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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山칼럼ㅣ종북좌파 80년사] ㉝1990년대 인문학의 좌경화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06 15: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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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을 문장으로 위장하다

안토니오 그람시(왼쪽, 1891~1937)와 자크 데리다(1930~2004)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세계 사회주의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혁명은 더 이상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실패한 실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국 운동권 역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거리에서 “혁명”을 외치던 시대는 저물어 갔다. 그러나 사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표현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1990년대 한국 대학가와 출판계에서는 해외 인문사회과학 이론이 폭발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안토니오 그람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 에드워드 사이드, 프랑크푸르트학파 등 서구 비판이론가들의 저작이 경쟁적으로 번역·출간되었다. 

과거처럼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앞세우는 직접적인 사회주의 텍스트 대신 문화, 담론, 권력, 해체, 타자, 탈식민주의, 헤게모니와 같은 개념이 인문학의 핵심 언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학 강의도 빠르게 변했다. 철학과, 사회학과, 국문학과, 영문학과, 역사학과, 여성학 관련 학과와 연구소에서는 문화연구, 비판이론,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가 주요 연구 주제로 떠올랐다. 

1980년대 학생운동 경험자들이 대학원으로 진학해 교수와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를 직접 배우지 않았지만, 기존 사회를 권력과 억압의 구조로 바라보는 해석 틀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출판계 역시 이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은 서구 비판이론을 집중적으로 소개했고, 대학가에서는 이러한 책들이 필독서처럼 읽혔다. 강의실에서 읽힌 책은 학회로 이어졌고, 학회의 담론은 다시 언론과 시민단체, 문화계로 확산되었다. 

정치 구호는 줄어들었지만, 사회를 해석하는 기본 언어는 이전보다 더욱 넓게 퍼져 나갔다. 1990년대 좌파는 거리에서 후퇴했지만 강단에서는 전진했다. 혁명을 말하는 대신 인문학을 말했고, 계급을 말하는 대신 문화를 말했으며, 사회주의를 말하는 대신 비판적 성찰을 말했다. 

깃발은 사라졌지만 문장은 남았다. 그리고 바로 그 문장이 이후 한국 사회의 상식과 담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1990년대 인문학 좌경화가 단순히 번역서의 유행에 그쳤다면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박사과정을 거쳐 교수와 연구자로 진출하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났다. 

거리에서 활동하던 인력이 강단으로 이동하면서 대학은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공간이 되었다. 강의실에서 형성된 문제의식은 논문과 학술지, 출판과 언론으로 이어졌다.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은 교양서로 출간되었고, 출판된 책은 다시 시민강좌와 독서모임에서 읽혔다. 

시민단체 활동가 상당수도 이러한 인문사회과학 담론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대학, 출판사, 언론, 시민단체가 하나의 지식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동일한 개념과 표현이 반복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권력’ ‘담론’ ‘차별’ ‘억압’ ‘구조’ ‘타자’ ‘식민성’ ‘해체’와 같은 용어였다. 원래는 각각의 학문적 개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와 역사, 교육, 문화, 언론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설명하는 공통 언어가 되었다.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기준도 개인의 책임이나 자유보다 구조와 권력의 문제를 먼저 찾는 방향으로 기울어 갔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고, 국가는 권력과 억압의 주체로, 시장은 불평등의 원인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반대로 저항과 운동, 소수자와 반체제는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 대상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해석이 모든 연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 사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문화 헤게모니와도 맞닿아 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반드시 권력을 먼저 장악할 필요는 없다. 교육과 출판, 언론과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상식과 가치관을 바꾸면 정치는 그 뒤를 따라온다는 발상이다. 

한국의 1990년대는 바로 이러한 문화적 영향력이 확대된 시기였으며, 인문학은 그 중심적인 통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과 정치 담론, 문화 논쟁을 이해하려면 1990년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시대를 인문학의 전성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세계관이 학문과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전반에 확산된 시기였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정치 구호는 시대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와 강의, 책과 문화 속에 스며든 사상은 훨씬 오래 살아남는다. 바로 그것이 1990년대 인문학 좌경화가 남긴 가장 큰 영향이었다. 

이러한 좌경화는 단순한 지적 유행을 넘어 사회 전반의 사고방식에 깊이 스며들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학생들은 ‘헤게모니’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디스코스’ 같은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사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는 1980년대 NL·PD 논쟁에서 계승된 이념적 연속성 속에서, 표현만 세련되게 포장된 형태였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 경험은 ‘억압 구조’의 일부로 재해석되는 경우가 잦아졌고, 자유시장과 민주제도의 긍정적 측면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다. 이 문화적 전환은 이후 2000년대 진보정치와 시민운동, 교육계, 언론계에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상은 결코 공허한 문장이 아니다. 1990년대 인문학의 좌경화는 거리 정치의 쇠퇴 속에서 더 은밀하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지식 지형을 재편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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