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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山칼럼ㅣ종북좌파 80년사] ㉞1990년대 대학가 주사파 잔존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19 18: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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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직은 사라지고 습관은 남다

1991년 전대협 5기 출범식 1990년대 대학가는 1980년대처럼 매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거리가 함성으로 뒤덮이는 공간은 더 이상 아니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학생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약화되었고,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는 이념적 충격을 더했다. 

그럼에도 캠퍼스 내부를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난 정치적 탈색과는 다른, 은밀하면서도 지속적인 조직 문화와 활동 방식이 상당 기간 이어졌다. 

주사파(NL·민족해방 계열)를 중심으로 한 운동권은 공개적인 거리 투쟁에서 물러났지만, 학생회를 매개로 한 선후배 연결망과 토론·독서 중심의 교육 체계는 대학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신입생이 입학하면 가장 먼저 접하는 조직이 학과 학생회와 총학생회였다. 오리엔테이션(O.T.)과 MT(회원훈련)는 단순한 친목 도모의 장이 아니라, 학생회 활동을 홍보하고 신입생을 조직망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학교생활 안내와 함께 학생회 소개가 이루어지며, 자연스럽게 사회문제·통일·노동·역사 관련 강연과 토론이 병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행사들은 겉으로는 ‘대학 생활 적응’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특정 이념적 관점을 주입하고 후배를 조직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많은 대학에서 학생회는 등록금 문제, 교육 정책, 노동 현안, 국가보안법 폐지, 남북통일 등을 주요 의제로 삼아 활동을 전개했으며, 이는 1980년대 운동권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대학마다 운영되던 사회과학 서클과 학회 역시 중요한 이념 전파 공간이었다. 경제학, 정치학, 철학, 현대사 관련 서적을 공동으로 읽고 토론하는 모임은 대학의 정상적인 학술 활동으로 보였지만, 일부 서클에서는 주사파 계열의 특정 관점을 중심으로 도서를 선정하고 선배가 후배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방식이 지속되었다. 

‘선배가 읽은 책을 후배가 다시 읽고, 그 후배가 다음 세대를 가르친다’는 순환 구조는 하나의 조직 문화로 굳어졌다. 학생회실과 동아리방은 단순한 휴게 공간을 넘어 집회 준비, 대자보 작성, 학내 현안 토론, 각종 회의의 중심지였다. 

컴퓨터와 프린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직접 손으로 대자보를 쓰고 유인물을 제작하는 광경이 흔했다. 학교 게시판에는 등록금 인상 반대, 교육 정책 비판, 노동 문제,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 운동 관련 찬반 대자보가 나란히 붙어 여론 형성의 장이 되었다.

총학생회 선거 분위기도 지금과 크게 달랐다. 후보들은 복지 공약뿐 아니라 교육 정책, 사회 현안, 통일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발표해야 했고, 선거 기간 동안 합동토론회와 유세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회 노선을 둘러싼 ‘권(운동권)·비권’ 경쟁이 치열했으며, 선거 결과에 따라 학생회의 활동 방향이 크게 좌우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학생회를 단순한 자치 기구가 아닌, 운동권 조직의 기반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1990년대 대학가의 잠재된 긴장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1996년 연세대 사태였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주도한 제7차 범민족대회 및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준비 과정에서 학생들과 경찰이 대규모로 충돌했다. 

1996년 8월13일부터 20일까지 연세대 신촌캠퍼스가 사실상 시위 농성장으로 변하면서 캠퍼스는 다시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섰다. 경찰은 6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진압에 나섰고, 수천 명의 학생이 연행되는 등 대규모 충돌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학생운동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급변시켰으며, 과격한 투쟁이 더 이상 민주화 운동의 연장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대학가 분위기는 더욱 급격히 변화했다.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정부의 대응이 강화되었고, 1998년 5월 대법원은 한총련 제5기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판단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한총련은 공개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고, 대학 학생회들도 거리 투쟁보다는 학교 내 복지와 생활 문제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했다.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학생들의 관심은 혁명이나 이념 투쟁에서 영어 공부, 자격증 취득, 공무원 시험, 유학 준비로 급속히 이동했다. 

학생회 선거 공약에서도 등록금·장학금 지원, 취업 프로그램, 도서관·기숙사 개선 등 실생활 복지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과거 정치 구호가 중심이었던 선거가 이제는 행정 능력과 공약 실현 가능성을 평가하는 실용적 경쟁의 장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운동권 문화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대학에서는 사회과학 서클과 통일 관련 행사, 노동 현장 방문, 국가보안법 폐지 토론회가 여전히 이어졌으나, 참여 인원은 1980년대나 1990년대 초반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학생사회 중심도 점차 비운동권 학생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의 성격 역시 변모했다. 과거 ‘학생운동 조직의 기반’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축제 운영, 복지 사업, 취업 지원, 학사 제도 개선을 담당하는 학생자치기구로서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정치적 성향보다는 실무 능력과 공약 구체성이 중시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학생회 선거의 양상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그러나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이 남긴 문화적·조직적 습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선후배 중심의 위계적 운영 방식, 장시간 회의 문화, 대자보와 집단 토론을 통한 여론 형성, 조직적 동원 능력 등은 대학 사회 곳곳에 잔존했다. 

조직 자체는 쇠퇴했지만, 조직을 운영하고 사람을 결집시키는 ‘습관’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이는 한 시대 학생운동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자, 이후 한국 사회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고방식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대학가는 운동권 전성기의 종언과 동시에 새로운 세대로의 과도기였다. 거리의 함성은 잦아들었고, 학생운동은 이전의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민주화 진전, IMF 경제 위기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대학가는 탈정치화의 길을 걸었지만, 1980년대에 형성된 조직 문화와 사고 습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그 연속성과 단절이 공존했던 시대, 그것이 1990년대 대학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주사파 잔존의 본질이었다. 조직은 눈에 띄지 않게 사라졌으나, 그 습관은 캠퍼스 안팎에서 오랫동안 이어지며 한국 현대사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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