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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사과해야 할 자가 적반하장격 ‘매국 타령’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12 19: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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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략 전쟁’ 프레임으로 국익을 해칠 셈인가
  • ‘수평적 당청관계’는 없고 칭송과 방어만 남았다
  • 진짜 매국은 잘못을 덮고 추종으로 세탁하는 정치

 

정치가 위기에 몰리면 말의 순서가 본능을 드러낸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X에 “사욕을 위해 국익을 훼손하는 자들을 매국노라 부른다”고 썼다. 이어 “각국의 주권과 보편적 인권은 존중돼야 하고 침략적 전쟁은 부인된다. 그게 우리 헌법정신이자 국제적 상식”이라고 적었다. 

 

보도를 종합하면, 이 글은 이스라엘군 관련 영상 게시 이후 불거진 논란을 의식한 반박 성격으로 읽혔다.

 

문제는 국민이 먼저 물어본 질문이 전혀 다른 데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 영상을 대통령이 직접 올렸는가. 사실관계 확인은 있었는가. 혼선을 일으킨 데 대해 왜 먼저 사과하지 않는가.” 이게 국민이 물어본 질문이다. 

 

대통령이라면 순서가 분명해야 한다. 먼저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그다음 책임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다시 올린 글에는 사과는 없었고 사과 대신 ‘매국’이, 해명보다 ‘침략적 전쟁’이라는 도덕적 문장만 배치됐다. 그 결과 사실 검증의 문제는 흐려지고,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가의 싸움만 남게 됐다. 

 

이것은 전형적인 좌파식 프레임 전환이다.

 

더 심각한 것은 외교적 함의다. 

 

“침략적 전쟁은 부인된다”는 문장은 얼핏 추상적 원칙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논란 맥락에 들어오면 단순한 일반론으로 머물지 않는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지금의 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본다는 뜻인가”라고 읽게 된다. 그렇게 읽히는 순간, 그 전쟁을 선택하거나 지지한 미국의 판단, 더 직접적으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택까지 우회적으로 비난하거나 비꼬는 효과가 생긴다. 

 

사과가 먼저여야 할 자리에 전쟁의 선악을 재단하는 문장을 던졌으니, 그것은 외교의 언어라기보다 국내 정치의 언어에 가깝다고 읽힌다.

 

이게 과연 그가 말한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국제질서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 되묻고 싶다. 

 

한국은 미국과의 안보 공조 위에 서 있고, 중동 정세는 에너지 수급과 해상 교통, 금융시장 안정과 직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정확하고 절제돼야 한다. 

 

그런데 국내 정치적 방어를 위해 ‘매국’과 ‘침략 전쟁’의 프레임을 동시에 끌어오면, 얻는 것은 지지층의 박수일지 몰라도 잃는 것은 외교적 해석 비용이다. 

 

국익을 말하면서 정작 우방 지도자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얹고 국제 분쟁의 성격까지 감정적으로 읽히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신중한 국정 언어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말이 왜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을까. 

 

배경에는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과잉 칭송 문화가 있다. 

 

2021년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원과 의원들에게 이재명 당시 후보를 “공부해야 설득할 수 있다”며 ‘이재명 바로알기’ 캠페인과 ‘인간 이재명’ 독후감 릴레이를 제안했다. 지도자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기보다 서사화하고 반복 소비하는 정치 문화의 한 단면이었다.

 

정당이 자기 후보를 홍보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홍보가 어느 순간 검증을 압도하고, 설명을 대신하고, 비판을 불충처럼 몰아가는 문화로 굳어질 때다. 

 

지도자의 강점만 확대 재생산하고 논란과 오류는 충성의 언어로 덮는 구조에서는 실수조차 실수로 다뤄지지 않는다. 

 

반론은 공격으로 번역되고, 비판은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로 몰린다. 바로 그래서 이번 대통령의 ‘매국’ 발언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권력의 자기보호 언어처럼 들린다. 

 

자신이 먼저 사실을 바로잡고 사과해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비판자에게 도덕적 낙인을 찍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당은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스스로 떠올려야 한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시절 국민의힘을 향해 대통령과의 수직적 관계를 버리고, 직언 가능한 수평적 당청관계를 만들라고 몰아붙였다. 

 

실제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공개 발언에서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대패했는데도 대통령을 비판하지도 못하고, 대통령과 수평적 관계가 되려는 시도도 못 한다”는 취지의 비판이 나왔다. 또 여권 내부의 ‘수직적 당정관계’가 문제라는 지적도 당시 언론과 정치권에서 반복됐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야당일 때는 “왜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못하느냐”고 공격하더니, 집권하고 나서는 “왜 대통령을 비판하느냐”는 분위기로 돌아선 것 아닌가. 

 

한때 ‘수평적 당청관계’를 외쳤던 정당이 정작 대통령의 오류 논란 앞에서 직언보다 방어, 사과 요구보다 칭송, 검증보다 충성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면, 무너진 것은 상대의 원칙이 아니라 민주당 자신의 원칙이다. 

 

철학이 아니라 자리의 함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독재의 본질은 한 사람의 잘못 그 자체보다, 그 잘못마저 위대하다고 포장하는 추종의 언어에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칭송, 지도자의 오류를 충성으로 세탁하는 문화,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반역처럼 몰아가는 정치가 누적되면 국가는 진실을 잃는다. 

 

그래서 진짜 위험은 잘못한 권력만이 아니다. 그 잘못을 감싸고 칭송하며, 사과의 자리를 선악의 무대로 바꾸는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진정한 매국은 국가의 잘못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권력의 잘못을 잘못이라 부르지 못하게 만들고, 그 오류를 충성으로 덮고, 그 책임을 칭송으로 세탁하는 데 있다.

 

대통령이 정말 국익을 말하고 싶었다면 순서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관계에 혼선이 있었다면 먼저 인정하면 된다. 공인으로서 부적절했다면 먼저 사과하면 된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가치와 원칙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순서를 거부한 채 ‘매국’을 말하고 ‘침략 전쟁’을 말한다면, 국민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비판이 국가를 해치는 것이 아니다. 사과해야 할 권력에게 박수부터 치는 문화가 나라를 병들게 한다. 

 

잘못한 권력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잘못을 칭송하는 정치다. 

 

민주당이 과거 국민의힘에 요구했던 바로 그 원칙,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수평적 관계와 직언의 책임을 이제는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그 최소한의 자기일관성마저 없다면, ‘매국’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도 없다. 

 

국익은 낙인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국익은 책임과 절제로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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