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언론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선언보다 사건을 보도하고, 쟁점을 정리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기본이다. 4월2일 김규나 작가 공판이 끝난 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앞에 그의 지지자들이 모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한미일보
김규나 작가 재판을 둘러싼 우파 언론의 태도는 단순한 보도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은 한 진영이 스스로 내세워 온 원칙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그 결과는 간단하다.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이 드러났다.
우파 언론은 오랫동안 표현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내세워 왔다. 특정 발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되거나 처벌되는 현실을 비판해 왔다.
국가 권력이 사상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경계해 왔고, 개인의 발언은 가능한 한 넓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근대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원칙은 선언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김규나 재판은 바로 그 적용의 문제를 드러낸다.
한 개인의 발언이 형사 절차로 이어지고, 법정에서 다투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언론의 역할은 명확하다. 사건의 경과를 알리고, 쟁점을 정리하며, 사회적 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우파 매체는 이 사건을 사실상 외면했다. 일부 단신 처리에 그치거나, 아예 보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침묵은 우연이 아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판단의 결과다. 그리고 그 판단은 곧 기준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발생한다. 왜 이 사건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는가.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내부 부담이다. 같은 진영 내부 인물과 관련된 사안은 보도 자체가 내부 갈등을 확대할 수 있다. 둘째, 정치적 계산이다. 특정 사건이 전체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보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셋째, 리스크 회피다.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 사안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공격을 피하려는 태도다.
이러한 판단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언론도 조직이며, 생존과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언론의 정체성이 시험된다. 원칙을 유지할 것인지, 상황에 따라 조정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내세운 기준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표현의 자유는 특정한 경우에만 강조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부담스러운 사안, 내부 인물, 정치적으로 복잡한 사건일수록 더 분명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기준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원칙은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상황적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언론의 신뢰는 선택적 보도에서 무너진다. 어떤 사건은 크게 다루고, 어떤 사건은 외면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독자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보도가 원칙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이해관계에 따른 것인지 묻게 된다. 이 질문이 반복되는 순간 언론은 스스로 권위를 잃는다.
특히 현재와 같은 정보 환경에서는 이러한 문제는 더 빠르게 드러난다. 독자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건을 접하고, 언론의 보도 여부를 비교한다.
특정 사건에 대한 침묵은 곧 의도된 배제로 해석된다. 과거처럼 ‘모르면 넘어가는’ 시대가 아니다. 알고도 다루지 않는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순간 신뢰는 급격히 약화된다.
더 큰 문제는 내부 비판의 부재다. 외부를 향한 비판은 날카롭지만, 내부를 향한 점검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공론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며 정제되는 과정이 사라지고, 동일한 입장만 반복되는 구조가 고착된다. 결과적으로 진영 전체의 사고 능력이 약화된다.
김규나 재판을 둘러싼 침묵은 바로 이 구조를 드러낸다. 불편한 사안에 대해 말하지 않는 습관은 점점 확대된다. 한 번의 침묵은 다음 침묵을 정당화한다. 결국 원칙은 점점 좁아지고, 적용 범위는 점점 제한된다. 남는 것은 선언뿐이다.
표현의 자유는 불편한 발언까지 포함할 때 의미를 가진다. 모두가 동의하는 말만 보호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논쟁적이고 부담스러운 발언까지도 보호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난다. 이것이 자유주의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기준이다.
우파 언론이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전통 위에 놓고자 한다면, 이 기준을 회피할 수 없다. 특정 인물이나 특정 사건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의 문제다. 원칙은 대상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진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선언보다 사건을 보도하고, 쟁점을 정리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기본이다. 이 기본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부담을 감수할 수 있는지 여부가 언론의 수준을 결정한다.
김규나 재판은 하나의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우파 언론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표현의 자유를 실제로 지킬 것인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드러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기록으로 남는다. 우파 언론이 이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앞으로의 신뢰를 좌우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