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기념탑. 서울시 자료사진.
헌법은 권력을 위한 사용설명서가 아니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세운 금지선이다
국가기관의 자정 기능이 멈췄다면 국민이 요구하는 특검으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마지막 경고마저 걷어찬다면 주권자는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할 것이다
헌법은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통령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문서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이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명령하는 문서다. 국회에 법을 만들 권한만 주는 것도 아니다. 다수 의석을 가졌다는 이유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헌법은 권력의 사용설명서가 아니다.
국민이 권력 앞에 세워놓은 금지선이다.
국민의 표에 손대지 말라. 국민의 입을 막지 말라. 법률이 정한 절차를 뛰어넘지 말라.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 위에 올려놓지 말라.
이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그 금지선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6·3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됐고, 국민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한 채 투표소를 떠났다. 국가가 반드시 보장해야 할 선거권이 현장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책임 있는 기관은 먼저 당락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졌다.
질문의 순서가 틀렸다.
헌법상 선거권은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을 때만 보호받는 권리가 아니다. 국가의 잘못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투표하지 못했다면 누가 준비 물량을 줄였고, 누가 부족 가능성을 보고받았으며, 누가 투표 중단 상황을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를 밝혀야 한다.
국민의 한 표는 선거관리기관이 사정에 따라 제공하는 행정서비스가 아니다. 주권자가 국가에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한 표를 빼앗고도 선거 결과에는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다.
헌법을 모욕하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사건 이후다.
어떤 판단으로 투표용지 수량을 정했는가. 현장의 용지 부족과 투표 중단은 언제, 누구에게 보고됐는가. 상황실은 무엇을 지시했는가. 왜 국민이 요구하는 자료와 영상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가.
국가기관은 믿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증명해야 한다.
믿음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증명하는 것이다.
선거가 공정했고 관리가 적법했다면 기록을 공개하고 검증받으면 된다. 책임이 없다면 독립적인 조사와 수사를 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자료가 없다고 하고, 공개 요구를 막으며, 검증을 요구하는 국민을 음모론자로 몰아붙인다면 의혹을 키운 책임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
선거관리기관은 스스로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 국회 국정조사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기록을 확보하거나 책임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기존 수사기관 역시 헌법상 선거권 침해 사건의 전모를 국민 앞에 보여주지 못했다.
국가기관의 자정 기능이 멈췄다면 특별검사가 나서야 한다.
국민이 요구하고 국회가 법률로 설치하는 참정권 박탈 사건 특검, 이른바 ‘국민 특검’이다.
국민 특검은 어느 정당의 정치적 무기가 아니다. 투표하지 못한 국민과 진실을 알 권리를 거부당한 국민이 국가에 내리는 수사 명령이다.
누가 투표용지 준비 기준을 정했는지 밝혀야 한다. 누가 부족 가능성을 알고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투표 중단 상황이 어떻게 보고되고 처리됐는지 밝혀야 한다. 기록이 작성되지 않았거나 사라졌다면 그 경위도 수사해야 한다. 자료 공개와 독립적인 검증을 가로막은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잘못이 없다면 특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특검을 거부하면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국민은 더 이상 선관위의 발표를 선거의 진실과 같은 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검증되지 않은 권위는 권위가 아니다. 책임지지 않는 독립성은 독립이 아니라 특권이다.
헌법을 위협하는 것은 선거권 침해만이 아니다.
권력에 불편한 말을 허위조작정보라는 이름으로 먼저 차단하고,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플랫폼이 글과 영상을 지우도록 몰아간다면 표현의 자유도 무너진다. 정부가 직접 삭제 명령을 내리지 않고 민간기업이 알아서 국민의 입을 막게 한다면 검열을 외주화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치적 결론부터 정한 뒤 관계부처 협의와 법률상 절차를 뒤따라 붙이는 행정도 마찬가지다. 절차는 정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권력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설치한 제동장치다.
표를 가볍게 여기고, 입을 막으며, 절차를 건너뛴 권력이 헌법 수호를 말하고 개헌을 말한다.
도둑에게 자물쇠 설계를 맡길 수는 없다.
헌법을 고칠 자격은 헌법을 지킨 사람에게 있다. 현행 헌법에 규정된 국민주권과 기본권, 권력분립과 적법절차조차 지키지 않는 권력이 새 헌법을 쓰겠다는 것은 헌법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으로 들리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편리한 권력의 규칙을 다시 만들겠다는 말로 의심받을 뿐이다.
개헌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진실을 공개하라.
국민 특검을 받아들여라.
책임자를 법정에 세워라.
국민 특검은 국민의 마지막 경고다.
국민이 아직 법과 제도 안에서 진실을 밝히고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경고다. 수사하고, 기록을 공개하고, 잘못한 자에게 책임을 물으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이 마지막 제도적 요구마저 걷어찬다면 권력은 국민에게 더 거친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4·19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폭발이 아니었다. 부정선거를 바로잡으라는 국민의 요구를 권력이 외면하고 거짓으로 덮었을 때, 주권자가 헌법을 배신한 권력을 끌어내린 사건이었다.
국민이 헌법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헌법을 되찾은 것이었다.
지금도 국민은 묻고 있다.
왜 투표하지 못한 국민이 생겼는가.
누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가.
왜 자료와 영상을 공개하지 않는가.
왜 검증을 요구하는 국민을 음모론자로 몰아붙이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독립적인 특검의 조사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도 끝까지 진실을 감추고 국민의 마지막 경고를 조롱하겠다는 것인가.
제2의 4·19를 보고 싶은가.
국민 특검을 받아들여라.
그것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요구가 아니다. 무너지는 헌정질서를 법과 제도 안에서 붙잡기 위한 마지막 기회다.
그 경고마저 외면한다면 국민은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할 것이다. 기록하고 고발하며, 법정과 광장에서 책임을 묻고, 끝내 선거로 심판할 것이다.
헌법 위에 올라선 권력을 국민의 발아래로 끌어내릴 것이다.
그것은 반역이 아니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헌법 제1조를 현실로 되돌리는 일이다. 헌법을 배신한 권력에 맞서 헌정질서를 지키는 주권자의 저항이다.
헌법아, 미안하다.
너는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는데, 우리는 권력이 너를 짓밟는 동안 너무 오래 침묵했다.
하지만 이제 사과로 끝내지 않겠다.
국민 특검으로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심판하겠다.
국민 특검은 청원이 아니다.
국민의 명령이다.
그리고 국민의 마지막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