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신호등이 동시에 깜박일 때, 국정은 방향을 잃는다. 법의 경고, 진실의 붕괴, 정보의 침묵 그리고 대통령의 확증편향까지. 한미일보 그래픽
이재명 정권의 위기는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붕괴에서 시작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경고음을 울렸고, 내란 사건 증인의 증언이 흔들렸으며, 국정원은 불확실한 정보를 정치 일정에 맞춰 흘렸다. 그리고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그 모든 징후를 하나로 묶었다. 정권은 더 이상 사건을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지 못하는 피동체로 전락하고 있다.
대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은 모든 위기의 시발점이었다. 대법원은 검사가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 직접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기소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검찰 수사권을 남용한 정치적 수사에 대한 명확한 제동이자, 사법부가 헌법적 균형을 복원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정권의 수사 정당성이 법의 벽에 부딪히면서 통치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법의 언어가 정치의 언어를 이긴 순간, 정권은 제도적 통제력을 잃었다.
뒤이어 열린 내란 재판에서 곽종근 전 사령관의 증언이 뒤집히며 위기는 한층 가시화됐다. 그는 법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접 ‘끌어내라’ 지시했다”고 증언했으나, 검찰 제출 통화기록이 공개되면서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핵심 증언의 신빙성이 무너지자, 내란 프레임의 정당성도 흔들렸다. 정권이 진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순간, 진실은 정권의 논리를 넘어 법의 영역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사법의 경고에 이어 진실의 균열이 연달아 터지면서, 권력은 ‘내러티브로 구축한 정당성’이라는 허상을 잃어갔다.
세 번째 징후는 국정원의 보고에서 나타났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서에서 “내년 3월 한미연합훈련 직후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이미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수준의 내용이었다. 특히 보고 시점이 정치 일정과 맞물리면서 “정권 보조용 정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보기관이 정권의 안위를 고려해 움직이는 순간, 국가는 객관적 정보 생산 능력을 상실한다.
사법의 독립과 더불어 정보의 중립성까지 흔들리자, 정권은 현실이 아닌 ‘정치적 해석의 언어’로만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징후를 실체로 드러낸 사건이 11월 4일의 시정연설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영혼까지 갈아넣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영혼은 헌신이 아니라 확증편향의 산물이었다. 그는 “한미 관세협상 타결”, “핵잠 협의 진전”, “한중 관계 전면 회복”을 성과로 제시했지만, 그 어느 것도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다.
미국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고, 핵잠 추진연료 협의는 논의 개시 단계, 한중 관계는 여전히 불신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를 ‘완결된 성과’로 규정했다. 이것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현실을 신념으로 바꾸는 위험한 왜곡이었다.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믿는 것을 사실로 선언하는 순간, 국정은 통치가 아니라 자기암시의 체계로 변한다.
시정연설은 바로 그 확증편향의 제도화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참모는 비판 대신 순응을, 여당은 견제 대신 동의를, 언론은 질문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언어는 국가의 사실이 되었고, 신념이 정책으로 번역되었다. 이재명 정권의 위기는 외교나 경제가 아니라, 진실을 바라보는 감각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미일보는 이 흐름을 ‘사법의 경고에서 출발해 확증편향으로 귀결된 통치의 붕괴’로 본다. 대법원의 판결은 법의 경고, 곽종근의 위증은 진실의 균열, 국정원의 보고는 정보의 왜곡, 그리고 시정연설은 확증편향의 체계화였다. 이 정권의 위기는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의 결함이다. 법과 정보와 언어가 모두 신념의 틀 안에서 작동할 때, 정치는 더 이상 현실을 통치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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