언문을 통해 “박근혜, 윤석열 두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우파 정치세력은 풍비박산이 났다”며 “이게 다 역사의식의 부재 때문이다. 역사의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역사관을 만들어내기 위해 새역사국민운동이 내건 강령은 ①광주를 해방하라 ②한국사 교육을 중단하라 ⓷이승만과 박정희 장기 집권은 정당했다 ④자유 대만의 수호를 위한 국제전쟁에 참가한다의 네 가지다.
‘광주정신’을 정립한 이는 김대중
먼저 발표에 나선 이영훈 교수는 ‘광주정신, 그 역사적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1980년 광주는 어떤 불의에 저항했는지 무엇을 타도하고자 했는지 무엇을 세우고자 했는지” 해부했다.
새역사국민운동은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4일 대구시 담수회 건물 2층 강당에서 창립 기념 학술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진=임요희 기자]
이 교수에 따르면 “뛰어난 달변가이자 사상가”였던 김대중은 1987년 평화민주당 창당 연설에서 “동학운동은 민중의 권리를, 3·1운동은 민족의 독립정신을, 4·19는 민족의 민주화 결의를 대표했다”며 “이러한 민중·민족민주의 의지를 바탕으로 민족 통일 의지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1980년의 광주의거였다”고 했다.
이영훈 교수는 “여기에 김대중이 말하는 광주정신이 담겨 있다”며 “김대중은 한 시대를 망가뜨리고 또 세운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말한 모든 사건은 혁명이 아니라 정변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행사에 참가했던 최익현 자유와혁신 대구시 동구을 당협위원장은 ‘광주정신’에 의문을 표하며 “1980년 당시 광주 내부에서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서 평화로운 방법이든 거짓 선동이든 ‘선동’이 있었을 것”이라며 “광주정신이 무엇인지는 광주가 정율성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정율성(1914~1976)은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이주,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인물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공식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가)’과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1992년 광주광역시는 그를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여겨 정율성 거리를 조성하고 동상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5·18 비극의 주범 윤흥정, 정웅, 안병하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용삼 대기자는 ‘광주 5·18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제로 30여 분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이 이광로 장군을 시켜 광주 사건의 전말을 조사한 결과 초기 진압작전에서 정웅 31사단장, 윤흥정 전투교육사령관 등의 심각한 과오를 발견하고 처벌을 건의했으나 최규하는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의견이 다르다며 그의 조사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만약 정부 합동조사단의 건의에 따라 이들을 처벌했다면 광주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5·18을 ‘광주사태’로 악화시킨 정웅이 광주의 영웅으로 둔갑한 것이다. 정웅은, 자신은 강경 진압에 반대했으며 그 때문에 광주 진압작전 종료 후 지휘권 박탈당하고 강제 예편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고 그 결과 광주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해 91.5%라는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김용삼 대기자는, 그러나 역사는 그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공수부대의 시위 진압 방식은 위력 행진을 통해 시위대에 겁을 준 다음 세 방향을 봉하고 한 방향만 퇴로를 열어줘 군중을 해산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정웅은 “시위대 퇴로를 차단해 끝까지 추격, 전원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이 명령에 의해 7공수 33-35대대가 시위대 체포 과정에서 과격한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 저녁부터 광주 시내에 악성 유언비어가 퍼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됐다.
당시 7공수 33-35대대장의 검찰 진술에 의하면 정웅은 “시내에 난리가 났다.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데 진압 능력을 상실하였으니 우리 군인이 출동해야 한다. 군인이 진압 못 하면 큰일이니 죽음을 각오하고 진압하라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진압이 어려워지자 정웅은 계속해서 찔끔찔끔 군을 투입하였고 그 결과 10명 단위로 흩어진 군이 거꾸로 시위대에 포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군이 포위를 뚫고 나가려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무기고를 못 지켜 비극을 키운 이도 정웅 사단장이었다. 5월18일 새벽 3시5분 전종채 2군사령관은 무기고 안전대책을 강구할 것을 지시한다. 정웅 사단장은 이날 저녁 윤흥정 사령관에게 무기고 접근자에 대한 발포 승인을 건의했으나 윤흥정은 “군인복무규율에 따라 지휘관 재량으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정웅은 자기가 건의하고도 적절한 조치 취하지 않아 결국 시민들에게 무기를 탈취당해 비극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결국 5월20일 현장의 공수부대 대대장들이 광주시내에서 병력을 철수할 것을 건의하게 된다. 윤흥정 사령관은 5월20일 밤 9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공수부대의 외곽 철수를 요청하여 승인받는다. 그러나 윤흥정은 철수를 승인받고도 현장 지휘관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또 하나의 문제 인물은 시위진압 책임자인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이다. 5월18일 아침, 전남대 앞에서 학생과 공수부대가 충돌하여, 파출소가 습격당하고 경찰차가 불타게 된다. 이러한 긴급 상황에서 시위진압 지휘 책임자인 안병하 국장은 당일 낮 오찬을 위해 도경 청사를 떠난 후 연락이 두절됐다가 상황이 크게 악화된 오후 늦게 업무 복귀했다. 그럼에도 그는 광주에서 ‘국민과 경찰을 지킨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윤흥정, 정웅, 안병하가 5·18이라는 비극을 키운 인물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두환이 ‘역사의 죄인’으로 내몰린 것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좌파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김용삼은 전했다.
5·18을 타락시킨 건 주사파
주동식 전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은 ‘5·18이 87체제 오염과 타락의 주범’이라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그는 “광주 시민은 나름대로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했지만 정치 철학적으로 공백이었기에 그 공백을 주사파가 채운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 법 집행 아니면 5·18에 대한 비판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그만큼 좌파는 궁지에 내몰려 있다고 밝혔다.
이날 류석춘 새역사국민운동 공동대표는 학술 발표를 요약 전달하면서 “김용삼 대기자의 발표는 매우 새로웠다. 현지 사령관들이 그렇게 엉터리였다니 놀랍다”고 소감을 전달한 후 “5·18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바로 청산해 버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무책임”을 성토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부정선거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면서 토론자 중 한 사람이 “부정선거는 있을 수 없다”고 하자 장내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다. 또 학술토론회 제목처럼 새역사국민운동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에, 객석에서는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광주시민은 속았다!
정웅이란자에게
그런 거짓이 있어서
518순수성을 인정 못받는다
김영삼의 역사적 과오!
지금 눈으로 보고도 부정선거 없다는
외눈박이가 있다니 한심하다
부정선거 없다?
왜 북한군개입에 대한 주제는 아예 없는지..4시간만에 예비군 무기고를 털수있는 단체나 조직에 대한 언급도 없는..그냥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주고..화해를 이뤄내자는 수박 겉핧기식 발표였다고 생각합니다. 주동식전의원의 부정선거가 없다는 발언은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지금도 대구,경북이 낙동강전선의 마지막 보루라는 느낌을 받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