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주리 작가의 신간 에세이 ‘마음 박물관’을 읽었다. 따뜻한 관찰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엔 변함없지만 이번 책에선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깊어졌다.
작가는, 친구가 하나씩 죽을 때마다 시합에 이긴 기분이 든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를 상기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할머니를 보며 죽음의 공포에 잠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동네 전파사에서 기르던 귀여운 강아지의 죽음을 기억해 내기도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죽어간 50만 명의 사람을 생각하고, 뉴욕 생활 중에 생일 이틀 전에 일어난 9·11 세계무역센터 참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심지어 꿈속에서 “모르는 사람”과 공모해 “모르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30년 징역” 혹은 “무기징역”을 살 게 틀림없을 현실(사실은 꿈) 앞에서 그는 심하게 낙담하는데 심지어 오래전 세상을 떠났던 동생마저 나타나 슬픈 눈으로 누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 순간 깨어난다.
“이렇게 슬픈 꿈은 처음 꿔본다. 꿈속에서도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었다. 꿈에서 깨고 나니 세상에 걱정이 하나도 없어졌다. 그저 모든 게 고마울 뿐 미운 사람 하나 없었다.”
그것은 누구의 선물이었을까? 지옥을 현실처럼 겪은 뒤 그곳에서 놓여나는 것 그것이 천국 아니겠는가. 그렇게나마 작가는 현실의 걱정과 스트레스에서 놓여났던 듯하다.
“죽음이 한참 멀리 있다고 느꼈을 때 죽음은 내게, 받지도 않은 훈장이거나 겉멋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내게도 죽음은 저쪽 언덕에 있는 방아쇠였다. 나를 겨누고 있지만 나를 맞추기엔 너무 먼 거리. 딱 그 정도 거리에서 그것은 언제든 소설적 소재로 가져다 쓰이길 기다리고 있는 5분 대기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그 언덕이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지면서 죽음이, 삶의 실재가 되기 시작했다. 방아쇠가 코앞에 있다! 황주리의 ‘마음 박물관’을 아껴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이니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고대 로마에서 전쟁에 승리한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에게 ‘메멘토 모리!’를 외치며 뒤따라오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승자지만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카르페 디엠, 현재에 충실한 것이다.
“날씨 좋은 날은 잠깐 좋다가 더럭 겁이 난다. 이 좋은 날씨를 망쳐버릴 것 같은 실패의 두려움, 하지만 산다는 건 성공이라는 착각을 끌어안은 실패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이 책의 서문 첫 구절처럼 어쩌면 우리는 결국, 실패하는 데만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이 꼴 저 꼴 별꼴 다 보며 오래오래 살아보자.”
황주리 작가 [사진=임요희 기자]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