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전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이 2017년 자유총연맹 총재 시절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 남파 北 애국열사릉’ 유일 목격 정치원로 충격 폭로
“놀란 주민에 막혀 무기 버리고 도주… 5·18 재조사해야”
“국민적 합의와 납득 없이 헌법 전문 수록 꿈도 꾸지 말라”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특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가 5·18 당시 광주 송정리역에서 북한 말투를 쓰는 50여 명의 ‘특수공작원’이 광주역 급습을 시도했으나 주민들에 가로막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처음으로 폭로했다.
김경재 전 총재는 최근 <한미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려면 반드시 국민의 납득과 재조사가 전제돼야 하며 국민적 합의 없이 헌법에 포함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이 같은 증언 내용을 공개했다.
김 전 총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에서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9년 김대중의 특사로 북한에 다녀온 후 2000년대 들어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으로 당적을 바꾼 뒤 2016년 자유총연맹 총재를 지냈고, 현재까지 애국 활동에 헌신해 오고 있다.
김 전 총재는 “5·18 당시 광주 송정리역에 ‘50여 명’의 일군의 군인들이 들이닥쳤는데 전부 국군처럼 보이는 것이고 계급장 다 있고 총을 다 들고 있었다”며 “이들은 광주역으로 쳐들어가겠다며 기차를 대라고 했고 광주 주민들이 깜짝 놀라 ‘도저히 못 간다’고 막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광주 진입이 불발됐다”고 직접 확보했던 증언 내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대다수 총을 거기에 놔두고 사라졌는데 이것도 이상한 일이고, 이들은 말을 별로 많이 안 했는데 이북 말(북한말)을 주로 많이 사용하더라는 것”이라며 “그래서 지만원 박사가 얘기했던 600명은 아니었어도 한 50명 정도의 ‘코만도(commando·특수 공작원)’가 왔을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코만도’는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 영화의 제목에서처럼 특수 훈련을 받은 요원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보충 설명했다. 송정리역은 1980년 5·18 시절의 옛 지명이며 2009년 송정역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오늘날 송정역에서 광주역까지는 기차로 35분,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다만 이들이 목격된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고 전제했다. 그는 “광주가 어떤 다른 세력에게 점령됐을 때인지, 아니면 계엄군이 장악하고 있을 때인지 타이밍은 정확하지 않다”고 했고, ‘군분교 사건(20사단 지휘차량 탈취 사건)’ 전후인지에 관한 질문에도 “그 전후는 애매하다”고 부연했다.
시위대가 남한의 도시(광주)를 접수했다는 뉴욕타임스 1980년 5월22일자 헤드라인 아래로 ‘군으로부터 무기를 탈취한 폭도들이 미쳐 날뛰고 권력자는 위협(습격)받고 있다(Rioters rampage with arms seized from Military - strongman is assailed)’는 부제목이 달려 있다. 사진에는 ‘전두환 찢어죽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우파 관점에서 5·18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신원불명의 무장괴한들이 여러 차례 출몰했다.
군분교 사건도 이 중 하나다.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한 ‘집단 발포’가 있었다고 주장해 온 당일인 1980년 5월21일 아침 광주에 도착한 20사단 62연대 지휘부 차량 14대가 복면을 한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한 사건이다. (※본지는 ‘집단발포’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입장을 공식 견지하나 국민에게 널리 인식된 용어인 만큼 사건의 앞뒤 맥락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포격이 없었기에 ‘발포’라는 용어 자체도 사실에 어긋난다.)
4일 전인 5월14일 광주 무등산 증심사(證心寺)에서는 거동이 수상한 남성 100여 명이 전투체육의 날 등산 중인 국군 장교 70명에 의해 목격된 증언도 공개된 바 있다. 전남 화순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류를 강탈한 폭도들이 “개수작하지 말라우”라는 표현을 썼다는 증언도 확보됐다.
또한 화순 경찰서에선 유치장에 갇힌 이들을 빼내려고 무장괴한 800명이 총을 쏘며 습격했다는 정부 기록물도 문재인 정부가 구성한 정부 조사위원회에 의해 발굴돼 2024년 6월 공식 보고서 소수의견으로 공개됐다.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전투교리발전부장이 ‘북괴가 광주교도소를 습격 해방’ 지령을 수차례 청취했다는 5·18 연구가의 분석 결과도 있다. 계엄군의 시신을 목줄 매 트럭에 끌고 다녔다는 사단 작전참모의 자필 진술서도 취재 과정에서 발견됐다.
‘로프로 목을 묶고 추럭(트럭)에 매달아 시내를 끌고 다니는 것을’이라는 20사단 작전참모의 자필 진술서. 좌파 정권의 정부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끔찍한 행동들이 사실이라면, 모두 광주시민들이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진 오른쪽 아래 노란색 네모는 숨진 운전병. [기무사령부·육군본부 군사연구실]
20사단 ‘차량 행군부대 기습상황’ 보고 반전지 차트에 기재된 당시 작전 및 피해 상황. 맨 아래 ‘실종 운전수는 폭도들에 의해 피살됨’이라고 기록돼 있다. [육군 20사단 문건]
육군 2군사령관도 간첩 침투 실태 보고받았다 5·18 당시 우리 군이 북한의 침투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인식과 달리 실제 군당국이 의심한 정황은 곳곳에 있는 기록들에서 확인된다. 취재진이 확보한 1981년 5월22일 발간 육군본부 교훈집 63쪽에는 1980년 5월23일 2군사령관은 참모 작전회의에서 “광주지역의 난동자중에는 가발사용자와 복면한 자 등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특히 서울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자처하는 자 20여 명이 있는 등 북괴의 ‘침투(浸透)’를 의심케 하는 실태”라고 보고받았다. [육군본부 교훈집]
이에 따라 도저히 순수하고 순박한 대다수 광주시민의 성정(性情)에서 비롯된 일들이라곤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버젓이 자행된 공적 기록들이 있음에도, 좌편향된 정부 조사는 이 문제를 말끔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무려 40여 년간 순수한 광주시민을 가스라이팅하고 악용한 배후 세력이 존재한다면 그 실체를 벗기고 전모를 낱낱이 드러내야 했지만 정부 조사위가 세금만 축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김 전 총재는 ‘코만도 50명’ 증언과 관련한 이번 인터뷰에서 “북한 코만도인지, 아니면 북한 얘들이 장악하고 있는 광주의 공수부대 코만도인지 애매하고 정확하지 않다”면서도 “이런 문제를 국민이 알 수 있도록 깨끗하게 열어야 한다”고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동안 김경재 전 총재는 5·18 초기 광주의 학생과 시민이 행한 ‘항쟁의 성격’ 자체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해 왔다. 이는 북한 개입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민주화운동’ 자체가 아니라고 봐온 보수 일각 5·18 연구가들의 관점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김 전 총재는 호남 기반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전직 거물급 원로로서 5·18 유공자 명단이 공개되지 않고 광주시장이 임의로 선정하는 현실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현역 국회의원들이 현 이재명 정부·여당의 헌법 개정안을 지지한다면 역사적으로 부끄러운 행위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공개 경고하고 있다.
그는 “광주의 진정한 영웅은 진정한 영웅으로 모시되 광주 5·18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가짜 유공자는 빼야 한다”면서 “광주를 깨끗하게 만들고 난 다음에 헌법 전문에 올리든 말든 해야 될 것 아닌가”라고 개탄했다.
김 전 총재는 기자가 <스카이데일리> 시절 5·18 북한 개입 시리즈를 취재할 당시에도 여러 차례 ‘민주화운동’의 성격이 있다는 지론을 피력하면서도 동시에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훗날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부인하지 않고 여지를 뒀었다.
그 보따리의 일부가 이번에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1980년 5월21일 정오 무렵 흰 옷 남성 뒤로 신원미상의 장정들이 해남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있다.
앞서 김경재 전 총재는 지난 1999년 김대중 특사로 북한에 갔을 때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서 ‘광주에서 전사한 인민군 애국열사들의 가묘’를 봤다고 폭로했고 연합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서옥식 대한언론인회 당시 부회장 겸 편집위원이 2023년 5월 ‘KNews’에서 이 내용을 처음 보도했다.
김 전 총재의 유력한 증언은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10월30일 광주고법 민사1부(고법판사 이의영·조수민·정재우)는 지만원 박사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 12쪽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의 소규모 공작원 또는 고정간첩이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는 있다”는 문구를 처음 공적 기록에 적시했다.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김경재총재님 감사합니다 ^_^ !!!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눅19:40)
호남의 맹주이자 거물급 인사에 의해 518진실이 드러나는군요
역사 왜곡은 중대 범죄고 아무리 왜곡해도 다시 바로 잡히게 돼있다, 왜냐고?
그 진실을 아는 증인들이 살아있고 또 사실을 기록으로 전하기 때문에-----
김경재 총재는 그 누구보다도 김대중의 과오와 5,18사태를 잘 알기 증인이다,
일부 좌빨들이 5,18사태를 악용하여 권력화시키는 행태는 범죄로 반드시
단죄될것이다, 당시의 조선,동아등 언론들의 기사만봐도 증거는 많다,
光州여 제발 다시 빛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