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IA 신고 준비 완료!”… 서버까 핵폭탄급 선언, ‘벽돌 투표지’ 묵인 의혹 선관위원장 대상
접힌 흔적이 전혀 없어 ‘벽돌 투표지’로 불리는 가짜 의심 투표지를 정상적인 투표지로 묵인한 의혹과 관련된 현직 법관 겸 선거관리위원장들이 일제히 미국 정부에 고발당할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서버까국민운동본부(서버까) 주최로 서울역 광장에서 21일 열린 부정선거 규탄 집회에서 장재언 박사와 이상로 평론가는 ‘벽돌 투표지’를 정규 투표지로 처리한 의혹과 관련된 선관위원장 15명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신고한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1933년 5월10일 밤, 독일 베를린 오페라광장에서는 대규모 도서 소각이 벌어졌다. [사진=홀로코스트 뮤지엄]
글을 쓰는 손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붙들렸던 시대가 실제로 존재했다. 문장이 화형대에 올려졌고, 인쇄 허가가 통제되었으며, 발표 여부가 정치적 충성의 지표로 판단되던 시기가 있었다.
토마스 만을 불태운 독일 나치
1933년 5월10일 밤, 독일 베를린 오페라광장(오늘날의 베벨광장)에서는 대규모 도서 소각이 벌어졌다. 대학생과 나치 조직원들은 “비독일적 정신”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책을 불태웠다.
그 불길 속에는 토마스 만, 지그문트 프로이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저작이 있었다.
같은 해 9월, 나치 정권은 제국문화회의(Reichskulturkammer)를 설치해 문학·출판·연극·영화·언론을 등록제로 묶었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활동할 수 없었다. 사상이 행정 절차로 관리되었다.
그 결과 공적 영역에서 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글은 자취를 감추었다. 남은 것은 체제의 구호를 반복하는 글과 침묵이었다.
독일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세계적 철학과 과학을 배출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몇 년 사이 공론장은 단일한 음성으로 수렴되었다. 다양한 견해가 충돌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반박은 불가능했다. 복잡한 현실은 단순한 도식으로 정리되었고, 인물은 영웅과 배신자 양자로 나뉘었다.
소련의 공식 창작 원칙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련에서도 비슷한 전개가 있었다. 1932년 4월, 당은 기존 문학·예술 단체를 해산하고 통합 조직을 만들라는 결의를 내렸다. 이어 1934년 제1차 작가대회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창작 원칙으로 채택되었다.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막심 고리키.
창작은 현실을 탐구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가 규정한 방향으로 현실을 묘사하는 일이 되었다. 안나 아흐마토바는 오랫동안 발표가 제한되었고, 그의 시는 인쇄 대신 암송과 필사로 전해졌다. 오시프 만델슈탐은 1938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환승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 사례들은 억압의 강도만 보여주지 않는다. 더 깊은 문제는 사고의 위축이었다. 필자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계산했다. 어디까지가 허용되는지, 어떤 표현이 안전한지, 어떤 주제가 위험한지 끊임없이 가늠했다.
그리고 다루지 않는 영역이 점점 늘어났다. 불편한 통계는 인용되지 않았고, 불리한 자료는 뒷켠으로 밀려났다. 학문은 안전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사회적 압력이 자기 검열 초래
통제는 노골적이지 않았다. 출판 허가, 직업적 불이익, 사회적 낙인은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압력으로 기능했다. 외부의 감시가 내부의 자기 억제로 이어졌다. 말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 생각하지 않는 영역이 생겼다. 사유의 근육은 사용되지 않으면서 약해졌다.
반대로, 공개적 논쟁이 허용된 공간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1787년부터 1788년 사이, 미국에서는 헌법 비준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The Federalist Papers’는 익명으로 발표되었고, 곧 반대 진영의 반박이 뒤따랐다. 신문과 팸플릿은 상반된 주장으로 채워졌다. 그 과정에서 권력 분립과 견제 장치가 구체화되었다. 충돌은 있었지만, 그 충돌은 제도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영국에서도 1695년 사전 검열 체제가 약화된 이후 언론 활동의 범위가 넓어졌다. 정부는 불편함을 겪었지만, 다양한 견해가 공론장에서 경쟁했다. 오류가 드러났고 정책은 수정되었다. 논쟁은 소음을 만들었지만, 그 소음은 공동체가 스스로를 교정하는 과정이었다.
사유의 통로가 좁아질수록 공동체의 판단 능력은 약해졌다. 반대 의견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잘못된 정책이 교정되기 어려웠다. 다양한 생각이 충돌할 수 있었던 공간에서는 비판이 경고 장치로 기능했다.
글은 개인의 취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스스로를 점검하는 장치다. 이 장치가 봉쇄되면 공동체는 자신의 오류를 발견할 힘을 잃는다. 필자가 두려움 속에서 문장을 세우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의심할 능력을 상실한다.
다양한 생각 말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는 다양한 생각이 말해질 수 있어야 한다. 불편한 주장도 반박과 함께 등장해야 한다. 필자는 외부의 허락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 글을 써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체면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적 건강과 직결된 조건이다.
문장을 붙드는 손이 사라질 때, 탐구와 반박과 수정이 가능해진다. 통제는 겉으로 질서를 만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사고를 빈약하게 만든다. 열린 환경은 때로 혼란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 논증이 단단해진다. 사유의 통로가 열려 있을 때 공동체는 더 멀리 내다본다. 그 조건이 유지될 때, 글은 비로소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역사심리학 해설서 ‘신화가 된 조선’(2026)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