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시작해 오는 10월25일까지 진행되는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임요희 기자]육중한 유리문이 스르르 열리는 순간, 훅 하고 끼쳐오는 냉기는 단순히 쾌적하다는 표현을 넘어선다. 지친 세포를 깨우는 생명의 공기다.
38℃와 39℃ 사이를 오락가락하더니 드디어 서울에도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본관은 숨 막히는 도심 속 열기 속에서 “여기요, 어서 이리로 대피하시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고향의 산과 바다를 화폭에 담아내다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전신을 감싸고 예술의 향기가 혼탁한 감각을 맑게 씻어낸다. 심지어 전 전시 모두 무료다. 주머니가 가벼운 영혼에게 이보다 우아하고 감각적인 도피처가 있으랴.
주머니가 가벼운 영혼에게 이보다 우아하고 감각적인 도피처가 있으랴. [사진=임요희 기자]
휴가 기간을 맞아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고 있다. [사진=임요희 기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지금 대형 전시가 여러 개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에 시작해 오는 10월25일까지 진행되는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은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유영국미술문화재단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고전으로 진행된다.
화가 유영국(1916~2002)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구체적 재현을 배제하고 순수 추상의 영역을 개척한 1세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힌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공개작을 포함한 회화, 부조, 사진, 드로잉 작품 및 아카이브 170여 점을 선보인다.
그는 한국의 자연을 점·선·면·색채의 기본 조형 요소로 환원하여 독자적인 색면 추상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일제시대와 광복 전후, 구상 회화가 주를 이루던 한국 화단에서 비구상·추상 회화를 시도했으며 동시대 작가들이 서정성을 추구하거나 전쟁의 상흔에 경도됐을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추상 정신을 굳건히 지켰다.
유영국의 고향은 경북 울진이다. 유년 시절 마주한 고향의 푸른 바다와 장엄한 산맥은 그의 화폭에서 기하학적이고 단순화된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산은 그의 내면에 간직된 조형적 본질로 유영국은 한국 국토의 뼈대인 ‘산’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데 몰두했다.
60여 년 유영국 화업 총체적으로 조명
이번 전시는 1935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시작된 추상 미술에 대한 실험부터 생애 후반 심상 추상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의 유영국 화업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한국의 자연을 점·선·면·색채의 기본 조형 요소로 환원하여 독자적인 색면 추상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사진=임요희 기자]
전통적인 회고전 방식이 아닌, 유영국에게 중요했던 1964년을 기점으로 시간을 역행했다가, 다시 순행하는 독특한 시간 여행을 제안한다. 1964년은 49세라는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연 해로 그는 ‘1964년, 예술적 선언’을 통해 그룹 활동보다는 개인전으로만 승부하겠다고 선언한다.
현장에서는 유료 오디오가이드(내레이터 국문 손열음, 영문 피터 빈트) 대여 서비스를 진행하며 로비에서는 판화 액자 및 엽서 판매 코너를 운영한다.
그밖에 2층 상설전시관에서는 ‘천경자,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전을 연중 전시하며, 기획전시관에서는 가나아트컬렉션 ‘기술의 저변: 경계에 선 장면들’을 오는 11월22일까지 운영한다. 2·3층 전시관에서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주년 기념전 ‘사랑의 기원’을 9월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1928년 지어진 등록문화재 건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건축물은 대한제국기인 1928년 벽돌조에 화강암을 섞은 고전주의 양식의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건축됐다. 처음부터 근대적 재판소(평리원)로 사용됐으며 광복 후에도 대법원 청사로서 대한민국 사법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상징인 아치형 현관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사진=임요희 기자]서울시립미술관으로 전환된 것은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뒤인 2002년의 일이다. 건축물의 역사성을 살려 파사드를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미술관 공간으로 리노베이션했다. 특히 건물의 상징인 아치형 현관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담장 없는 개방형 구조로 휴관일에도 시민들이 야외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산책과 휴식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하절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