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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AI 자본주의’와 최태원의 ‘낡은 성장론’
  • 김영 편집인
  • 등록 2025-10-27 1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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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은 말했지만 체제를 보지 못했다
  • AI를 투자로만 본 기술 낙관주의
  • 설계 없는 성장론은 국가의 주권을 비운다
AI 자본주의가 자본의 헌법을 다시 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재계 담론은 여전히 20세기식 성장 공식을 되풀이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발언은 그 대표적 사례다. 한미일보는 그의 성장론이 DGS 시대의 구조적 현실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 기사는 산업주권과 국가 설계권의 관점에서, 한국 경제 담론의 시간 좌표를 묻는다. <편집자 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수출 중심 성장의 한계”를 말하며 한일 경제연대와 AI 투자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AI가 자본과 권력의 구조를 다시 쓰는 현실을 간과한 채, 산업시대의 성장 논리를 되풀이한 것으로 평가된다. 

 

AI 자본주의는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DGS(Digital Governance System), 즉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국가의 설계권을 대신하는 새로운 통치 체제의 문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시장과 투자’의 언어로 미래를 설명하고 있다.

 

최 회장은 26일 유튜브 경제채널 삼프로TV·언더스탠딩·압권 연합 인터뷰에서 “AI 분야에서 뒤처지는 것은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투자는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을 군비 경쟁에 비유하며 “반도체와 인프라 투자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AI를 기술 경쟁이나 투자 대상의 차원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에서 한계가 지적된다. AI는 이미 산업의 일부가 아니라, 금융·행정·법률을 포괄하는 디지털 통치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얼마나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설계하느냐’가 국가의 주권을 결정하는 시대다. 

 

DGS 시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윤리 프레임을 넘어, 데이터·거버넌스·시스템(Digital–Governance–System)으로 국가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는 흐름을 의미한다. 자본은 윤리보다 코드를, 시장은 가치보다 알고리즘을 따르게 됐다. 국가의 통치력은 세금을 걷는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를 설계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변화를 읽지 못하면, 산업정책은 성장담론이 아니라 종속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

 

AI 자본주의 시대의 경쟁은 투자나 생산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인공지능의 윤리, 데이터 이동권, 디지털 세금 등 새로운 규제 체계를 구축하며 국가 단위의 ‘설계 헌법’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한국의 재벌 중심 성장론은 여전히 자본 투입과 시장 확장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통치의 언어이자 경제 주권의 헌법인데, 최 회장의 발언에는 그 구조적 인식이 빠져 있다고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1960년대부터 이어진 수출 중심 성장 공식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한국과 일본이 함께 새로운 성장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양국 협력이 새로운 내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산업의 구조 개편보다는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해법에 가깝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AI가 성장의 법칙을 다시 쓰고 있는 시대에, 협력의 논리만으로는 체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6조 달러 규모의 시장을 만들 수 있고, 세계 4위 경제 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일본은 소재·부품·장비에 강점을 갖고 있어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제시된 ‘한일 협력론’은 실질적인 기술 통합이 아닌, 기존 분업체제의 연장선에 가까워 보인다.

 

AI 자본주의 시대의 경쟁은 GDP의 합산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설계권 확보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그의 구상은 산업시대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시장의 외형을 키우는 방식에 머물렀다는 평가도 있다.

 

규제 개혁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최 회장은 “중소기업을 무조건 보호하는 정책은 낡은 방식”이라며 “성장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역에 AI 실험장과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는 ‘메가 샌드박스(대규모 자유 특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규제 완화론’은 자유를 내세우지만 설계의 책임을 비워둔 논리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AI가 공공과 민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현실에서 규제는 단순한 제약이 아니라 법과 행정의 구조를 설계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혁신이란 이름으로 국가의 설계 책임을 시장에 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는 ‘새로운 성장 공식’을 내세웠지만, 내용은 기술 낙관론과 시장 확장론의 결합에 머물렀다. AI가 ‘자본의 헌법’이 되고 알고리즘이 ‘행정의 언어’가 된 시대에, 성장은 더 이상 투자나 협력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 주권과 산업 설계가 국가의 생존을 결정짓는 현실에서, 시장 중심의 성장론은 국가의 설계 능력을 비워둔 채, 20세기의 언어로 21세기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그쳤다는 평가를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AI 자본주의 시대의 국가는 더 이상 시장의 조정자나 감독자가 아니다.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고 알고리즘의 기준을 설계하며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설계자여야 한다. 그의 발언이 진정한 ‘신성장론’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언어를 넘어 체제의 언어, 즉 ‘설계의 언어(DGS)로 옮겨가야 한다’는 지적을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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