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1일 봉축탑이 서 있는 전남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한국일보]
가끔 5·18 관련 포스팅을 하면 달리는 댓글이 있다.
“5.18은 광주전남 일원에서 10여 일간 벌어진 사건입니다. 특정 장소 특정 시간대의 사실만으론 진실과 전모를 파악하긴 어렵습니다.”
공감한다. 전모를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그런데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과 전모를 파악하지 않으려는 매우 다르다.
이 댓글은 한강 작가처럼 대안적 서사를 창작하여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 버리는 걸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팅에 달렸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살아남은 이의 의무다. 우리 편에게 유리하고 그럴싸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건 의무를 방기하는 거다.
최근까지도 진상규명은 계속되고 있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의해 조사하다 보니 그 내용이 참담하다.
“‘진상규명’으로 의결될 경우 위원회의 조사 결과 전체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어, 향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의 소재로 활용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였다.” -2024년 5·18진상규명위 보고서
이 내용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조사 결과 진실이면 유불리를 떠나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하는 것이 진상규명의 본질 아닌가. 술이부작.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임의로 지어내지 않는 것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진실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을 왜곡하고 있고, 위원회가 그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어떠한 조사와 확인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보고서에서는 신군부의 입장과 유사하게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노출되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러한 이유로 진상규명 결정에 반대하였다.” -2024년 5·18진상규명위 보고서
왜곡을 바로잡으려 조사하다 보니 신군부 입장과 유사해져서 진상규명 결정에 반대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신군부는 악마라서 거짓말만 해야 하는데, 조사해보니 신군부 말이 맞았다. 악마의 편을 들 수 없으니 진실이라도 발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 아닌가.
진상규명위가 말하는 신군부 측 입장이라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신군부의 입장은 88년, 89년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집요하게 캐물어 증언을 들은 것이 대부분이다.
17회에 걸쳐 67명의 증인을 소환해 증언을 들었다. 5·18 연구에 필수적인 1차 사료다. 이때 증인들이 거짓 증언을 했으면 무엇이 틀렸는지 증명하고, 사실에 부합하면 인정하는 것이 진상규명자의 태도 아닌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라면 진실 규명에 관심이 없단 말 아닌가.
2024년 조사는 왜 했을까?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광주 전일빌딩의 헬기 사격으로 의심되는 탄흔을 둘러보며 헬기 사격, 발포 책임자, 최초 발포 경위를 규명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음 해 민주당은 5·18진상규명법을 만들어 진상규명을 시작해 2024년에 발표한 것이다.
국가기관을 만들어 조사하면 기대치가 있지 않나. 진상규명을 어떻게 했나. 헬기를 띄워 높이와 거리를 바꾸어가며 폐건물에 기총소사를 하고, 시간대마다 어떻게 보이는지 기록을 해야 하지 않나?
국방부 협조를 얻어, 사격장 시설을 이용하면 탄흔까지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 또 영상으로 기록하면 헬기 소사를 목격했다고 주장한 신부와 목사의 주장을 보강할 수 있다.
진상규명위 보고서를 읽으면 기가 막힌다. 과학적 조사는 하지 않거나, 했어도 결과를 무시했다. 보급문서에 탄약을 몇 발 수급했는데 회수가 덜 되었다, 헬기 운항 문서를 비교했더니 기재 내용이 이러저러 하더라, 이러한 페이퍼웍만 기술한다.
“위원회 또한 두 국가기관의 전일빌딩 10층 탄흔 분석 결과를 토대로 전일빌딩 탄흔의 관입 각도, 함몰 깊이, 탄종, 생성 방향 등을 조사하기 위해 헬기 모의 실험사격을 실시했다.
위원회는 전일빌딩의 탄흔과 실험사격에서 생성된 탄흔에서 추출된 데이터를 비교하기 위해 국과수에 의뢰했다. 국과수는 양자의 데이터값이 약 1.5∼7.4배, 관입 깊이의 경우 약 5.6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차이는 사건 당시의 상황과 사격실험의 조건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국과수는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두 데이터 간의 상호 비교분석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두 탄흔 데이터 간의 편차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논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진상규명위 보고서
국과수에서 전일빌딩과 비슷한 상황에서 헬기로 기총 소사를 하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피탄 흔적이 전일빌딩과 다르네? 헬기에서 기총을 쏘면 총알이 5.6배는 더 깊이 들어간다. 오차범위를 한참 벗어난다. 헬기에서 총을 쏘긴 했는데 살살 쐈단 말인가? 기총 소사가 없었다는 게 증명된 것 아닌가? 진상규명위는 불리한 결과가 나오니 상황과 실험조건이 다르다고 덮어 버렸다.
정치적 편향을 가졌다고 해도 불리한 조사결과가 나오면 배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다양한 환경에서 몇 번이고 다시 실험해 원하는 결과를 뽑는 성의는 보여야 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 보고서는 유리한 결과만 골라 싣는 식으로 끝을 내버린다. 깊이는 다르지만 형태는 유사하다! 사격 시 나타나는 탄흔의 원뿔형 형상이 유사하다! 각도가 하향 사격이다! 실험 결과 중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한다.
헬기 고도가 얼마였는지, 탄종이 뭐였는지 밝혔어야 했다. 대낮에 헬기에서 기총을 발사했고 목격자가 있고, 탄흔도 있다고 하니 명명백백하게 증명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탄두의 방사성동위원소를 분석해 당시 다른 치장물자와 비교했어야 하지 않나.
4000년 전의 일도 밝히고, 400년 전의 일도 밝히는데 왜 40년 전의 일은 못 밝힌단 말인가. 2024년의 기술이 그것도 못 한단 말인가.
보고서는 간접증거로 뭉개다가 “광주에 출동한 3개 기종 모두에게서 헬기사격이 실행되었거나 사격의 개연성이 충분히 있음을 조사과정에서 확인하였다”고 마무리한다. 개연성이 있다는 건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만, 맞다고도 하기 껄쩍지근하다는 말 아닌가.
진상조사에 무슨 개연성 타령인가. 개연성은 소설에서나 따지는 것이다. 그런 개연성도 없는 소설이 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사이코패스 계엄군이 순결한 시민군을 투항자까지 모두 죽였다고 서술한다. 최소한의 개연성도 포기한 ‘소년병 찬가’다.
이런 창작물을 찬양할 때 광주의 진실은 더더욱 멀어진다. 우리 세대나 광주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을 뿐 청년 세대는 다르다. 이런 배달의 기수식 프로파간다를 가만 듣고 있을 리 없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미성년자라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광주에 끌려가 조리돌림 당하며 방송중계 된다는 기록을 남겼다. 보호해야 할 미성년을 조리돌림했으니 한국사에 남을 해프닝이다.
광주가 청년에게 빚졌지, 청년이 광주에게 무슨 빚을 졌단 말인가. 최근 배재고 학생을 조리돌린 광주의 태도를 보며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대체 왜 광주에 빚졌다고 착각했을까.
나도 대학생 때 5·18기념단체에서 하는 공모전에 나가 상까지 받았다. 지금은 부끄러운 흑역사다. 광주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 김성민 작가
디지털 크리에이터, 바닷가 거주, 새벽의 사이클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