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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ǀ 빛의위원회 ] 국가기념사업과 역사 해석의 독점
  • 김영 기자
  • 등록 2026-07-20 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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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란 형사재판 확정 전 ‘빛의 혁명’부터 공식화…왜 지금 52억원대 위원회인가
  • 대통령 직속서 명명·인증·예우·기록·교육·홍보…헌정질서 회복을 왜 ‘혁명’이라 부르나
  • 국제기구는 단일 역사서사 경계…공산독재가 악용한 기념정치의 문법
한미일보는 ‘빛의 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과 행정안전부의 설치·출범 발표를 분석했다. 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유럽평의회의 역사기념·교육 원칙과 소련·중국 공산체제의 국가기념사업도 함께 살펴봤다. 위헌 계엄의 기록과 시민의 공로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보존과 정권 주도의 역사서사 확산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편집자 주>

박미경 빛의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본회의에서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 정부는 위원회 출범 전에 대통령령으로 12·3 비상계엄 해제 과정의 시민 행동을 ‘빛의 혁명’으로 규정했다. [사진=행정안전부]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관한 헌법적 판단은 끝났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등에 대한 군경 투입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했다. 헌재 결정은 확정됐고 국가기관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형법상 내란죄에 관한 판단은 별개의 사법절차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게 적용된 내란우두머리 등 사건은 2026년 7월 현재 서울고등법원 2026노648 사건으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1심 판단이 나왔더라도 각 피고인의 고의와 역할, 형사책임에 관한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7월에도 해당 사건의 공판과 방청 절차를 진행했다.

 

그런데 정부는 형사재판이 끝나기 전인 지난 3월 대통령령으로 ‘빛의 위원회’를 설치했다. 12·3 비상계엄에 맞선 시민의 행동을 ‘빛의 혁명’으로 명명하고, 공로자 인증과 예우, 기록물 편찬, 국가기념일과 상징물, 교육·홍보사업까지 추진하도록 했다. 관련 사업에는 일반 예비비 52억1090만원이 배정됐다.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기록하는 일과 사건의 역사적 명칭·주역·계승할 정신을 정부가 정하는 일은 같지 않다.

 

빛의 위원회에 던져야 할 첫 질문은 “왜 형사재판과 역사적 평가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국가가 세금을 투입해 ‘혁명’이라는 결론부터 제도화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계엄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경찰 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국회는 이날 헌법에 따라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 시점의 문제…헌재 결정이 ‘혁명’ 명명권 준 것 아니다

 

헌재가 판단한 것은 대통령의 직무집행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그 위반이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지였다. 

 

헌재의 파면 결정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다는 여론도 있지만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헌재 결정이 정부에 사건을 ‘혁명’으로 명명하고, 특정 시민을 민주주의 공로자로 인증하며, 국가기념일과 상징물을 만들 권한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다.

 

헌재 결정의 수용과 ‘빛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명칭에 대한 동의도 서로 다른 문제다.

 

계엄의 위헌성을 인정하는 국민도 사건을 반드시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시민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대통령 직속기구가 공로자를 선별하고 국가예산으로 기념·홍보하는 방식에는 반대할 수 있다.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가볍지 않다.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은 목적과 증명 기준, 판단 대상이 다르다. 내란죄의 성립과 개별 피고인의 형사책임이 확정되기 전에 행정부가 먼저 사건의 공식 역사명칭과 주역을 정하면 향후 판결과 학문적 연구, 국민의 자유로운 평가보다 정부의 정치적 결론이 앞설 수 있다.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문서·사진·영상을 확보하고 관계자의 증언을 보존하는 일은 지금부터 해야 한다.

 

그러나 인증서와 부상품, 국가기념일, 기념 상징물, 교육·홍보사업은 단순한 기록 보존과 성격이 다르다. 사건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에 대한 판단이 이미 끝났다는 전제 위에서만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다.

 

정부는 왜 그 판단을 지금 내려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을 결정하고 있다. 헌재의 판단 대상은 계엄의 위헌·위법성과 파면 필요성이었으며, 사건을 ‘혁명’으로 명명하는 문제는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사진=연합뉴스] 

□ 헌정질서가 작동했는데 왜 ‘혁명’인가

 

‘혁명’은 단순히 규모가 크거나 감동적인 시민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쿠데타’를 설명하면서 “지배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뤄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 구별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전적·정치학적 의미에서 혁명의 핵심은 “기존 정치·사회질서의 근본적인 변혁과 새로운 질서의 형성”에 있다.

 

그렇다면 12·3 비상계엄 해제 과정에서 무엇이 무너지고 어떤 새로운 정치체제가 세워졌는지 물어야 한다.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계엄 해제 요구권을 행사했고, 정부는 국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계엄을 해제했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비상계엄 선포와 군경 투입의 위헌·위법성을 판단했다.

 

기존 헌법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한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헌정질서가 국회의 의결과 사법적 통제를 통해 작동하고 회복된 사건에 가깝다.

 

시민들이 국회 주변에 모여 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군 병력과 대치한 행동의 의미를 낮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시민의 용기와 헌법기관의 대응을 기록하고 기리는 일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행동을 기리는 것과 사건을 ‘혁명’으로 명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혁명이라는 단어에는 사실의 묘사를 넘어 사건의 주역과 역사적 의미,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평가가 담긴다. 정부가 이 표현을 대통령령에 넣는 순간 정치적 수사는 국가의 공식 행정용어로 바뀐다.

 

‘빛의 혁명’은 따라서 중립적인 사건명이라기보다 정부가 선택한 정치적·역사적 평가에 가깝다.

 

헌법에 따른 계엄 해제와 헌정질서의 회복을 왜 혁명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정부가 아직 형사재판과 사회적 평가가 진행 중인 사건에 그런 명칭을 먼저 부여할 권한이 있는가. 이재명 정권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정부가 제정한 '빛의 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의 목적과 주요 기능. 대통령령은 사건을 ‘빛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인증서 발급, 기록·연구·교육·홍보와 기념사업을 위원회 업무로 정했다. [사진=한미일보 그래픽]□ 구조의 문제…명명부터 인증·교육·홍보까지 한 기구에

 

대통령령 제1조는 위원회의 목적을 “12·3 비상계엄에 항거한 빛의 혁명으로 대한민국헌법과 민주주의 수호에 기여한 국민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다고 규정했다.

 

위원회가 기록과 증언을 수집하고 서로 다른 해석을 검토한 뒤 사건의 성격을 정한 것이 아니다.

 

위원회가 활동하기 전에 정부가 이미 ‘빛의 혁명’이라는 결론을 대통령령에 넣었다. 위원회는 이 명칭이 타당한지 검증하는 기구가 아니라, 정해진 명칭과 평가를 전제로 기념·계승사업을 수행하는 기구로 출발했다.

 

업무 범위도 단순한 감사장 수여를 넘어선다.

 

위원회는 △ 한국형 시민참여 민주주의의 정착·확산을 위한 정책 방향 △ 빛의 인증서 신청의 접수·검증·심사와 발급 △ 인증 대상자 예우, 국가기념일 지정 △ 관련 사료의 수집·보존·기록·연구·교육·홍보 등을 심의한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지명하고 민간위원을 위촉하며 관계 부처 장관들도 정부위원으로 참여한다.

 

7월13일 열린 첫 회의에서는 위원회 운영세칙과 ‘빛의 혁명 기록물 관리 기본계획’을 심의했다. 위원회는 기념일 지정과 상징물 설치, 공모전과 시민토론회 등을 추진하고 시민참여형 ‘K-민주주의’를 세계로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 정신을 후대에 “한치의 왜곡 없이 올바르게 계승”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구조를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사건 명명→공로자 인증→수상자 예우→기록 수집·편찬→기념일·상징물→교육·홍보→국내외 확산.

 

전 과정이 하나의 대통령 직속기구에 집중됐다.

 

위원회에는 관계기관 등에 자료와 의견 제출, 공무원과 임직원의 파견·겸임을 요청할 권한이 있다. 반면 강제 출석이나 압수수색, 자료제출 불응에 대한 처벌 권한은 확인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이나 국정조사와 같은 강제조사기구는 아니다.

 

그러나 강제수사권이 없다고 구조적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직속이라는 권위와 정부예산, 다수 부처와 행정기관의 협조가 결합하면 정부가 선택한 역사 해석에 공적 권위와 확산수단이 집중된다. 다른 견해가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더라도 국가가 인증하고 재정을 투입한 서사와 그렇지 않은 서사 사이에는 공적 지위의 차이가 발생한다.

 

누가 민주주의를 수호했는지를 정부가 심사한다면 인증받지 못한 국민은 어디에 놓이는가.

 

정부와 다른 평가를 담은 기록도 같은 기준으로 수집·보존되는가.

 

‘왜곡 없이 올바르게 계승한다’는 표현에서 무엇이 명백한 사실 오류이고 무엇이 허용돼야 할 정치적·역사적 해석인지 누가 결정하는가.

 

정부가 공개한 출범 보도자료에는 운영세칙과 기록물 관리 기본계획의 전문이 첨부되지 않았다. 인증 심사기준과 탈락 사유 통지, 이의신청·재심 절차의 구체적인 내용도 공개자료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 정부의 반론…“헌재 판단 끝났고 기록 보존은 기다릴 수 없다”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반론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확정했고 시민의 행동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과 헌정질서 회복에 기여한 만큼, 내란 형사재판의 확정 여부와 관계없이 시민의 공로를 기리고 관련 기록을 신속히 보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질 수 있다. 현장 영상과 사진, 온라인 게시물, 개인이 보관한 문서와 증언을 지금 수집하지 않으면 훼손되거나 유실될 가능성도 있다.

 

위원회가 수사·처벌이나 표현 규제 권한을 갖지 않고 대통령 자문·심의기구로 운영된다는 점도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근거다. 정부는 시민의 용기와 민주주의 정신을 기록해 국민통합과 시민참여 민주주의 확산으로 연결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반론은 기록을 신속히 보존해야 할 필요성은 설명해도, 사건을 ‘혁명’으로 명명하고 공로자 인증과 부상품, 국가기념일·상징물·교육·홍보까지 대통령 직속기구에 맡겨야 할 이유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기록은 평가와 분리해 수집할 수 있다.

 

원본 자료와 증언의 보존은 국가기록원이나 독립적 전문기관이 중립적 기준에 따라 수행하고, 사건의 명칭과 공로자 인증, 기념사업은 형사재판과 충분한 공론화 이후 판단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가 그보다 강한 방식의 기념사업을 선택했다면 필요성과 긴급성, 다른 대안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 국제규범과의 긴장…민주주의는 하나의 역사적 정답이 아니다

 

국제기구의 역사기념 원칙이 중요한 이유는 빛의 위원회 스스로가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를 존립 근거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정부가 옳다고 선언한 역사적 결론이 아니다. 확인된 사실을 존중하면서도 그 사실의 의미와 책임, 기억 방식을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절차와 제도다.

 

유엔 문화적 권리 특별보고관은 “역사적 서사가 집단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과거를 어떻게 배우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평화와 인권을 강화할 수도 있고 사회집단 사이의 분열과 긴장을 지속시킬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기념사업은 인권침해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서사를 말할 공간을 제공하고, 시민 참여와 비판적 사고, 과거의 재현 방식에 관한 토론을 촉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유럽평의회 의회는 2025년 역사교육과 기념사업에서 민감하고 논쟁적인 역사를 복수의 관점과 사료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사실·기억·해석·관점을 구분하고 왜곡과 선전을 판별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의견과 다원성·관용·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념시설과 박물관도 학술연구와 인권적 분석, 복수의 관점에 기초한 민주주의 학습공간이 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들 국제기구가 빛의 위원회를 직접 조사하거나 국제규범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유럽평의회의 기준 역시 대한민국에 직접 구속력을 갖는 법률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국가의 역사기념사업을 평가할 비교 기준으로서 공통된 원칙은 분명하다.

 

“국가는 과거의 사실을 조사하고 기록할 수 있다. 시민을 기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역사 해석을 국가의 유일한 공식 기억으로 만들거나 다른 해석의 연구·표현 공간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

 

빛의 위원회가 이 원칙에 부합하는지는 이름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위원 구성과 기록 선정, 인증 기준과 회의 공개, 비판적인 자료의 수용 여부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다만 사실조사에 앞서 ‘빛의 혁명’이라는 평가부터 대통령령으로 확정한 현재 구조는 국제기구들이 강조하는 다관점성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위원회라면 정부와 다른 해석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소련이 1938년 제작한 ‘10월혁명의 날’ 선전 이미지. 소련은 혁명 기록 수집과 공식 역사 편찬, 국가기념일과 대중선전을 결합해 공산당의 통치 정통성을 구축했다. [사진=미국 의회도서관·위키미디어] □ 소련 이스트파트…기록위원회가 당의 공식 혁명사로

 

인류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공산독재 정권은 국가기념사업을 단순한 추모와 기록 보존이 아니라 정권 정당화와 국민 기억의 관리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소련은 1920년 ‘10월혁명과 러시아공산당 역사자료 수집·연구위원회’, 이른바 이스트파트(Istpart)를 설치했다.

 

이스트파트는 혁명 관련 문서와 회고록을 수집하고 보존·출판하는 연구기관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1921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편입됐고, 전국에 지역조직을 두어 혁명과 당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수집·편찬했다.

 

연구와 기록 보존은 점차 당의 공식 역사와 이념적 통일을 유지하는 작업으로 바뀌었다.

 

관련 연구는 이스트파트가 문서와 회고를 보존하는 동시에 1917년 혁명에 관한 국가서사의 이념적 일치를 유지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평가한다. 당내 권력투쟁이 격화되면서 과거의 기록은 반대파를 공격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됐고, 역사적 정확성보다 현재 권력의 필요가 앞섰다.

 

소련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기록수집기관이 처음부터 비밀경찰이나 검열기관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어떤 자료를 공식 사료로 채택하고 누구를 혁명의 주역으로 인정할지 결정하며, 그 결과를 교육과 기념행사로 확산하면 과거는 현재 권력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정치 자원으로 바뀔 수 있다.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 인민영웅기념비에서 열린 헌화식. 중국은 국가가 인정한 열사를 증서·기념일·기념시설·학교교육과 연결해 공식 역사서사를 확산해왔다. [사진=몰디브 대통령실·위키미디어] □ 중국…‘열사 인증’에서 기념일·교육까지 한 체계로

 

중국은 국가가 혁명과 체제 수호의 공로자를 판정하고 이를 증서·기념일·시설·교육과 연결하는 체계를 제도화했다.

 

중국의 ‘열사 포양 조례’는 열사 기념사업이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한다. 국가는 열사를 기념·보호하고 열사의 행적과 정신을 선전하며 사회주의 핵심가치를 확산하도록 한다. 관련 예산은 국가와 지방 재정에 편성되고, 행정기관이 열사 판정과 유족 예우, 기념사업을 담당한다.

 

중국의 열사제도는 국가를 위해 사망한 사람과 유족을 대상으로 하는 보훈제도라는 점에서 살아 있는 시민에게 수여하는 빛의 인증서와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제도적 순서는 비교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공로자를 판정한다.

국가 명의의 증서를 발급한다.

기념일과 시설을 만든다.

학교·언론·문화사업을 통해 그 정신을 교육하고 확산한다.

 

중국 정부는 열사 기념시설과 이른바 ‘홍색 자원’을 선전교육에 적극 활용하고, 사회 전체에 영웅 존중과 헌신의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행 제도는 공로자 예우뿐 아니라 사회주의 가치와 공산당 중심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산하는 기능을 함께 갖는다.

 

빛의 위원회를 소련 ‘이스트파트’나 중국의 ‘열사제도’와 같은 기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는 복수정당제와 선거, 사법심사, 언론·학문·표현의 자유가 있다. 빛의 위원회에는 검열이나 반대 의견 처벌, 강제수사와 숙청 권한도 없다. 공산독재 체제의 강제력과 민주국가의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그대로 등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제도적 문법의 유사성은 검증 대상이다.

 

사건의 이름을 국가가 먼저 정한다.

공로자를 국가가 심사하고 인증한다.

기록을 국가가 선별·편찬한다.

기념일·상징물·교육·홍보로 공식 서사를 확산한다.

 

공산독재 사례를 살펴보는 목적은 빛의 위원회를 곧바로 전체주의 기관으로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기념사업이 통제받지 않을 때 어떻게 정권의 정통성을 만들고 국민의 기억을 관리하는 통치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직접적인 검열과 처벌이 시작돼야만 역사 독점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한쪽 해석에만 공식 명칭과 인증, 예산과 행정조직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공론장의 균형은 기울 수 있다.

 

□ 52억원대 예비비…왜 긴급했는지도 설명해야

 

정부는 빛의 위원회 관련 사업에 일반 예비비 52억1090만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예비비는 본예산 편성 당시 예측하기 어려웠던 지출이나 긴급한 재정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재원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공로자를 인증하고, 기념·교육·홍보사업을 추진하는 일이 왜 본예산 편성과 국회의 충분한 심의를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긴급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기록 보존과 정치적 기념사업을 분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원본 문서와 사진·영상 확보, 구술 증언 채록은 국가기록원과 전문 연구기관이 가치평가와 분리해 수행할 수 있다. 반면 ‘빛의 혁명’이라는 공식 명칭, 공로자 인증과 예우, 국가기념일과 상징물, 교육·홍보사업은 형사재판과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 이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위원회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운영세칙과 기록물 관리 기본계획, 인증서 심사기준과 사실확인 매뉴얼, 인증 탈락 사유와 이의신청 절차, 위원 추천·선정 과정, 회의록, 사업별 예산과 계약·용역 계획, 기록물 선정·배제 원칙을 공개해야 한다.

 

‘빛의 혁명’과 다른 평가를 담은 자료도 수집할 것인지, 정부의 명명에 비판적인 연구자와 시민이 기록 편찬과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

 

□ 민주주의를 기념한다면 운영부터 민주적이어야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과 시민의 대응은 기록돼야 한다. 국가가 시민의 용기를 기리는 사업도 정당한 공익사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정부에 사건의 역사적 명칭과 주역, 계승할 정신을 독점적으로 결정할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빛의 위원회의 정당성은 목적조항에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넣었다는 사실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명칭이 중립적인지, 구성과 절차가 균형적인지, 인증 기준과 예산이 공개되는지, 다른 견해와 불편한 기록도 보존하는지, 정부의 결론을 비판할 자유가 보장되는지를 통해 입증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하나의 역사적 정답을 정해 국민에게 가르치는 체제가 아니다.

 

국가가 가진 권위와 세금으로 특정한 해석만을 공식 기억으로 만들기 시작하면 시민의 자발적인 행동은 정권의 정치적 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위헌 계엄을 기록하는 것과 정부가 ‘빛의 혁명’을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국가는 역사를 보존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역사 해석의 최종 소유자는 대통령도, 대통령 직속위원회도 아니다. 기록을 검증하고 논쟁하며 그 의미를 판단할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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