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이라는 과거가 광복 이후 한국사회의 심리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를 파헤치는 ‘신화가 된 조선’이 출간됐다.
저자 정광제는 “8·15광복은 흔히 한민족이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환희의 순간으로 그려지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이 지닌 구조적 한계를 더 이상 가릴 수 없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조선은 긴 시간 동안 자기 성찰을 거의 하지 않은 사회였다. 왕조는 정통성과 명분을 강조했지만, 그 명분은 실제 통치 능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 정치 구조는 파벌과 문벌 중심으로 고착되었고, 사회적 문제는 도덕적 논리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27쪽)
조선은 근대 국가로 전환하지 못했고, 제도·경제·정치 전반에서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 채 국제 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말하자면 광복은 그 실패를 극복한 사건이 아니라, 그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출발점이었다.
저자는 광복 직후 한국 사회가 조선의 실패를 냉정하게 분석할 심리적·제도적 여유를 갖고 있지 않았다며 분단과 전쟁, 생존의 압력 속에서 공동체가 필요로 했던 것은 설명과 분석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의 회복이었다고 강조한다.
역사 심리학은 과거의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어떻게 기억되고 해석되며 공동체 내부에서 의미로 굳어졌는지를 분석하는 접근이다.
혜촌 김학수(1919~2009) 화백이 그린 조선시대 ‘종로’ 모습. [혜촌선생기념관]
‘신화가 된 조선’은 조선의 역사를 새로 정리하기보다 조선이라는 과거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심리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재구성이 어떤 경로를 거쳐 신화로 굳어졌는가를 탐구한다.
이 책을 일반 역사서가 아닌, 조선을 둘러싼 기억과 해석의 구조를 분석하는 역사심리학적 해설서로 분류해야 하는 이유다.
정광제 작가는 역사철학 연구자로 이승만학당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한미일보에 松山이라는 필명으로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 노병들의 수기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고 시인으로서 네 권의 시집을 상재한 바 있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