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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칼럼] 국군방첩사령부 방첩 기능 분리의 위험성
  • 주은식 편집위원·한국전략연구소 소장
  • 등록 2025-12-15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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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첩은 공격적 방어이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군 내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필수적이다. 방첩사령부

주은식 편집위원·한국전략연구소 소장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군은 여전히 충격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군·대령급 인사가 장기간 지체되며 지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고, 정치권은 군 조직의 핵심 기능마저 재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정부가 국군방첩사령부의 핵심 기능인 방첩 업무를 정보본부로 이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군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라 군의 기본 원리와 안보 체계를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실험에 가깝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안(Security)과 방첩(Counterintelligence)은 분명 다른 개념이며, 동시에 결코 분리해서는 안 되는 기능이다. 

 

보안은 인원·시설·통신·사이버·문서를 포괄하는 예방적 관리 체계로, 조직의 취약점을 사전에 차단하는 업무다. 방첩은 그와 달리 적의 첩보 활동을 탐지하고 추적하며 무력화하는 공격적 방어 활동이다. 방첩은 공격적 방어이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군 내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안과 방첩은 성격은 달라도 실질적으로 한 몸처럼 결합된 체계로 작동해 왔다.

 

정보본부는 기본적으로 정보 수집·분석·평가·전파라는 정보 사이클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즉 작전 지휘를 지원하기 위한 외부 위협 분석이 주기능이지, 군 내부에 침투한 적대 세력을 식별하고 차단하는 방첩 기능은 본령이 아니다. 정보 병과 장교들이 방첩·보안 분야의 실무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온 집단이 아니라는 점은 군 내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방첩 기능은 인적 네트워크, 수사 감각, 심문·분석 기술, 법적 구조의 이해가 모두 맞물려야 제대로 작동한다. 하루아침에 조직만 옮긴다고 그 기능이 이전되는 업무가 아니다. 기능 이관은 곧 그 조직을 와해할 가능성이 크다.

 

국군방첩사령부는 군 내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방첩 조직이다. 방첩 기능을 떼어내는 순간 방첩사는 사실상 명목상의 조직으로 전락한다. 방첩 기능 분리가 특정 사건 이후 방첩사를 ‘조직적으로 위축’시키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그 결과다. 군 내부 적대 세력·간첩·공작에 대한 대응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고, 보안 사고 발생 시 어느 기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조차 모호해질 수 있다. 정보본부와 방첩사 간 임무 중첩 또는 회피가 발생해 현장의 보고 체계는 혼선을 겪을 것이며, 지휘관들의 의사결정은 불신으로 위축되고, 군의 기강과 전투준비태세가 해이해지는 것 또한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 불신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방첩 기능을 구조적으로 흔드는 것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 방첩사 내부에서 잘못이 있었다면 책임을 묻고 제도를 개선하고 감독 체계를 강화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핵심 기능 자체를 약화시키는 식의 접근은 안보 체계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과 다름없다. 안보 분야에 대한 잘못된 선택은 사후 검증이 불가능한 데다,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방첩 기능 무력화와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첩 기능을 약화시키는 조직개편과 적대 세력 활동을 법적으로 차단할 장치를 줄이려는 시도가 병행된다면, 이는 국가 안보 체계 전반을 구조적으로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단순한 이분법적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간첩 활동·국가 전복·적대 세력 협력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방파제 역할을 한다. 법의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면 ‘개정’이 해법이지, 방첩 공백 상태에서의 폐지는 곧바로 국가 안보의 약화를 의미한다.

 

국제적 기준을 보아도 방첩 체계를 해체하는 민주국가는 없다. 

 

영국은 공무상 비밀법(Official Secrets Act, OSA)을 운영하며, 군사·외교·정보 분야의 기밀 유출과 외국 정보기관 협력을 형사 범죄로 엄격히 처벌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무관하며, ‘국가 기밀과 적대 세력 협조 행위’가 적용 대상이다. 

 

프랑스는 형법전(Code pénal)과 국방법전(Code de la défense)을 통해 국가 안보 관련 정보를 보호하고 간첩 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특히 군·정보 조직 내부의 방첩은 분리되지 않고 통합 운용된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간첩법(Espionage Act)과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을 기반으로 군과 정보기관 내부에서 방첩·보안·기밀 보호 기능이 하나의 체계로 작동한다. 내부 고발과 간첩 행위는 명확히 구분되며, 후자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다.

 

이들 국가는 모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이지만, 국가 안보와 기밀 보호만큼은 결코 정치적 담론에 맡기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방첩을 해체함으로써 지켜지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 논리가 ‘민주주의 대 안보’라는 허위의 이분법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방첩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 세계에서 단 한 번도 r ㅡ정당성이 입증된 적이 없다. 오히려 역사는 이렇게 말한다.

 

방첩사는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인적 경험·네트워크·기술의 집합체다. 이를 잘못 건드리면 표면적으로는 유지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기능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된다. 필요하다면 통합적 통제 강화, 기밀 보호 법제의 정교화, 방첩 실패에 대한 책임 강화 등 제도적 재정비를 통해 기능을 개선해야지, 기능 자체를 조직적으로 분리·해체하는 방식은 국가 안보를 정치적 메시지에 종속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국가기밀 보호에 대한 법적 장치 유지·정교화, 방첩 권한의 남용 억제와 실패에 대한 책임 강화를 통해 선진국과 동일한 수준의 안보법제를 운용해야 하는 것이지, 안보는 사상 문제가 아니다. 안보는 체계와 기능의 문제이며, 그 대가는 항상 사후에 지불된다. 국가는 실험실이 아니고, 군은 정치적 정화의 도구가 아니다. 한번 무너진 방첩 체계는 다시 복구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선진국의 군사·정보 체계가 공통적으로 유지하는 기준은 단 하나다. 보안과 방첩은 분리할 수 없는 통합 체계로 운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다.”

 

한미일보 편집위원·한국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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