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 정치
글쓴이 : 대연림
작성일 : 25-12-04 12:28
조회수 : 113

당동벌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가리킨다. 조선 시대 붕당은 자신의 당은 정학을 추구하는 군자들의 당이라며 치켜세우고, 상대당은 사문난적의 무리인 소인들의 당이라고 공격했다.

​우리편이 아니면 소인으로 낙인 찍는 이분법 정치에 대해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은 "세종의 치세 30여 년 동안에도 남을 지목하여 '군자'니 '소인' 이니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옛날 송나라에서나 있었던 일로서 아주 불미스러운 현상입니다." 라고 한탄했다. 허종이 말한 송나라에서나 있었던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송나라는 성리학파가 형성되면서 조정이 서로를 군자당 소인당으로 비난하면서 극렬하게 정치 투쟁을 벌이다가 북방민족의 침략을 받아 비참하게 멸망했다. 성종 당시 사림은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소인배라는 딱지를 붙이고 언론을 담당하는 삼사를 장악해 공격을 했다. 허종은 이것이 망국적 신호라며 한탄한 것이다. 원로대신 노사신 역시 사림의 이분법 정치를 비판했다.


"대간이 말을 내놓으면 홍문관이 잇따르고 홍문관이 말을 내놓으면 태학생(성균관)이 잇달아서, 갑이 부르면 을이 화답하여 하나의 전례가 되어, 흠 없는 데서 흠을 찾고, 말 없는 데서 말을 만들어, 남이 혹시 자기와 달리하면 문득 헐뜯어 백단으로 추하게 나무라므로 공경의 대부가 그 입이 두려워서 감히 그 사이에 옳고 그름을 말하지 못하게 되니, 이것이 어찌 성세의 아름다운 일이며 조정의 체통이라 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습속은 옛날에도 없었고, 우리 조정에 이르러서도 역시 없었습니다."

 - 연산군일기 1년 7월 19일 -



사림과 뜻을 달리하면 삼사를 동원해 공격을 퍼부어 옳고 그름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노사신은 비판적이었다. 허종과 노사신이 사림의 이분법 정치를 망국적 신호로 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조광조가 중종을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군자와 소인은 같은 조정에서 함께 일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군자를 진용하면서 소인도 몇 사람씩 등용하면, 군자는 두렵고 의심스러워 그 마음을 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인을 물리치되 멀리 내쫓지 아니하면, 소인은 반드시 앙심을 품고 틈과 기미를 보아 그의 흉모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밝은 임금은 소인을 물리칠 때에는 밝게 살피고 엄하게 결단하여, 먼 곳으로 내침으로써 그 근거를 뿌리 뽑고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단 자라나면 조처하기가 매우 어려운 법이며, 따라서 치란과 안위의 기틀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조광조는 군자와 소인은 같은 조정에서 일할 수 없다며 소인을 숙청하여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이분법 정치는 소인으로 규정한 반대당에 대한 정치적 숙청을 정당화 한다. 상대 세력을 체제 내 경쟁세력이 아닌 숙청대상으로 바라보는 행위는 극렬한 정치투쟁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수원부사 이성언은 "그들은 단번에 요순의 세상을 재현하려고 서두른 나머지 자기네와 뜻을 같이하는 자는 선인이라 하고 달리하는 자는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국사를 논의할 때 혹 자기들과 의견이나 방식을 달리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혹은 공론을 억누른다고 비난하고 혹은 심술이 악한 사람이라고 욕하며 당장 의혹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라고 지적했다. 뜻을 같이하는 자는 선인이고 달리하면 악인이라고 규정하는 선악 이분법 정치는 악인 즉 소인에 대한 완벽한 숙청을 정당화 한다. 소인의 뿌리를 뽑는 것에 '치란과 안위의 기틀'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 정치는 정치에서  타협이 불가능하고 완벽한 숙청을 정당화 하는 문제 외에도 내로남불의 활성화 라는 문제도 가져온다. 군자당에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흠결이 발견되어도 이것은 절차상의 실수 이거나 선한 결과를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니 문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신의 당은 군자이니 무조건 옳다. 비서의 냄새를 맡아도, 보좌관의 허벅지를 만져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권력을 이용해 부동산에서 부당이익을 취해도, 자녀를 부정한 방법으로 좋은 대학에 보내도 문제 삼지 말라. 우린 군자니까. 반면 상대당은 소인이니 조금만 잘못을 해도 정치적 생명을 끊어야 하는 중죄가 된다. 군자당은 다주택자에 입시비리에 여성을 성희롱해도 되지만 소인당이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먼 곳으로 내치고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림과 이후 붕당국면에서 벌어진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 정치는 극렬한 정치투쟁을 불러왔다. 극렬한 정치투쟁의 결과 소인은 숙청되고 군자만 남았다. 노론의 일당독주다. 군자들이 다스리는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다 알고있는 낙후되고 빈곤한 나라 조선이었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이었다.

​조선의 이분법 정치는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에 공명을 준다. 좌파는 정의를 독점한 듯한 자세로 우파를 적폐와 내란세력으로 규정하며 숙청을 시도하고 있다. 좌파는 우파를 친일과 독재의 후예로 미 제국주의에 기대어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좌파의 선악 이분법 정치는 극렬한 정치투쟁을 가져왔다. 그리고 좌파는 민주당 일당독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의로운 좌파가 모든 것을 장악한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조선의 마지막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조선 사림파의 경제 정책: '무본억말'과 절대적 빈곤 사회
  • 계엄에 관해 쓴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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