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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청군과 싸웠어도 132년 뒤 후손에게 수당을 줬을까?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26 11: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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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가 1894년 동학난 참여자의 유족에게 정기수당을 지급한다. 도내 유족 723명에게 1인당 연 120만 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132년이 지난 2026년에 지방정부가 당시 참여자의 후손에게 세금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가정을 해보자. 1894년 동학군이 일본군이 아니라 청나라 군대와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고 하자. 탐관오리의 수탈에 저항하고 폐정개혁을 요구했으며, 외국군의 개입에 맞서 싸우다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나머지 조건은 같다. 그랬다면 오늘날에도 지방정부가 그 후손을 찾아 정기수당을 지급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반사실적 질문은 오늘날 동학난을 바라보는 역사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심리적 기저에 오랫동안 축적된 반일정서다.

동학난을 처음부터 항일전쟁으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1894년 1차 봉기의 직접적인 배경에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을 비롯한 지방행정의 폐단이 있었다. 동학군은 전주성을 점령하고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었다. 

이후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조선 내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2차 봉기의 성격이 달라졌다. 일본군을 몰아내자는 목표가 전면에 등장했고, 동학군은 공주 우금치 등에서 일본군과 정부군에 맞서다 패배했다.

동학난에는 농민봉기, 동학이라는 종교적 결집, 폐정개혁 요구, 외세에 대한 저항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런데 2026년 대한민국이 이 여러 요소 가운데 어떤 부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항일’은 막강한 정치적·사회적 상징성을 갖는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항일이라는 평가가 붙으면 국가적 기념과 교육, 추모사업의 주요 대상으로 올라선다.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사람들을 기리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기념을 넘어 4대, 5대에 이를 수도 있는 후손에게 경제적 혜택을 제공한다면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선조의 명예를 기리는 것과 그 공적을 후손의 경제적 권리로 전환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조선에 군사·정치적으로 개입했던 외국은 일본만이 아니었다. 임오군란 이후 청은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정치와 외교에 깊숙이 관여했다. 위안스카이 역시 조선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청의 내정간섭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기간과 방식, 결과가 다르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인의 역사기억 속에서 두 나라의 개입이 현저하게 다른 온도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볼 문제다.

동학군이 청군과 싸우다 대규모 희생을 치렀다면 오늘날 지방정부가 ‘항청투쟁의 역사적 정신을 계승한다’며 후손들에게 정기수당을 지급했을까? 정치권이 132년 전 항청투쟁 참가자의 후손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회적 호응을 얻었을까?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이 차이에는 한국 사회의 강한 반일심리가 작용한다고 필자는 본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비판하는 것은 역사적 평가다. 그러나 과거 일본에 대한 비판이 현대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확장되고, 다시 국내 정치와 예산정책의 명분으로 활용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반일은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서 사용하기 편리한 동원 수단이었다. 일본에 강경하면 애국으로 인정받기 쉽고, 한일관계에서 현실적인 협력을 주장하거나 일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친일’이라는 공격을 받기 십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현재의 한일관계는 구별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문제가 수시로 뒤섞였다. 과거사에 대한 견해가 현재의 정치적 정체성을 판별하는 잣대로 사용되는 현상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역사적 감정이 재정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면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방정부가 사용하는 돈은 주민이 납부한 세금이다. 따라서 누구에게 왜 지급하는지에 대해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왜 132년 전 동학난 참여자의 후손에게 지금 정기적으로 돈을 지급해야 하는가? 유족의 범위는 몇 대까지인가? 시간이 더 흘러도 계속 지급할 것인가? 다른 시대의 민란이나 외세와의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의 후손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국가다. 조상의 잘못을 이유로 후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조상의 공적이 제한 없이 후손의 경제적 권리로 세습되는 것 역시 당연한 원칙일 수 없다. 국가유공자 보훈처럼 법률에 따라 특별한 희생과 공헌을 인정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만큼 새로운 후손 지원제도를 만들 때는 그 대상과 기간, 형평성에 더욱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동학난의 역사적 의미를 연구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과 후손에게 정기수당을 지급하는 일도 구별해야 한다. 사료를 발굴하고 기념관을 운영하며 학술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역사 보존의 영역이다. 특정 집단의 후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재정정책이다. 후자에는 역사적 감동보다 형평성과 일관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 기준을 확인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역사적 상대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된다.

"일본군이 아니라 청군이었다면 어땠을까?"

상대가 일본에서 청으로 바뀌는 것만으로 지원의 당위성이 약해진다면 그 정책에는 보편적인 역사평가 외에 다른 요소가 개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항일’에 다른 역사적 저항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해 온 한국 사회의 기억정치가 그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은 사실대로 비판하면 된다. 동학군의 희생 역시 사료에 따라 평가하면 된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와 현재의 재정적 권리는 구별해야 한다. 과거 일본과 싸웠다는 사실만으로 한 세기가 훨씬 지난 후손에게까지 특별한 경제적 권리가 발생한다면 그 기준이 다른 역사적 사건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적대감을 대물림하는 것은 다르다.

동학군이 일본군이 아니라 청군과 싸웠어도 132년 뒤 그 후손에게 수당을 지급했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우리가 검증해야 할 것은 1894년의 역사만이 아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역사정책과 정치문화 속에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반일심리 역시 검증대에 올려놓아야 한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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