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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이재명 ‘빨리빨리’… 호남 반도체는 산업정책인가, 도박인가
  • 김영 기자
  • 등록 2026-07-06 14: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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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사장·SK하이닉스 대표이사 배석한 청와대 회의서 “오늘 부지선정 확정” 주문
  • 기업은 공시로 ‘확정 투자 아님’ 선 그었는데, 정부는 속도전·강제취득까지 압박
  • 인프라는 돈으로 깔 수 있지만, 수요와 가격은 대통령 지시로 만들 수 없다

이재명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삼성전자 김용관 사장과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이사가 기업 대표로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정부가 ‘3대 메가 프로젝트’로 부르는 구상, 사실상 한미일보가 ‘호남 반도체’로 명명한 추진안에 대해 “오직 속도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삼성전자 김용관 사장과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이사가 기업 대표로 참석했다.

 

이재명은 이 자리에서 “오늘 추진 체제를 정비하고, 구체적으로 부지 선정에 대해 논의해 확정을 지어야겠다”고 했다.

 

말은 기업 지원이었다. 그러나 회의의 실제 그림은 달랐다.

 

기업은 아직 확정 투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낸 공시는 ‘장래사업·경영계획 공정공시’였고, 확정 투자 결정 공시가 아니었다. 규모와 일정의 변경 가능성, 향후 이사회 승인 조건, 후보지 성격도 붙어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 회의장에서는 부지선정 확정, 행정 절차 병행, 토지 강제취득 절차 동시 진행, 환경영향평가 기존 결과 원용, 전력·용수 선제 확보가 한꺼번에 거론됐다.

 

이는 산업정책이라기보다 기업 목조르기에 가까운 장면이다.

 

기업이 시장 수요와 제품믹스, 장기 고객 계약, 재무 여건을 따져 투자 여부를 판단하면, 정부는 그 판단을 존중하고 필요한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이 정상이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송전망, 세제와 인허가는 정부가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수요와 가격, 투자 회수 가능성은 대통령 지시로 만들 수 없다.

 

이재명은 “기업에서 오신 분들은 체면 차리기나 추상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구체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에 필요한 것은 체면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수요다. 어떤 반도체를, 어느 고객에게, 어떤 가격에, 몇 년 동안 팔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800조 원 규모의 투자는 국가전략산업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베팅이 된다.

 

확정 공시 없는 800조, 왜 정부는 확정처럼 말하나

 

한미일보는 앞서 3편의 심층분석을 통해 이 문제를 지적했다.

 

1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시를 기준으로 ‘800조 호남 반도체’가 확정 투자가 아니라 장래계획·가이드라인·후보지·변경 가능성이 붙은 조건부 구상에 가깝다고 판정했다.

 

2편은 2026년 메모리 부족이 2030년대 신규 팹 4기의 충분조건은 아니며, 장기 수요계약·제품믹스·기존 거점 한계·총원가 검증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3편은 전력·용수·RE100·원전·한전망 문제를 따졌다.<하단 관련기사 참조>

 

그러나 전력과 용수는 본질의 전부가 아니다. 중요하지만 부차적이다. 돈과 시간을 들이면 송전망은 깔 수 있고, 용수관도 묻을 수 있다. 세제 지원과 보조금, 특별법과 인허가 단축으로 부지와 기반시설도 어느 정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 기반 위에 들어설 공장이 20년, 30년 동안 돈을 벌 수 있느냐’다.

 

연합뉴스 보도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기업들로선 부지가 확보되고 전력과 용수 등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된다면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경제 상식에 절반만 부합한다.

 

부지와 인프라가 갖춰지면 투자 여건은 좋아진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사업성의 확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것과, 공장을 지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프라는 전자이고, 사업성은 후자다.

 

사업성을 건너뛴 투자 결정은 경제 상식에 맞지 않는다. 전력과 용수는 공장을 돌리는 조건이지, 제품을 팔아주는 고객이 아니다. 송전망은 수요를 만들지 못하고, 용수관은 가격을 보장하지 못한다.

 

팔릴 물량과 가격, 투자 회수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8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위험한 베팅이다.

 

800조는 끝이 아니다

 

800조 원은 숫자 장난으로 넘길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2026년도 대한민국 총지출은 727.9조 원이다. 호남 반도체 투자 규모로 거론되는 800조 원은 국가 1년 예산보다도 큰 돈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력·용수·송전망·산단 기반시설·세제 지원·보조금 등 공공 인프라 비용이 모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지 확보 자체가 하나의 선택권이 될 수 있다.

 

땅을 먼저 확보해두고 시장 여건이 좋아지면 그때 공장을 지으면 된다. 반대로 수요가 꺾이거나 가격이 무너지면 투자를 늦출 수 있다. 그 사이 토지 가치가 오르면 기업 입장에서는 손실을 일부 방어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다르다.

 

정부와 지자체가 전력망, 용수망, 도로, 산단 기반시설, 세제 지원, 보조금까지 먼저 깔아놓은 뒤 기업이 “아직 투자할 때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면 그 부담은 공공에 남는다.

 

기업에는 부지 확보가 옵션일 수 있지만, 국가에는 인프라 선투자가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호남 반도체의 실제 국가적 부담은 800조 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 공장과 설비에 돈을 넣고, 국가는 전력과 물과 부지와 세제 지원을 떠받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사업성이 맞으면 이는 국가 산업의 대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요 예측이 틀리면 기업 투자금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국민 세금과 공공 인프라 투자까지 함께 위험해진다.

 

반도체 산업은 부족할 때 투자를 결정하면, 완공될 때 과잉이 오는 위험이 반복돼온 사이클 산업이다.

 

지금의 AI·HBM 호황이 2030년대 대규모 신규 생산능력의 수익성을 그대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범용 메모리인지, HBM인지, 첨단 패키징인지, 파운드리인지에 따라 투자 회수 가능성은 완전히 달라진다.

 

“반도체 수요가 늘어난다”는 말만으로 800조 원짜리 투자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재명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손을 잡고 있다. 당시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지만, 공시는 확정 투자 결정이 아닌 장래사업·경영계획 성격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확정 투자라면 공시하라

 

한미일보는 지난해 삼성전자의 450조 원 투자 발표를 두고 “왜 공시가 아니라 보도자료였나”라고 물은 바 있다. 대규모 투자계획을 보도자료로만 발표할 경우, 외국 기준에서는 투자자 보호와 공시 책임 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하단 관련기사 참조>

 

이번 호남 반도체는 그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이번에는 기업들이 공시를 냈다. 하지만 그 공시는 확정 투자 선언이 아니라, 확정이 아니라는 점을 시장에 고지하는 방어적 공시에 가까웠다.

 

2025년 삼성 450조 논란의 질문이 “왜 공시가 아니라 보도자료였나”였다면, 2026년 호남 반도체 논란의 질문은 “기업은 공시로 미확정이라고 선을 그었는데, 왜 정부는 확정 사업처럼 밀어붙이는가”다.

 

오늘 청와대 회의 이후 시장이 확인해야 할 문서는 대통령 발언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시다. 이재명의 판단이 맞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확정 투자 공시로 답해야 한다.

 

정부가 말한 대로 800조 호남 반도체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확정적 투자사업이고, 부지선정과 인허가, 전력·용수 지원까지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만큼 사업성이 충분하다면 두 기업은 보도자료나 행사 발언이 아니라 투자 결정 공시로 시장에 설명해야 한다.

 

실제 투자 결정이 내려졌다면 이사회 결의, 투자 금액, 투자 기간, 투자 목적, 자금 조달, 부지와 설비 계획이 따라와야 한다. 그것이 시장에 대한 책임이고 주주에 대한 책임이다.

 

반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확정 투자 공시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 사업이 아직 기업 내부에서도 확정 투자 단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확정처럼 말하고, 기업은 공시에서 미확정이라고 방어하는 상태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

 

800조 원은 대한민국 1년 예산을 넘어서는 규모다. 여기에 전력·용수·송전망·산단 기반시설·세제 지원·보조금 등 공공 인프라 비용은 별도로 붙는다.

 

이런 사업을 정치 행사와 대통령 발언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상적인 산업정책이 아니다.

 

도박은 반드시 망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공하면 대박이 날 수도 있다. 호남 반도체가 장기 수요를 확보하고, AI·HBM 시장의 호황을 이어가며, 기존 반도체 벨트와 보완 관계를 만든다면 대한민국 산업의 또 하나의 승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하면 손실의 규모도 국가 단위가 된다. 800조 원짜리 투자에서 수요 예측이 빗나가고 공급 과잉이 오면 기업 투자금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부지, 송전망, 용수, 세제 지원, 보조금, 지방정부 인프라, 국고 지원이 함께 묶인다.

 

잘되면 대박이고, 잘못되면 나라 재정과 기업 재무제표가 동시에 다칠 수 있다. 그래서 도박이라는 지적이 성립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의 투자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시장을 보고 투자하면 정부는 인프라를 지원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 회의에서 들린 것은 기업 판단의 존중이 아니라 속도전이었다.

 

팔리지 않는 반도체는 권력으로 팔 수 없다

 

정리하면 간단하다.

 

이재명의 판단이 맞다면 기업은 확정 투자 공시로 답해야 한다. 기업이 확정 공시로 답하지 못한다면 정부도 확정 사업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확정 투자라면 공시하라. 공시할 수 없다면 확정처럼 말하지 말라.

 

인프라는 돈으로 깔 수 있지만, 수요는 권력으로 만들 수 없다. 사업성 없는 ‘빨리빨리’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을 함께 위험한 베팅판에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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