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입만 열면 여성 인권과 평등을 부르짖으며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오른 용혜인의 훌륭한 진짜 밑천이 드디어 세상에 까발려지기 시작한다.
장관자리 탐을 내면 탈탈 털리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청년정치인이라기엔 그 행태가 너무 구리다. 그녀의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이자 남편인 박기홍 기본소득당 부총장의 눈부신 과거 이력이 밝혀지고 있어 화제다.
2017년, ‘청년좌파’ 대표였던 남편 박씨는 여성 활동가들을 성별과 외모로 평가하며 차별하고, 단체 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덮어버린 책임을 인정하고 쫓겨나듯 사퇴했다.
그런데 이 막장 드라마의 다음 전개가 기가 막힌다. 남편이 성차별로 불명예 퇴진한 그 자리를 아내인 용혜인이 낼름 물려받아 후임 대표가 되었고, 불과 반년 남짓 지나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들의 놀라운 권력 세탁 기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8년, 이 청년좌파 내부에 밀실에서 의사결정을 조종하는 비선 조직이 존재했다는 폭로가 터지며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는다. 청년과 비선이라는 참 언뜻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자칭 ‘좌파’들은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이들은 청년정치공동체 ‘너머’로 슬쩍 간판을 바꿔 달며 1차 신분 세탁을 시도했다. 이후 노동당에 잠시 기생하다가 집단 탈당하여 아예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치 주식회사를 차렸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기본소득당이다.
결국 이름과 껍데기만 수 차례 화려하게 갈아 끼웠을 뿐, 그 속에서 당대표부터 사무총장, 부총장 등 핵심 요직을 알뜰하게 돌려막으며 당을 주무르는 인적 카르텔은 과거 성차별과 밀실 정치를 일삼던 청년좌파 시절의 그 부부와 측근들 그대로다.
사실상 과거의 썩은 적폐 조직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거창한 원내 정당으로 포장해 낸 완벽한 꼬리 자르기이자 가족 비즈니스인 셈이다.
이쯤 되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성폭력을 방관하고 여성을 차별한 남편의 과거를 뻔히 알고도 모든 것을 덮어줄 만큼 그녀의 사랑이 태평양처럼 넓고 위대했던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그녀가 광장에서 목핏대를 세우며 외치던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이라는 가치 자체가 그저 배지를 달기 위한 얄팍한 정치적 쇼에 불과했던 것인가.
밖에서는 평등과 공정을 내세운 청년 페미니스트 전사를 자처하면서, 안방에서는 성차별주의자 남편과 한 이불을 덮고 권력을 세습하는 이 기괴한 표리부동.
장관 자리에 가면서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배지는 절대 놓지 않겠다고 양손에 권력의 떡을 쥐고 흔드는 이 완벽한 뷔페식 페미니즘과 가업으로 전락한 정당의 웅장한 ‘콜라보’ 앞에서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평생을 거창한 이념이나 철학 없이 묵묵히 살아온 평범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이들의 위선은 그저 어리둥절하고 역겨울 뿐이다.
내 평생 단 한 번도 페미니즘이나 공정 같은 거창한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지만 적어도 여성을 외모로 차별해 본 적도 없고, 공정이라는 단어 앞에서 낯이 뜨거워질 짓을 하며 살아오지도 않았다.
세상을 향해 엄한 잣대를 들이대며 훈장질을 하기 전에, 당신 남편의 비뚤어진 인식부터 똑바로 교육하고 당신 부부의 그 탐욕스러운 기생 정치부터 반성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살다 보니 좌파 진영의 가장 투명한 법칙 하나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드는 거룩한 단어들은, 십중팔구 자신들의 가장 추악한 결핍과 치부를 감추기 위한 시선 교란용 연막탄일 뿐이다. 5.18 전야제 룸싸롱이 그렇고, 노무현팔이가 그렇다.
공정을 외치는 자가 비례 배지를 두 번씩 해 먹으며 가장 불공정하고, 평등을 외치는 자가 귀빈실을 탐닉하며 가장 귀족적이며, 여성 인권을 외치는 자가 성차별주의자와 권력을 짬짜미한다. 부디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제발 당신들 부부나 똑바로 사시라.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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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향도 대통령과 국민의 대표로서 입법부의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고, 우리동네 통장님도 할 수 있다. 건전한 상식이 있고 경우와 염치를 알며 명예에 대한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허영심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행정각부를 운용하며 정책과 실무를 총괄하고, 법을 세우고 다듬고 걷어내는 과정에서 핵심 주역으로 활약하는 국무위원들과 정무직 관료들, 국회 각 의원실의 보좌진들은 절대 아무나 되어서는 안 되고 그 막중한 직무를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고도의 전문성과 투철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적 시민의식, 불굴의 실행의지와 강철 같은 체력은 물론, 멸사봉공의 굳건한 공공도덕 기준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흔히들 향도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향도는 국민이 주권을 모아 행사하는 하나의 도구이자 통로로서, 개별 주권의 각개격파식 행사와 방향 설정의 백인 백색에 따른 중구난방식 혼란과 비효율을 없애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다. 실제로 향도의 실효적 역할은 국무위원 등을 선발하고 임명하는 것, 그 업무의 수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딱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굳이 딱 하나로 정리 하자면, 가장 뛰어난 인물을 국방장관으로 선발 임명하고 행정부를 통할하여 그를 보좌하는 것, 그 하나다. 국가의 기본 책무 자체가 간추리면 안보 하나로 귀결되고 그 것이 나라를 이루어 살아가는 가장 으뜸의 목적이기 때문이고, 여타의 모든 역할은 그 기본에 뿌리를 둔 곁가지들이 때문이다. 오바마가 빈라덴 체포작전의 긴박한 순간에 멀찍이 뒷자리에 물러앉아 있었던 것이나, 전두환이 김재익 서석준을 발탁하여 경제의 운용을 맡기고 뒷전에 물러나 있었던 일 등은 향도의 역할과 결정에 대한 선택의 제한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것을 결정하다고 자타가 오인하는 향도의 권한과 역할은, 최종적으로 국무위원들을 필두로 한 참모진들이 만들어내고 제시하는 전문적 선택지들의 범주 내로 제한된다. 스스로가 돌발적이고 개인적 성향의 방향성을 강압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나, 이 역시 물리적으로 수행 가능한 범위 내로 참모진의 견해에 따라 연마되기 마련이다. 비록 더 엉망인 꼬라지가 되더라도... 행정의 역할과 범위, 기능과 책임을 설정하고 국민 생활의 거의 전 부문을 규율하는 입법의 주체로서 국회 보좌진의 역할과 책무는, 행정의 그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긴요하고 막중하다. 실제로 입법안의 기초를 세우고, 적용과 작용의 적부를 심사숙고 하고, 다투고 타협하고 거래하며 집단지성의 힘으로 나라가 움직이는 무형의 틀을 세우고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곳의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이다. 함량 미달의 허명 뿐인 명망가나 선동꾼, 사욕으로 가득찬 유해성 능력자를 자칫 국회에 심으면, 그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를 정점으로 한 국회의 전문 보좌진 상당수가 오염되고, 결국 국회는 기능 불량 상태에 빠지게 된다. 향도도 국회의원도, 국민 주권의 결집과 행사를 위한 도구이자 통로 임을 명심하고, 국무위원을 필두로 한 최상의 전문 참모집행진, 최상의 전문 입법보좌진의 구성에 최선을 다하고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 것이 그저 아무나일 수도 있는 향도와 국회원들을 우리가 어떻게든 용인하는 이유다.
좌파들의 이중적 위선에 가히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젊은애들이 어떻게 저런 신박한 방법으로 잔머리를 굴려 재산을 불리고 가면을 쓰고 살 수 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