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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입틀막법에 저항한다!… 낙타처럼 무릎 꿇느니, 기린처럼 서서 죽겠다”
  • 박필규 편집위원
  • 등록 2026-07-06 12: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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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법 감옥으로 나를 잡아가서 나의 입을 찢어라”


2026년 7월7일부로 시행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 이른바 ‘7·7법’과 ‘입틀막법’이 가져올 현상은 참혹하다. 

 

권력은 ‘허위·조작 정보 근절’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그 칼날은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의 손목과 자산 강탈을 겨누고 있다. 

 

언론사는 자체 검열을 강화하고, 1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둔 플랫폼 기업은 이제 정부의 입맛에 맞춰 게시물을 삭제하고 차단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의 통신법인가, 아니면 ‘정보통제국가’의 지침인가?

 

이 법의 가장 치명적인 독소는 ‘허위·조작’ 기준의 ‘모호함’을 권력이 심판하는 데 있다. 무엇이 허위이고 무엇이 조작인가. 정권에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탐사보도나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의혹 제기조차, 허위로 몰면 어떤 보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사는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암흑기를 버텨야 하는가. 이런 비굴함이 없다면 ‘미디어 배상책임보험료’를 지금보다 몇 배로 증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형 유튜버, 언론사,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손해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1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필자는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보 위험을 알리고, 공익 목적의 견해를 담은 칼럼을 쓸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볼 때 공익이 아니고, 진영 논리에 반하고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라도 고소와 고발을 할 수 있다니! 이 세상에 칼럼을 고발하는 나라는 없다. 

 

과거 유신시대 긴급조치 9호가 소수 야당의원과 비판적 언론을 탄압하는 눈에 보이는 ‘창과 칼’이었다면, 7·7법은 보이지 않게 국민 다수의 표현의 자유마저 막는 ‘물과 공기의 차단’에 가깝다. 

 

과거 북한이 이웃 간에 서로 감시하게 만든 ‘5호 담당제’를 운영했다면, 7·7법은 거대 플랫폼을 ‘빅브라더’로 만들어 전 국민의 입을 막는 ‘디지털 5호 담당제’나 다름없다.

 

이제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자는 ‘자기 검열’이라는 족쇄를 찰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면 고소당하지 않을까’ ‘내 콘텐츠가 삭제당하고 계정이 정지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이미 개정 법안 예고 때부터 국민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14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국회 청원 게시판을 통해 악법 철회를 외치고, 국제사회가 ‘표현의 자유’ 훼손을 경고했지만 정권은 시민들의 비명 같은 경고를 묵살했고 법 시행을 강행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한 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공론장의 질식이다. 히틀러 집권기 독일의 ‘악의적 비판 방지법’과 스탈린 체제의 ‘형법 58조’는 정당한 비판마저 ‘악의적 유포’로 낙인을 찍고, 권력이 국민의 일상을 감시했다. 공산국의 인터넷 규제와 7·7법 개정안은 플랫폼을 압박해 보이지 않는 ‘디지털 창살’을 만드는 악법이다. 

 

빅브라더의 눈은 이제 스마트폰까지 응시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과잉 대응을 우려해 선제적인 삭제에 나설 것이고, 시민들은 안전한 언어만을 골라 쓰는 비굴한 익명성 뒤로 숨게 될 것이다. 이렇게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양심적 표현마저 얼어붙게 하는 게 586민주화운동의 최종상태인가?

 

안보 관련 글을 써온 안보 학도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 진영의 공익 기준에 맞추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너진 안보를 보면서 안보 찬양의 죽은 글을 쓸 수는 없다. 구구단 분석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할 수도 없다. 

 

불특정 국민을 탄압하는 입틀막 독재가 끝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법의 포로가 되어 법정에서 당당히 ‘무죄가 아니면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겠다. 

 

정당한 안보 불안 제기조차 허위로 규정하여 징벌적 배상을 묻는다면, 몸의 노역으로 배상에 응하겠다. 배상금 10억이면, 일일 10만 원을 상계처리 하더라도 1만일. 27년5개월을 복역해야 한다. 27년을 복역한 ‘넬슨 만델라’보다 5개월을 더 복역해야 한다.

 

필자는 이 악법을 막지 못한 야당을 원망했다. 야당은 지금이라도 헌재에 악법의 위해성과 허구성을 제시하여 위헌으로 처리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배재고의 즉흥적 ‘가야지 타령’은 5·18에 대한 도전이 절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역사 비판의식보다 갈라치기하는 권력의 만행과 폭주에 대한 조롱과 저항의 발로였을 것이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맨주먹 만세로 일어서던 우리 겨레엔 불의에 저항하는 유전자가 있다. 법으로 입을 닫고 펜을 꺾고 함성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지금의 오만한 권력은 인도 간디의 무폭력 저항에 영국도 항복한 정의의 역사를 상기하라. 

 

국민의 입을 틀어막아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전체주의 발상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가? 그의 머리는 아주 잠시, 권력 유지에 기여하겠지만 권력 붕괴의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다. 

 

인류 문명에 반하는 악법이 시행되고 고소와 고발을 당하면 들끓는 국민의 분노를 권력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캄보디아 공산정권이 인터넷을 차단했다가 무너진 사례를 상기해야 한다. 

 

악법으로 국제무대의 조롱이 되고 무역과 금융 제재의 단초가 된다면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가 버티겠는가? 지금이라도 악법을 폐기하는 용단을 기대한다.

 

다수의 분노는 총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했다. 이미 저질러진 범죄를 덮겠다고 5천만의 입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게 누구의 정의인가? 진실을 말하는 대가가 ‘범죄’라면, 우리는 그 낙인에 찍히고 함께 싸워야 한다. 

 

7월7일, 처음보는 감옥의 문이 당신들이 쌓아 올린 오만한 권력을 집어삼킬 무덤이 되지 않으려면 비판적 국민을 잡아가고 국민의 열린 입을 막는 만행을 멈추길 바란다. 

 

필자에게 글쓰기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심장이다. 심장은 멈추면 죽는다. 진실을 향한 펜과 키보드는 결코 눈치를 보거나 무뎌질 수 없다. 이 오만한 법의 횡포에 굴복하기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죄인이 되기를 선택하겠다. 영육과 양심까지 굽히며 살 자신이 없다. 낙타처럼 무릎을 꿇느니 기린처럼 서서 죽기를 선택하겠다. 

 

오늘 나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없는 우리는 불의한 시대에 저항의 방점을 찍는다. 양심의 창작물조차 상대 진영의 공익과 정서와 정의를 해쳤다면 나부터 잡아가서 ‘입틀막’의 형틀에 묶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곤죽을 내라. 

 

통증이 일상이 된 나의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길 바란다. 표현과 양심과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안보 학도로 살아야 한다는 게 회의감이 몰려온다. 그래도 살기 위해 나부터 이겨라고 동지들의 조언을 듣는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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