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31년 페리클레스가 전몰자들을 위한 추모 연설에서 아테네의 민주정을 찬양하고 있다. 필리프 폰 폴츠의 1842년 작품.
민주주의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가치는 자유이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면 국민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유가 없다면 선거가 존재하더라도 민주주의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러나 자유를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민주주의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민주주의의 자유는 무엇을 뜻하는가? 개인의 행동에 제한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시민이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를 뜻하는가?
고대 아테네에서 자유는 먼저 타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시민의 신분을 뜻했다. 노예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지만 자유 시민은 민회에 참석하고,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며, 공직을 맡을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을 단순히 그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의와 재판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정의하였다. 아테네의 자유는 개인이 국가로부터 멀어지는 권리라기보다, 시민이 공동의 통치에 직접 참여하는 권리에 가까웠다. 시민은 통치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통치에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연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민주정의 원리로 자유와 평등을 들면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어느 한쪽의 지배자가 되지 않고 시민들이 가능한 한 널리 통치에 참여하는 상태를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자유는 공직과 민회와 법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자격이었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이 자기 방 안에서 마음대로 사는 체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공적인 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체제였다.
투키디데스가 전한 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도 연설에도 아테네인이 이해한 자유가 나타난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정치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며, 법 앞에서는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대우받는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아테네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이웃을 지나치게 감시하지 않고 각자의 생활방식을 인정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바로 뒤에서 이러한 사생활의 자유가 시민을 무법자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자유로운 생활과 법에 대한 복종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대목은 민주주의의 자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아테네인에게 자유란 법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유는 시민이 권력에 참여하고,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선택하되, 공동체가 정한 법을 지키는 상태였다. 따라서 자유와 법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법이 시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법은 자유를 파괴하는 장치가 아니라 시민들이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그러나 아테네의 자유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었다. 자유는 모든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의 권리였다. 여성과 노예, 외국인 거주자는 민회와 공직에서 배제되었다.
아테네는 시민 내부에서는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를 실현했지만, 자유를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아테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사회인 동시에 많은 사람을 자유 밖에 놓아둔 사회였다.
또한 아테네 민주주의는 정치 참여의 자유를 중시했지만, 개인의 자유를 다수의 결정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하는 제도를 갖추지 못하였다.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 불경죄와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시민 배심원단의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진 사건은 그 문제를 보여 준다. 재판은 민주적 절차를 거쳤지만, 민주적 절차가 사상과 발언의 자유를 언제나 지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 다수가 결정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정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단적인 민주정에서 자유가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으로 오해된다고 비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민주주의가 자유를 잘못 이해할 위험을 지적하였다. 그는 극단적인 민주정에서 자유가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으로 오해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사는 것을 노예 상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법의 지배가 사라지면 자유로운 시민의 공동체가 아니라 욕망이 큰 사람과 목소리가 큰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 자유주의는 바로 이 약점을 고치려고 하였다. 근대의 자유는 시민이 공동 통치에 참여하는 권리뿐 아니라 국가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를 포함하게 되었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4조는 자유를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리로 규정하였다. 또한 각자의 권리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기준은 다른 사람도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으며, 그 제한은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원칙에서 현대적 자유의 두 조건이 나온다.
첫째, 개인은 국가나 다수가 허락한 범위에서만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국가가 생기기 전부터 자유를 가진 존재로 이해된다.
둘째, 자유에는 경계가 있다. 내 자유는 다른 사람의 생명과 신체, 재산과 명예, 그리고 똑같은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권력자의 기분이나 군중의 분노가 아니라 미리 정해진 법과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종교·언론·출판·집회·청원의 자유를 의회가 침해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같은 원리이다. 수정헌법 제14조는 주 정부가 누구에게서든 생명·자유·재산을 적법한 절차 없이 빼앗거나 법의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민주주의의 자유는 통치자를 선거로 뽑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선거로 뽑힌 권력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을 두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이러한 원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헌법은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거주·이전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규정한다.
특히 헌법 제12조는 법률과 적법한 절차 없이는 국민의 신체를 구속하거나 수색할 수 없도록 하였다. 자유를 국가가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국가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국민의 권리로 규정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단순한 다수결로 해석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여러 정치적 견해의 존재를 인정하며,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정치 질서로 설명하였다.
국민주권과 함께 기본권, 권력분립, 복수정당제가 민주적 기본질서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다수의 결정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다수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 제1호와 제2호를 위헌으로 판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헌법 개정 요구는 국민이 가진 정치적 자유의 핵심인데, 긴급조치는 그러한 반대 의사 자체를 처벌하였다.
당시의 법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권력 비판을 금지하고 정치적 표현을 억압했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자유는 권력에 찬성할 자유보다 권력에 반대할 자유에서 더 분명하게 시험된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폭력으로 타인의 정치 참여를 막거나, 협박으로 침묵을 강요하거나, 재산과 신체를 침해하는 행위까지 자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유를 제한할 때는 그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제한의 범위가 필요한 정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 국가안보와 공공질서는 중요하지만, 그 이름만 붙이면 어떠한 제한도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존립과 관계없는 표현까지 형사처벌하는 확대 적용을 경계한 이유도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자유는 세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진다. 첫째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을 비판할 자유이다. 둘째는 각자가 자신의 삶과 생각을 선택할 자유이다. 셋째는 국가와 다수의 결정으로부터 기본권을 보호받을 자유이다.
고대 아테네는 첫째의 자유를 발전시켰다. 근대 자유주의는 둘째와 셋째를 보완하였다.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이 세 가지 자유를 헌법 안에서 함께 지키려는 제도이다.
따라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같은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누가 권력을 결정하는가를 묻고, 자유는 그 권력이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는가를 묻는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 해도 국민 다수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줄 수는 없다.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도 국민의 양심과 표현, 신체와 재산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로 변할 수 있고, 민주적 통제가 없는 자유는 강자의 특권으로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약속하는 평등은 어떤 평등인가? 모든 사람의 능력과 재산과 결과를 같게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법과 정치 참여의 자격을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인가?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