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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 투쟁 9일 차 김은구 대표, 배재고 사태와 5·18에 대해 입 열다
  • 임요희 기자
  • 등록 2026-07-07 18: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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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면 유공자 명단부터 공개해야
  • 입틀막법으로 처벌하겠다고 겁박하는 것이 민주주의?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금식 중인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한미일보

김은구 대표가 금식 투쟁 중인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트루스포럼 천막. Ⓒ페이스북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금식 9일차를 맞은 김은구 서울대 트루스포럼 대표가 배재고 사태와 5·18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은구 대표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배재고 사태는 5·18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사례”라며 “민정당 당사 매각 금액을 유용한 사건으로 인해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거물 정치인 사이의 정치적 타협과 이에 따른 정치적 판결이 있었지만, 국민적 합의와 공감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라고 전달했다.

 

이어 김 대표는 “우선 5·18이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이라면 유공자 명단부터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공자는 국가에 대한 공이 있다는 것이기에 개인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고,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숨기는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5·18이 과연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맞는지 물으며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5·18의 북한 개입을 기정사실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2024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모든 의문을 해소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을 짚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군의 광주 일원 침투 주장 사건’, 이른바 직바-15의 조사 대상이 되는 ‘북한군’의 범위는 북한군 신분으로 침투한 간첩이나 공비 1~2명 수준이 아니라 ‘최소한 수백 명 규모의 북한 특수군 부대’로 한정되어 있었다”며 “따라서 해당 보고서의 결론만으로 소규모 공작원, 간첩망 또는 다른 형태의 북한 관련성 가능성까지 모두 해소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종합보고서 p.1113〕”

 

김 대표는 결국 궁극적인 진실은 북한이 해방된 이후에나 드러날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5·18을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 성역화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면서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면, 이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민주적으로 설득할 일이지 입틀막법으로 처벌하겠다고 겁박하거나, 이번처럼 배재고 친구들의 5·18묘역 참배를 강제하고 배재고를 폐교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인가,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 민주주의라고 하던 분들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어 “서울대 트루스포럼은 얼마 전 5·18에 관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자보를 부착하고 에브리타임에 공유해 예상보다 더 많은 호응을 얻었다”며 “서울대 에브리타임은 학부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5·18을 아무리 성역화하더라도 청년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관심과 의혹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언급했다.

 

또 김 대표는 국민의힘 안에서도 이번 배재고 사태에 관해 “학생들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지만 징계는 과도하다”는 식의 대응을 안타까워 했다. 여전히 본질을 빗겨 간 대응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5·18이 국민 모두의 지지를 받는 민주화운동이 되려면, 적어도 대자보에서 지적한 질문들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답변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좌우를 떠나 모든 국민이 존경하는 민주화운동으로 기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 또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여….

 

다음은 김은구 대표가 첨부한 ‘트루스포럼 5·18 대자보’다. 

 



개헌반대! 5·18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인가?

 

-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기대하며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 숫자는 대략 2백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백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김남주

 

“5·18이 진정 모든 국민이 존경하는 민주화운동이 되려면 그에 대한 반론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법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정치적 해석이 갈리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평가를 법으로 강제하고 겁박하는 것이 바로 검열이고 독재다.” -2024.07.15 서울대 트루스포럼 대자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라면, 남조선의 혁명을 위해 200만 정도는 죽여야 된다던 김남주를 5·18의 위인으로 떠받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전남대는 김남주 홀과 김남주 뜰을 두고 그를 기린다. 

 

김남주는 월남 패망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모방해서 남조선의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을 결성한 주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전복하는 혁명을 추구하며 이를 위한 자금확보를 위해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경비원을 칼로 찌른 강도상해 사건에 가담한 주범이기도 하다. 5·18이 진정한 민주화운동이라면,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한 무장봉기가 아니라면, 적어도 남민전과 김남주는 걸러내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의 개입은 없었는가?

 

CIA 요원으로 장기간 복무한 마이클 이 박사는 197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근무할 당시, 북한의 17공수여단이 80년도 상반기에 있을 남조선 해방을 위한 대사변을 위해 맹훈련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워싱턴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80년 초, 대남관계 총국장 김중린이 국내에 포진한 간첩망에게 ‘남조선에 있는 우리 혁명역량이 해당 사변을 주도하고 외부적으로는 민주화를 표방하라’며 전달한 지령을 첩보로 접수하고 워싱턴에 보고한 사실을 증언했다.

 

북한군의 개입에 관해서는 2024년 5·18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근거로 북한군 개입 가능성 언급 자체를 불법적인 것인 양 겁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종합보고서가 스스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조사 대상인 북한군의 범위는 “북한군 신분으로 침투한 간첩이나 공비 1〜2명의 수준이 아닌 ‘최소한 수백 명 규모의 북한 특수군 부대’로 한정”된다.(종합보고서 p.1113) 

 

다시 말해 그보다 작은 규모의 특수군이나 간첩 조직의 잠입 가능성은 보고서의 조사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보고서가 북한 개입 자체를 음모론 수준으로 매도하는 주장들의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북한의 개입 여부와 그 수준에 관해서는 보다 자세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5·18의 북한 개입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다. 궁극적인 진실은 북한이 해방된 이후에나 드러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장된 주장이 난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자유로운 연구와 토론을 통해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5·18을 성역화하고 이에 반하는 주장에 린치를 가하거나 처벌하겠다는 자세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수준의 북한의 개입이 당연히 의심되는 상황에서 5·18을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 강제하며 성역화하고, 기어코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저의가 도대체 무엇인가?

 

계엄군의 조준사격에 분노한 시위대의, 자연발생적인 무장봉기인가?

 

5·18은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한 민중의 자연발생적인 무장봉기라는 것이 5·18 민주화 내러티브의 핵심이다. 21일 13시, 전남도청 앞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무차별 조준사격으로 인해 분노한 시위대가 무기고를 급습하여 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설명의 전제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애국가를 부르는 시위대를 계엄군이 조준사격 하는 것으로 상황을 묘사한다. 하지만 21일 13시 이전에 무기고 습격이 있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술과 증거들이 존재한다.(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사건[직바-7] p.142)

 

북한의 개입 여부와는 별도로, 송선태의 자유노트는 5·18의 무기고 탈취를 비롯한 무장봉기가 사전에 기획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5·18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송선태가 5·18 발생 일주일 전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자유노트’에는 ‘예비군 무기고 접수’와 ‘도청 점령’에 관한 계획이 명시되어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유노트’의 은닉과 지극히 편향된 조사위원회

 

놀라운 것은 이렇게 중요한 자료인 ‘자유노트’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5·18의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모든 자료는 공개되고 당연히 일반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자유노트’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좌우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기대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설치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진실을 규명하기에는 지극히 편향된 조직이었다. 5·18진상규명특별법 제14조는 위원의 제척·기피·회피에 관해 규정하면서 위원 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이 진상규명 사건의 가해자 또는 희생자·피해자인 경우 해당 심의·의결에서 제척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유공자이며 ‘자유노트’를 직접 작성한 송선태가 위원장이었고, 조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5·18 유공자이거나 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5·18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과 보고서의 객관성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법에서 규정한 위원의 자격부터 제대로 갖추지 못한 위원회가 어떻게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권에 의해 구성된 5·18진상조사위원회가 5·18 성역화를 위한 거수기 밖에 해석되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이처럼 편향된 위원회조차도 전두환이 발포 명령자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찾지 못했다.

 

5·18 유공자의 문제

 

5·18의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5·18 유공자 명단부터 공개해야 한다. 특별히 진상조사과정에 참여한 5·18 유공자 및 관련자들의 명단은 조사의 객관성을 위해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 

 

현재 5·18 유공자 5769명 중 1300명 이상의 명단이 철저히 가려져 있다. 광주 5·18기념공원에 이름이 적혀 있는 명단도 일부일 뿐이다. 국정원에서 30년 간 대공 수사관으로 근무한 이여진 前 요원은 대공수사 과정에서 간접 혐의로 적발됐던 인물들이 5·18 유공자로 둔갑해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5·18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유공자 지정을 위한 사실 조사 및 심의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거나 지자체 주도로 수행하는 경우는 5·18 민주화운동이 유일하다. 유공자 선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서훈 평가 업무를 광주광역시에서 국가보훈부로 이관해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진실을 법으로 강제하려는가?

 

진실의 규명은 자기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다수결로 정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결정과는 다른 생각들을 법으로 겁박하는 것이 바로 검열이고 독재다. 5·18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5·18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라는 내러티브만을 강제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5·18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은 정치적 선동과 좌우를 떠나 모두가 엄정히 규명해야 할 과제다.

 

모든 죽음은 안타까운 것이다. 군경의 죽음도 시위대의 죽음도 모두가 애석한 죽음이다. 잘못된 사상에 빠져 대한민국에 대항하며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인간으로서 애석함을 표할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정면으로 충돌한 한반도의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한 가족 안에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한 비극과 아픔이 있었다. 우리의 역사이고 품어야 할 아픔이다.

 

북한의 개입이 있건 없건 간에, 선량한 피해자들의 희생은 보듬고 기려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저주하며 월남을 본받아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던 사람들을 희생자나 유공자로 기리고 보상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5·18엔 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5·18이 국민 모두의 존경을 받는 민주화운동이 되려면,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민주화운동으로 지지를 받으려면, 월남을 본받아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던 반대한민국 세력을 걸러내는 자정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서의 5·18을 함께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 전문에 넣자는 논의도 그런 이후에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진실에 집중한다면 5·18은 더 이상 좌우의 싸움이 아니다.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시각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5·18에 관한 통합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다만 우리의 논의는 진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 진실 가운데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회복과 치유, 화해와 상생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6년 5월18일

트루스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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