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제시한 큰 선물에 대해 “(호르무즈)해협 수송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답했다. [사진=연합뉴스]
중동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이 이란에 15개 항의 종전 조건을 제시하며 ‘1개월 휴전 후 협상’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에 평화가 올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의문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애초에 전제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평화를 전제로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긴장을 관리하는 구조 위에서 움직이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흐름의 핵심 통로다. 전 세계 원유의 약 20%, LNG 교역량의 20% 이상이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이곳은 단순한 물류 경로가 아니라, 에너지·군사·외교가 압축된 공간이다. 여기서의 충돌은 곧바로 국제 유가와 금융시장, 그리고 각국의 안보 전략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이 해협에서의 평화는 외교적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긴장을 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이번에 거론되는 1개월 휴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교전 중단과 협상 개시를 위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전장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한 ‘시간 확보 수단’에 가깝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 통항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란은 해협을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긴장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유가를 흔들 수 있고, 이는 곧 협상력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계산이 더해진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존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시간 지연 자체를 위험으로 본다. 협상이 길어지거나 조건이 완화될 경우 군사적 선택지를 유지하려는 이유다.
결국 호르무즈를 둘러싼 구조는 세 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형태로 정리된다.
미국은 통행을 지켜야 하고, 이란은 통제를 유지해야 하며, 이스라엘은 위협을 제거하려 한다. 이 세 축이 동시에 충족되는 ‘평화 상태’는 구조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번 휴전 구상도 ‘평화의 시작’이라기보다 ‘충돌의 간격을 늘리는 장치’로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美 ‘이란 15개 협상안’ 핵심 구조 — 핵 폐기·미사일 제한·제재 해제 맞교환 미국이 제시한 15개 항은 크게 ‘핵·군사 능력 포기’와 ‘제재 해제’의 교환 구조로 설계됐다. 이란에는 ▲핵 능력 해체 ▲핵무기 포기 약속 ▲우라늄 농축 전면 금지 ▲60% 농축 우라늄 450㎏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관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핵시설 해체 ▲IAEA의 전면 사찰 허용 ▲탄도미사일 사거리 및 규모 제한 ▲역내 대리세력(프록시) 지원 중단 ▲호르무즈 해협 자유 통항 보장 등이 요구된다. 대신 미국은 ▲대이란 제재 전면 해제 ▲민간 핵 프로그램 지원 ▲합의 위반 시 자동 제재 복원(스냅백) 폐지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안은 핵 문제를 넘어 군사·외교 전반을 포괄하는 구조로, 사실상 이란의 전략 자산 전반을 재편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15개 항에 포함된 요구 사항들은 핵 프로그램, 미사일 전력, 역내 영향력까지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단순한 갈등 완화가 아니라, 이란의 전략 자산을 재편하는 수준에 가깝다.
이란이 이를 전면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신 이란은 휴전이라는 틀을 활용해 협상에 들어가되, 핵심 자산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벌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1개월 휴전은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다음 국면을 준비하는 ‘전략적 호흡 조절’로 기능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간격이 언제든 다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협상이 결렬되거나, 핵 문제에서 이란이 기존 입장을 유지할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시간 지연을 리스크로 보는 만큼, 독자적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휴전이 길어질수록 평화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충돌의 조건이 정리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호르무즈에 평화가 올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해협의 긴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다.
이번 휴전이 성사되더라도 그것은 평화의 도착이 아니라, 또 다른 충돌까지의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일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는 평화를 만드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긴장이 상수로 존재하고, 그 긴장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세계 질서가 흔들리는 곳이다.
그 의미에서 이번 1개월은 평화의 시간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준비하는 시간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