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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규 칼럼] ‘40년 주기설’을 완성할 6·3잠실혁명
  • 하봉규 교수
  • 등록 2026-08-06 12: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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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공혁명 2개월 만에 검경합수본이 출범하고 특검 합의를 도출해 냈다. Ⓒ한미일보

국제정치학자 조지 모델스키(George Modelski) 교수는 국제정치의 장주기이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1500년 이후 근대화 500년의 국제관계의 변화를 분석한 끝에 ‘70년 주기설’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폴 케네디), ‘경제강대국흥망사’(찰스 킨들버거)외 함께 큰 주목을 끌었다.

모델스키의 이론을 지도자론에 대입시키면 소위 40년 주기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하는 데도 장기사이클론을 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40년 주기설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애굽(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민족해방의 대장정에 나선다.

이스라엘 민족은 패권국 애굽의 방해를 무릅쓰고 여러 번의 이적으로 홍해를 건너 가나안에 이른다. 그러나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광야를 떠돈 시간은 물경 40년에 이른다. 심지어 지도자 모세는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유업을 넘기게 된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지도자가 나라를 이끈 기간은 결코 길지 않다. 로마의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재위 기간도 41년에 불과하다. 지도자와 수명을 고려하면 40년 주기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예외적으로 프랑스의 루이14세(72년)와 청나라 강희제(61년) 정도가 장기집권을 했지만 일반적인 예는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2세)가 29년이고, 알렉산더는 13년에 머물고,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불과 5년에 불과했다. 동양에선 징기스칸이 21년, 진시황이 36년을 집권했다. 

반면 카이사르의 체제는 500년에 이르고, 징기스칸의 제국과 한나라·당나라 등 중국의 왕조들도 수백 년을 지속했다. 이것은 왕조가 갖는 전통 덕분이다.

리더십의 40년 주기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각 건국과 조국 근대화를 관통하는 전반기 40년과 민주화(87체제·6공화국)로 특징되는 후반기 40년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한국의 전반기 40년은 소위 전후 탈식민지 국가들의 공통, 즉 민족해방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한다. 티토(유고), 케냐타(케냐), 니에레레(탄자니아) 등이 대표적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여기에 속한다. 

1948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의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여러 번 위기에 처하는데 주변국인 소련과 중국이 북한과 함께 거대한 공산주의벨트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나이 70이 된 이승만 박사의 독립국가를 향한 장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것이었다. 1925년 창당된 조선공산당은 민족해방운동으로 뿌리를 내렸고, 분단과 함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한반도에는 빈곤, 문맹과 함께 테러가 만연했다. 그러나 일제 초기부터 일찌감치 민족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이승만 박사는 건국에 성공한다. 

건국 2년이 안 되어 발발한 6·25는 한반도 최대의 위기이자 기회였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마침내 한미동맹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때 발발한 5·16군사혁명은 가히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일제시대와 두 번의 대전쟁(태평양전쟁, 6·25)을 겪은, 5000년 역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세대들이 주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들이 △이병철(1910·삼성) △정주영(1914·현대) △박정희(1917·대통령) △최형섭(1919·과학자) △김학렬(1923·관료) △신격호(1921·롯데) △박태준(1927·포철) 등으로 군인, 기업인, 과학자, 관료가 결합된 기적의 팀 빌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의 조합은 박 대통령의 유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조국 근대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건국과 조국 근대화로 압축되는 위대한 시대는 민주화의 도래와 함께 리더십, 질서와 성장이 사라지는 새로운 현상(한국병), 소위 ‘승자의 저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능하고 반역적인 양 김(김영삼·김대중)이 반국가활동을 민주화로 대체시킨 탓이기도 했다. 국가 지도력이 총체적으로 사라지고 이와 함께 지성과 교양, 역사와 가치마저 사라진 것이다. 

민주화 초기부터 나타났던 ‘한국병’은 30년이 경과하자 사회 전반에 좌파가 득세하고 마침내 정치계마저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는 김대중이 도입했던 전자개표제(2002)를 시작으로 사전투표제(2012)에 이른 ‘부정선거’가 결정적이었다. 

선관위는 행정과 사법을 결합시킨 예외적 조직으로, 여론조사에서 전자조작에 이르는 직·간접 개입으로 ‘좌파 우위’의 선봉장이 되었다.

올공(올림픽공원)혁명 2개월 만에 검경합수본이 출범하고 특검 합의를 도출해 냈다. 이미 투표율 전산조작이 이번 지선(2026)뿐 아니라 지난 대선(2025)과 총선(2024)에서도 발각되었으며 미증유의 선거부정 폭로가 예고되고 있다. 

참정권 침해에서 시작된 운동이 진상규명, 선관위 해체, 재선거, 정권교체, 개헌에 이르는 자유민주 회복의 대장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도 40년 주기설에 해당된다. 


◆ 하봉규 교수

부경대학 명예교수. 헤리티지 코리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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