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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홍 칼럼] 지금은 ‘혁명’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
  • 정성홍 회장
  • 등록 2026-08-09 15: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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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지금은 ‘혁명’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다. 칼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들자는 것이다.” Ⓒ한미일보

어렸을 적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노련한 장 가뱅과 어딘가 서투른 젊은 알랭 들롱이 주연한 영화 ‘지하실의 멜로디’다. 

감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카지노를 털어 거액의 돈을 가방에 담아 빠져나온다. 형사들의 추격을 따돌린 알랭 들롱은 돈가방을 수영장에 숨기는 데 성공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완벽했던 범행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뜻밖의 변수가 모든 것을 뒤집어놓는다. 나는 이 장면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이와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형수에게 욕설을 했다는 논란도 그렇다 치자. 안동댐을 둘러싼 의혹도 일단 접어두자. 형님 강제입원 논란도, 대장동 특혜 의혹도 넘어가 보자. 해군 수병이 차가운 물에 빠져 숨진 날 대통령이 골프를 쳤다는 의혹과 그에 대한 해명도 잠시 접어두자.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과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여러 재판 및 혐의 역시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남겨두자. 심지어는 부정선거 논란까지도 말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면 우리 국민은 어쩌면 과거보다 현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과거의 허물만으로 평가할 수 없고, 권력자 역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는 그런 국민적 정서가 있었다. 잘못이 있었더라도 나라를 제대로 이끌고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한다면 과거의 허물을 한쪽에 내려놓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하다. 지난 1년, 과연 국민은 그런 믿음을 가질 만했는가. 물론 현 정부가 내놓은 여러 정책 가운데에는 국민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것도 있다. 문제는 정책의 취지만이 아니다.

그 결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가. 정책은 명분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먼저 노동정책을 보자.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노동 관련 제도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원청과 하청 간 교섭 관계가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산업 현장의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지고, 기업의 경영 활동과 노동 분쟁에 새로운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오히려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것 역시 정책 실패로 평가해야 한다.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제도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권한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문제다. 검찰권 남용을 막는 장치도 필요하고 인권 보호도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범죄 수사와 피해자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가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강력범죄를 비롯해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치안 현장에서 제도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특히 검찰 수사권 폐지와 관련된 법 개정 과정에서 공소기각 조항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면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법적 이익을 가져오게 되는 것인가.

주식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투자자의 참여를 확대하고 금융상품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고위험 금융상품이 충분한 설명과 위험 관리 없이 확대된다면 손실은 결국 투자자의 몫이 된다.

국민의 돈이 걸린 문제에서는 ‘좋은 의도’보다 ‘좋은 결과’가 중요하다. 투자자는 과연 돈을 벌었는가다.

부동산 정책은 더욱 민감하다.

주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민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주택 가격 차이, 고령층의 주거 문제, 전세 가격과 월세 전환 문제는 서로 얽혀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세제 혜택이나 공급 대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정책의 선의가 실제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의 고가 아파트 근저당 설정 문제를 둘러싼 논란 역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권력자의 재산과 행위에 대한 설명은 특혜가 아니라 의무다.

안보와 군의 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육사의 역사와 군의 정치적 중립 문제를 둘러싼 논쟁 역시 감정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해 판단해야 한다. 대한민국 군은 어떠한 정권에서도 정치적 목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군의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 기준은 헌법과 국가안보, 군의 전문성, 국민에 대한 책임이어야 한다.

 특정 출신이나 특정 조직 전체를 역사적 사건의 책임과 동일시하는 순간 개혁은 자칫 보복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군을 개혁하는 것과 군을 약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 현대사는 정치적 혼란이 국가의 존립에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는지를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4·19 이후의 혼란도 그랬고, 10·26 이후의 정치적 공백도 그랬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역사는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의 공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4·19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저항이었고, 5·16 역시 오늘날까지 평가가 크게 갈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10·26 이후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사를 미화하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다. 그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런데 육사가 과거 군사정변의 역사와 관련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폐교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조직 전체를 역사적 책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올바른 개혁인가.

군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그러나 핵무기를 개발하고 현대전까지 경험하고 있는 적을 마주한 상황에서 과거의 모든 책임을 물어 폐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군력을 약화시키는 것인데 과연 국민이 이를 납득할 수 있겠는가. 과거를 청산한다는 이유로 미래의 인재를 없애서는 안 된다.

권력의 침묵은 의혹을 없애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게 제기된 의혹과 재판 문제는 정치적 진영의 구호가 아니라 사법부의 판단과 객관적인 사실에 따라 가려져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법 위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중요한 것은 국민이 권력의 침묵을 침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불리한 의혹에 침묵한다고 해서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다.

정쟁이 아니라 검증이다. 선동이 아니라 기록이다.

여기서 필자는 ‘혁명’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싶다. 헌법 밖의 혁명이 아니다. 오히려 헌법으로 돌아가기 위한 혁명이다. 칼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법을 들자는 것이다. 권력을 무너뜨리자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헌법 아래 서게 하자는 것이다. 헌법을 지키고, 법 앞의 평등을 요구하고, 권력에 설명할 의무를 묻는 시민의식의 혁명이다.

백성은 배고픈데 권력은 배부르고, 정의는 눈을 감는데 거짓은 눈을 번뜩인다. 입은 하나인데 귀는 열리지 않고, 법은 살아 있다는데 양심은 장례를 치른다. 왕은 거울을 깨뜨리며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신하는 박수를 치며 거울이 거짓말했다고 외친다.

그러나 강물은 산을 속이지 못하고, 계절은 달력을 속이지 못한다. 그리고 역사는 결국 백성을 속이지 못한다. 오늘 웃는 권력도 언젠가는 역사의 한 줄이 되고, 오늘 침묵하는 국민도 언젠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다. 거짓을 거짓이라 말할 수 있는 용기,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양심, 그리고 권력이 누구의 것이든 끝까지 감시하는 시민의식이다.

혁명은 칼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한 사람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 한 사람이 권력 앞에서 질문을 던지는 순간, 한 사람이 “그것이 정말 사실인가?”라고 묻는 순간, 그때부터 역사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올공에서 시작된 국민의 외침이 두 달을 넘겼다. 국민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고 의혹에 대한 해명과 진실을 요구했는데도 국가가 이를 계속 묵살하고 시민의 목소리마저 억누르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치안의 공백이 발생한다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수단 자체가 아니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 전에 헌법과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국가도 시민도 마지막 선을 넘기 전에 멈춰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홍콩 시민처럼 순응하는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자유와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는 결국 국가와 시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혁명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와 상식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권력자에게 질문하고, 사실을 확인하고,법 앞의 평등을 요구하고, 거짓에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군중이 아니다. 한 사람의 깨어 있는 양심이다.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한 사람이 질문하고, 한 사람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 작은 양심들이 모여 역사를 움직인다. 

‘지하실의 멜로디’에서 형사들은 사력을 다했다. 범인은 눈앞에 있었지만 돈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수영장에 던져진 돈가방에서 돈이 한 장, 또 한 장 빠져나오기 시작해 수영장 표면을 가득 채운다. 사람의 계산이 끝난 자리에서 뜻밖의 일이 시작된 것이다.

진인사(盡人事).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그 다음은 대천명(待天命)이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운명에 맡긴다는 뜻이 아니다. 할 일을 다한 사람이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바야흐로 지금은 ‘혁명’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다. 칼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들자는 것이다. 권력을 무너뜨리자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헌법 아래 서게 하자는 것이다. 침묵했던 양심을 다시 깨우자는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다. 혁명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대한민국에 주어진 마지막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혁명합시다.


◆ 정성홍

한미일보 회장

前 국가정보원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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