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3월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가 추모식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은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정확한 말이다.
누가 도발했고, 누가 희생됐으며, 국가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대통령의 품격이다.
그런데 2026년 3월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기념사는 그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
올해 기념식 주제부터가 “우리의 바다 서해, 평화와 번영으로”였다. 이 문구는 행사 전부터 추모의 본령보다 평화 메시지를 앞세운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서해수호 영웅들에 대한 경의와 추모를 표하고, 유가족과 참전 장병에 대한 예우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더 강하게 부각된 문장은 “평화가 밥이고, 평화가 곧 민생이고, 평화가 최고의 안보”라는 대목이었다. 이어 “싸워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라고도 말했다.
대통령이 평화를 말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말이 놓인 자리다.
서해수호의 날은 추상적 평화를 노래하는 자리가 아니라, 북한의 도발로 전사한 장병들의 희생을 국가가 기억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번 기념사에는 과거 자신의 천안함 관련 언행에 대한 사과가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3년 이래경 논란 당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는 공식적 발표고, 저는 그 발표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2025년 서해수호의 날에는 “북한의 기습 공격과 도발에 맞서 서해바다를 수호한 영웅들을 기억한다”고도 했다. 표현은 이전보다 달라졌다.
그러나 이번 기념사에서는 자신의 과거 천안함 관련 논란을 직접 정리하거나, 유가족과 장병들 앞에서 유감과 사과를 밝히는 대목이 없었다. 추모는 있었지만 사과는 없었다.
이 점에서 이번 기념사는 앞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 탄신기념행사 때 보여준 태도와 닮아있다.
과거의 공격적 언어와 부정적 평가에 대한 정리는 없이, 현재의 상징 행위만 취하는 방식이다.
과거 발언의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맞는 상징만 차용하는 것이다. 참석은 했지만 정리는 없었고, 예우는 했지만 사과는 없었다. 이런 방식은 인식의 전환이라기보다 상징의 관리에 가깝다.
더구나 서해 안보 현실은 대통령의 평화 수사를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일 만큼 한가하지 않다.
북한은 최근 수년간 서해 일대에서 포사격과 각종 군사적 도발을 반복해 왔다.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이후 긴장 관리의 전제도 크게 흔들렸다. 얼마 전 북한 김정은은 우리를 제1 주적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해수호의 날 대통령 연설에 먼저 필요한 언어는 “평화가 최고의 안보”라는 도덕적 문장이 아니다.
도발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억지와 응징의 의지를 확인하는 국가의 문장이다. 평화는 목표일 수는 있어도 전제일 수는 없다. 서해의 평화는 기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억지력 위에서만 유지된다.
바로 여기서 ‘교언영색’이라는 말이 나온다.
듣기 좋은 말은 많았다. 갈등의 바다를 평화와 번영의 터전으로 바꾸겠다는 말도,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가 더 중요하다는 말도 표면만 보면 흠잡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가 기억해야 할 비극의 현장에서, 그 말들은 너무 매끈했고 너무 안전했다. 도발 주체를 또렷하게 새기고, 희생 앞에서 국가의 분노와 책임을 분명히 하는 대신, 누구나 박수칠 수 있는 말로 연설을 채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품격이 아니라 정치적 회피에 가깝다.
대통령의 품격은 부드러운 표현에서 나오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을 피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특히 서해수호의 날 같은 국가 추모식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천안함과 연평도의 기억 앞에서 필요한 것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누가 공격했고, 무엇이 희생됐으며, 국가는 다시는 그 희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태세를 갖출 것인지를 분명히 말하는 일이다.
그 위에 평화가 와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평화는 가치가 아니라 수사가 된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이재명 대통령의 기념사는 정말 서해수호 영웅들을 위한 연설이었는가. 아니면 그들의 희생을 배경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다듬는 정치적 문장이었는가.
품격은 좋은 말의 총량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품격은 책임져야 할 말을 끝내 피하지 않는 데서 증명된다.
이번 기념사에 남은 것은 추모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의 품격을 세우는 핵심인 사과와 책임, 그리고 현실의 언어는 끝내 빈자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