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사진=연합뉴스]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장면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압수수색은 무엇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최근 한미일보에 대한 압수수색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기사 내용의 진위도,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도 아니다. 쟁점은 그보다 훨씬 앞에 있다.
명예훼손 수사에서 언론사를 상대로 한 압수수색이 어떤 절차적 판단을 거쳐 허용됐는가, 그리고 그 판단이 헌법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했는가다.
명예훼손 수사, 어디까지가 절차인가
우리는 압수수색이라는 법적 행위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수사는 필요할 수 있고, 법은 집행돼야 한다. 그
러나 그 법적 행위가 발동되기까지의 절차가 충분히 엄격했는지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언론사 압수수색은 단순한 수사 기법을 넘어선 의미를 가진다.
명예훼손은 전형적인 표현 범죄다.
허위성, 고의성, 사회적 평가 저하라는 핵심 구성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성립한다.
이 요건들은 사후에 맞춰보는 장식이 아니라, 강제수사 여부를 가르는 출발선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요건에 대한 구체적 소명 없이, 표현의 존재만을 근거로 언론사 압수수색이 가능해진다면, 이는 ‘먼저 강제수사, 나중에 요건 확인’이라는 위험한 전도를 낳는다.
문제는 개별 사건의 유·무죄가 아니라, 그 판단에 이르기 전 단계에서 ‘절차적 제동 장치가 작동했는가’이다.
징벌적 제재가 앞당겨질 때 벌어지는 일
이 질문이 더 무거워지는 이유는 곧 시행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때문이다.
개정안은 고의·중과실을 전제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다. 형식은 민사이지만 효과는 제재적이다.
이 제도가 현행 수사 관행과 결합될 경우, 수사 착수와 압수수색 자체가 곧바로 막대한 민사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증은 뒤로 밀리고, 제재의 위력은 앞으로 당겨진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보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환경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사례는 중요한 비교 기준이 된다.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이 원칙적으로 민사 영역에 속하며, 언론 보도를 이유로 한 형사 수사나 언론사 압수수색은 사실상 상정되지 않는다.
1980년 제정된 프라이버시 보호법(Privacy Protection Act)은 언론인의 취재·편집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소환장 방식만을 허용한다.
이는 언론이 더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의 국가 개입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제도화된 결과다.
실제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언론사에 대해 압수수색이 집행된 사례는 미국의 판례와 관행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번에 집행된 압수수색이 지금은 한미일보만의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절차의 문턱이 낮아진 구조는 특정 언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앙지든 지역지든, 대형 언론이든 1인 매체든, 권력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동일한 위험 구간에 들어간다.
문제는 보도의 수위가 아니라 절차의 기준이다. 이 기준이 흐려질수록 언론은 감시자가 아니라, 위험 없는 정보만 전달하는 확성기로 기능하게 된다.
말하지 않게 되는 자유의 시작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검열이 아니다. 기사 삭제 명령도, 사전 검열도 없다.
말할 자유는 형식적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말했을 때 감당해야 할 비용이 개인과 조직의 한계를 넘는 순간, 침묵은 자발적 선택으로 포장된다.
헌법이 가장 경계해 온 위축 효과가 제도적으로 고착되는 지점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민주주의는 외형을 유지한 채 기능을 잃는다. 토론은 사라지고, 시민은 판단의 근거를 잃는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강화된 제재가 예정된 사회에서, 언론을 향한 강제수사가 어떤 절차적 기준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지를 지금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말할 권리는 남아 있으되,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사회는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2월 3일 집행된 한미일보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준항고 절차를 밟으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개별 언론의 이해관계를 넘어, 명예훼손 수사에서 언론사를 향한 강제수사가 어떤 절차적 한계와 기준 아래 통제돼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시도다.
이러한 기준을 지금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주체가 아니라 위험 없는 정보만 전달하는 역할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압수수색은 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절차가 헌법적인지에 대한 물음은, 지금 이 시점에서 반드시 답해져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공론화가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