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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사태에 대한 입장] ②예외적 허용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인가
  • 임요희 자유주의 작가회의 회원
  • 등록 2026-03-26 02: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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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성역(권력)에 대해 의심하고 묻고 시비 거는 사람이다.

법이 허용하지 않는 모든 것을 금지하던 시대가 있었다. 

 

전체주의가 극에 달했던 20세기 초·중반 소련의 스탈린은 비밀경찰과 강제수용소를 통해 사회 전체를 감시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도 공포 정치를 통해 시민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제한했으며, 중국의 마오쩌둥도 시민의 사상과 생활 방식을 간섭하고 통제했다. 

 

법치주의(Law)가 아닌 ‘법을 이용한 통치(Rule by Law)’의 시대, 법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 통치자의 권력 유지와 시민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이용됐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법률이 금지하지 않는 것은 모두 허용된다”는 ‘예외적 금지’ 원칙에 따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예외적 허용’의 시대를 지나 ‘예외적 금지’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김규나 사태는 매우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예외적 금지란 남에게 즉각적이고 명백한(대개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의 의견을 원하는 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글 한 줄로 작가를 법정에 세우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성역을 만들어 누구도 못 건드리게 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부패한 권력이 판치던 시대, 지나온 시대의 일인 줄 알았던 일이 지금 우리의 일이 되었다.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비정상적인 권력이다. 특정 역사적 사건이 비판이나 해석의 여지가 없는 ‘성역’이 되는 순간, 그것은 학문이나 기억의 영역이 아닌 ‘(비정상적인) 권력’의 영역이 된다.

 

5·18이라는 성역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훼손했다고 해서 한 작가에게 이토록 오래도록 집요하게 사회적인 괴롭힘을 퍼붓는 게 정상적인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2024년 김규나가 개인 페이스북에 의견 한 줄 냈을 때, 지상파 뉴스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 매체는 인격 살인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고, 악플러들은 ‘얼굴을 칼로 찢어 죽여버린다’ ‘쓰레기 같은 아줌마야, 당장 죽어라’ ‘당장 극단적 선택으로 죽어버려’ 같은 사이버불링을 자행했다. 경찰에서 오히려 그를 위한 신변 보호 조치를 검토할 지경이었다. 

 

5·18이 비극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권력)인 것은 맞나? 만약 그것이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권력)이 맞다면 김규나는 옳은 일을 한 것이다. 

 

작가는 성역(권력)에 대해 의심하고 묻고 시비 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김규나는 자기 일을 했다.

 

자기 일을 했을 뿐인데도 김규나는 이미 지나치도록, 넘치게, 과하게 벌을 받았다. 더 이상의 처벌은 이중 처벌이자 사회 전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일이다. 기어이 ‘예외적 허용’의 시대로 회귀해야 하겠는가.

 

임요희 자유주의 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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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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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3-26 07:51:33

    5.18 진실문제로 탄압을 받는 국민이 김규나 작가뿐이겠는가? 지만원 박사님은 수십년동안 연구한 팩트를 갖고 발언한 것인데 오히려 공격받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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