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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리포트] 호르무즈 이후, 전쟁은 어디로 가는가- 2부
  • 김영 기자
  • 등록 2026-03-31 12: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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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멈춘 것처럼 보이는 전쟁, 그러나 선택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이 전쟁은 왜 다르게 보이는가

 

1장 전쟁은 왜 시작됐는가

2장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

3장 왜 전쟁은 멈춘 것처럼 보였나

4장 핵시설은 왜 남겨졌나

5장 같은 전쟁, 다른 계산

6장 협상은 무엇을 바꾸는가

7장 협상이 깨지는 순간

8장 3막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9장 전력망 타격의 의미

10장 정유·에너지 시설은 왜 다음 목표가 되는가

11장혁명수비대는 무엇을 선택하나

12장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무엇을 얻는가

13장 미국이 말하는 승리란 무엇인가

14장 결론 — 이 전쟁은 어디서 끝나는가


프롤로그

 

이번 전쟁은 이상하게 보인다. 강한 공습이 있었지만 곧바로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았고, 핵시설이 전쟁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한 번에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가지도 않았다.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멈추지 않았고, 협상이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다음 단계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전쟁이 계속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끝을 향해 가고 있는가의 문제다.

 

이 리포트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전쟁은 지금 시작됐는가, 왜 멈춘 것처럼 보이는가, 왜 핵시설은 남겨졌는가, 그리고 협상과 3막 사이에서 실제로 남아 있는 선택지는 무엇인가. 


겉으로는 두 갈래처럼 보이지만, 전쟁은 언제나 남은 선택지의 수만큼만 움직인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은 바로 그 선택지가 빠르게 줄어드는 과정이다.



5장. 같은 전쟁, 다른 계산


목표가 같아 보여도 끝은 다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제거를, 미국은 관리를 본다

전쟁의 속도는 이 차이에서 갈라진다


이번 전쟁을 겉으로만 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같은 편이고,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두 나라 모두 이란의 핵 문제를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이란의 군사적 행동 반경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전쟁의 목표가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출발점은 비슷하지만 끝내려는 지점이 다르다.


이스라엘의 계산은 비교적 단순하다.


핵 위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협이며, 따라서 가능한 한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에게 핵 문제는 협상 가능한 위험이 아니라, 늦추거나 없애야 할 위험이다. 실제 사용 여부보다 “언젠가 쓸 수 있는 상태” 자체가 안보 환경을 바꾼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은 가능성까지 포함해 위협을 줄이거나 없애는 쪽에 무게를 둔다.


이런 태도는 과거 행동에서도 반복됐다. 1981년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 2007년 시리아 핵시설 공습은 모두 완성 이전 단계에서 가능성을 제거하려는 접근이었다. 


전쟁을 길게 끌기보다, 위험이 완성되기 전에 직접 행동으로 차단하는 방식이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태도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반면 미국의 계산은 좀 더 복합적이다.


미국도 이란의 핵 능력 확대를 용인할 수는 없지만, 전쟁 이후의 질서와 비용까지 함께 계산해야 한다. 이란을 얼마나 약화시킬 수 있느냐 못지않게, 그 이후 중동 질서를 어느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제거보다는 관리, 종결보다는 통제 가능한 마무리에 더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이 차이는 전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위협의 시간 자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에, 더 빠르고 더 직접적인 선택을 선호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속도를 조절하며 군사·외교·시장 반응을 함께 보려 한다. 


이스라엘이 “지금 없애야 한다”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면, 미국은 “지금 어느 수준까지 밀어야 가장 유리한 결과를 얻는가”를 따지는 태도에 가깝다.


핵시설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여기서 나온다.


이스라엘은 핵시설이 존재하는 한 언제든 재가동과 재무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반대로 미국은 핵시설을 남겨둔 채 핵물질 회수, 사찰 복원, 기능 제한이라는 방식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경우 핵시설은 ‘반드시 파괴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관리와 검증을 위한 협상 자산으로 남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다.


같은 전쟁 안에서 두 개의 시간표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시간은 더 짧고, 미국의 시간은 더 길다. 이스라엘은 위협의 발생 가능성 자체를 앞당겨 계산하고, 미국은 위협의 관리 가능성과 이후 비용까지 함께 계산한다. 이 차이는 전쟁의 속도, 범위, 끝내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이번 전쟁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단일 전선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두 개의 다른 계산이 동시에 흐른다. 하나는 가능성을 제거하려는 시간표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를 관리하려는 시간표다. 


지금까지 전쟁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조절되는 듯 보였던 이유도, 이 두 계산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차이가 어느 순간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협상이 살아 있고 군사 압박이 관리 가능한 수준에 머무를 때는 미국식 접근이 우세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고, 협상이 실질적 결과를 내지 못하며, 이란의 핵 능력이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면 이스라엘식 판단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전쟁의 속도와 범위는 지금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전쟁은 단순히 “같은 편이 함께 싸운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같은 위협을 보지만, 같은 결말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커질수록, 전쟁은 다시 새로운 선택의 압박을 받게 된다.


여기서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협상은 실제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협상은 어느 지점까지 현실적인 선택지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2005년에 촬영한 이란의 이스파한 핵시설. [사진=AP 연합뉴스]  


6장. 협상은 무엇을 바꾸는가


협상은 전쟁의 반대가 아니라 연장선이다

파괴보다 회수와 검증이 더 큰 결과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협상의 존재가 아니라 성립 조건이다


전쟁이 일정 단계에 들어서면 반드시 협상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대전에서 협상은 전쟁이 실패했을 때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이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때 더 자주 등장한다. 이번 전쟁도 그렇다. 


협상은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라, 전쟁이 만들어내려는 결과를 정치적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 가깝다.


이 점에서 협상은 단순한 휴전 논의와 다르다. 


이번 전쟁에서 협상이 의미를 가지려면 적어도 세 가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핵물질 문제, 사찰 문제, 그리고 제재 문제다. 특히 핵시설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선택이 유지된다면, 전쟁의 성과는 결국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남기며, 그것을 누가 검증하느냐”의 문제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물질 처리다.


핵시설은 남아 있더라도, 고농축 우라늄과 같은 핵심 물질이 제거되거나 통제되면 위협의 성격은 달라진다. 미국 입장에서 핵심은 이란이 “당장 전환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 점에서 핵물질 회수는 단순한 상징 조치가 아니라, 가장 실질적인 성과가 될 수 있다. 


시설을 남겨두더라도 물질이 빠지면 속도는 늦춰지고, 위험은 줄어든다.


그러나 회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상태가 다시 뒤집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여기서 국제 사찰이 들어온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같은 외부 검증 장치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협상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판단하는 핵심 장치다. 


과거 2015년 이란 핵합의 역시 핵심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사찰과 검증을 통해 약속의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데 있었다. 합의는 문장보다 검증 체계로 유지된다.


이 지점에서 미국이 협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그림도 어느 정도 선명해진다.


핵시설을 전면 파괴하지 않고도, 핵물질을 통제하고 사찰을 복원하며 일정 수준의 제재 조정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것은 점령보다 비용이 적고, 전면 타격보다 정치적 부담이 낮다. 동시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전쟁이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결과 확보를 위한 수단이라면, 협상은 가장 현실적인 종결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 때문에 협상은 지금도 충분히 살아 있는 선택지다.


미국이 지상군 투입을 원하지 않고, 이란도 체제 붕괴를 감당할 수 없으며, 사우디를 포함한 주변국도 장기 불안을 원하지 않는다면, 협상은 자연스럽게 남는다. 


유가와 금융시장 역시 장기 불확실성보다 관리 가능한 긴장 완화를 선호한다. 이런 조건들을 종합하면, 협상은 단지 이상적인 해법이 아니라 실제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협상의 어려움도 시작된다.


협상은 가능하다는 것과 성립한다는 것이 다르다. 채널이 열려 있고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합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협상이 성립하려면 각자가 내놓을 수 있는 것과 내놓을 수 없는 것이 정리돼야 한다. 문제는 이번 경우, 양측 모두 자신이 양보하기 가장 어려운 것을 핵심 조건으로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 입장에서 핵은 단순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 체제 안전장치에 가깝다.


핵 프로그램을 지나치게 많이 내주면 외부 압박을 막을 마지막 장치가 약해진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은 군사 행동까지 감수한 이상, 눈에 보이는 결과 없이 멈추기 어렵다. 


단순한 긴장 완화나 선언적 합의만으로는 정치적 성과를 설명하기 힘들다. 한쪽은 안전장치를 지키려 하고, 다른 한쪽은 가시적 성과를 원한다. 이 충돌이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결국 협상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전쟁이 만들어낸 압박을, 어느 수준의 거래로 바꿀 수 있느냐의 문제다.


협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 협상이 실제로 문서가 되고, 검증되고, 유지되기까지는 훨씬 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협상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협상은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느냐다.


핵물질 회수와 사찰, 제재 조정과 체제 보장 사이에서 어느 균형점이 만들어질 수 있느냐가 이후 전쟁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다음 질문이 생긴다.


협상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 협상을 깨뜨릴 수 있는가.


전쟁의 다음 단계는 협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협상이 더는 버티지 못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란 부셰르 원전 [사진=EPA 연합뉴스]


 7장. 협상이 깨지는 순간


협상은 말이 아니라 조건으로 유지된다

버티는 협상과 성립하는 협상은 다르다

세 가지 균형이 무너지면 다음 단계가 열린다


협상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실제로 유지될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상대에게 “지금 멈추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협상이 깨지는 순간은 대화가 중단되는 순간이 아니라, 협상을 지탱하던 조건이 먼저 무너지는 순간에 가깝다.


지금까지 전쟁이 멈춘 것처럼 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사 행동은 계속됐지만, 동시에 “아직은 거래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매우 불안정하다. 일정한 균형 위에 서 있고, 그 균형이 무너지면 협상은 형식만 남는다. 겉으로는 대화가 계속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더 이상 협상이 아니게 된다.


첫 번째 균형은 핵물질 처리와 체제 안전 사이의 균형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긴장 완화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성과다. 핵물질 회수, 농축 제한, 국제 사찰과 같은 조치가 없다면 전쟁의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 이란 입장에서는 이 지점이 체제의 마지막 안전장치와 맞닿아 있다. 너무 많이 내주면 버티는 이유가 사라지고, 너무 적게 내주면 미국이 멈출 수 없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협상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두 번째 균형은 해협의 불안정성과 유가의 한계선이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군사 문제이면서 동시에 시장 문제다. 해협이 완전히 막히지 않더라도, 불확실성이 반복되면 유가와 보험료, 운송 비용은 빠르게 반응한다. 


문제는 이 불안정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미국도 “협상 기다리기”를 계속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군사적 타격의 목적이 행동 제한이라면, 해협 리스크가 계속 커지는 상황은 현재 방식이 충분히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순간, 협상의 시간은 짧아진다.


세 번째 균형은 군사 압박의 효과와 시간의 관계다.


지금까지의 공습과 제한적 타격은 상대의 선택지를 줄이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상대의 핵심 능력이 유지되고, 해협 변수도 살아 있으며, 협상 역시 가시적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면 현재의 압박 방식은 설득력을 잃는다. 


실제로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도 초기 공습만으로는 충분한 효과가 나오지 않자 NATO는 전력망과 산업 인프라로 목표를 확대했다. 같은 방식이 더 이상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순간, 전환은 불가피해진다.


이 세 가지—핵물질 처리의 난항, 해협 불안정의 누적, 군사 압박 효과의 한계—가 동시에 겹칠 때 협상은 가장 위험해진다. 


하나만으로는 버틸 수 있다. 두 개가 겹쳐도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그러나 세 개가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하면, 협상은 더 이상 출구가 아니라 지연 장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협상을 계속할 이유”보다 “다음 단계를 준비할 이유”가 더 커진다.


중요한 것은 협상이 깨지는 방식도 점진적이라는 점이다.


대개 사람들은 협상 결렬을 하나의 사건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르다. 먼저 신뢰가 약해지고, 그다음 조건의 차이가 커지며, 마지막에야 형식이 무너진다. 


즉, 협상은 회담장이 비기 전에 이미 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 다시 커지는 것은 대화가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대화가 더 이상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전쟁은 다시 방향을 묻는다.


더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수단으로 결과를 만들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부터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핵시설 전면 타격은 여전히 부담이 크고, 지상군 투입은 현실성이 낮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전쟁은 이때부터 더 이상 처음의 전쟁이 아니다. 협상이 버티지 못하는 순간, 전쟁은 다른 얼굴을 갖기 시작한다.


이제 다음 단계는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협상이 무너진 뒤 전쟁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왜 그 방향이 가장 현실적인지의 문제만 남는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3월30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 와중에도 지상군 투입을 검토하는 것은 협상 실패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연합뉴스]


8장. 3막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협상이 멈추면 전쟁은 다른 목표를 찾는다

할 수 없는 선택이 늘수록 남는 선택은 좁아진다

3막은 과격한 결심이 아니라 남은 경로다


전쟁의 3막은 어느 날 갑자기 열리는 새로운 전쟁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시작된 전쟁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는 결과를 만들지 못할 때, 남아 있는 수단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다음 국면에 가깝다. 


겉으로 보면 협상 실패 뒤 강경파의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 단계에서 이미 조건이 쌓여 있다. 3막은 의지보다 제약의 산물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무엇이 배제되는가이다.


핵시설 전면 타격은 군사적으로 상상할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로는 크게 제한된다. 이미 운용 중인 농축 시설을 강하게 공격할 경우 방사능 확산, 국제적 비난, 이후 외교 공간의 붕괴까지 함께 감당해야 할 수 있다. 


핵시설은 중요하지만, 바로 그 중요성 때문에 언제나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목표가 되지는 않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칠 수 있다”와 “쳐야 한다” 사이의 간극은 더 커진다.


지상군 투입도 마찬가지다.


군사적으로는 가능한 시나리오라도, 정치적·경제적 비용은 지금의 미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에 매우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시작일 뿐이고, 점령 이후의 통치와 치안, 재건과 철수는 훨씬 더 큰 부담을 만들어낸다. 이 경험 이후 미국이 장기 점령을 동반하는 전쟁을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따라서 지상군은 위협일 수는 있어도 현실적 수단으로는 계속 뒤로 밀린다.


이렇게 되면 남는 선택지는 의외로 많지 않다.


핵시설은 마지막까지 남겨야 하고, 지상군은 사실상 배제된다면, 전쟁은 결국 상대의 ‘기능’을 흔드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전력망과 정유·에너지 인프라, 통신과 지휘를 지탱하는 연결 체계다. 이것들은 핵시설처럼 국제적 재난을 동반하지 않으면서도, 체제 전체의 작동 능력을 빠르게 약화시킬 수 있다

.

이러한 방식은 낯설지 않다.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NATO는 세르비아의 군사시설뿐 아니라 전력망과 산업 인프라까지 공격 범위를 넓혔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도 초기 공습의 중요한 목표는 단순한 군사시설 파괴가 아니라, 지휘·통신·전력 체계를 흔들어 대응 능력을 마비시키는 데 있었다. 


현대전에서 체제를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방식은 수도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전쟁의 성격은 분명히 달라진다.


1막이 군사 능력의 제한이었다면, 3막은 국가 기능 자체에 대한 압박이다. 이는 더 이상 “어디를 얼마나 때렸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지금 상태로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는 뜻이다. 


군사시설만 타격할 때와 달리, 전력과 에너지, 통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전쟁은 사회 전체의 시간표를 바꾼다. 체제 내부의 비용이 외부 충격보다 더 커지는 구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3막이 반드시 곧바로 총력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3막도 여전히 “점령 없는 강제”라는 문법 안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들어가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흔들어 스스로 결론을 바꾸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3막은 전쟁의 포기가 아니라, 전쟁의 목적을 더 직접적으로 밀어붙이는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3막은 과격한 결단이라기보다, 다른 선택이 약해질수록 더 현실적으로 떠오르는 경로다.


협상이 실질적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해협 불안정이 누적되며, 현재의 군사 압박만으로는 상대의 판단을 바꾸기 어렵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전쟁은 자연스럽게 더 깊은 압박 수단을 찾게 된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전력망과 에너지, 그리고 지휘 체계를 흔드는 방식이다.


결국 3막은 “원래부터 원했던 전쟁”이라기보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열리는 전쟁”에 가깝다.


그래서 이 단계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다. 이미 배제된 선택지들이 많아질수록, 남아 있는 길은 더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길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다음 장에서 더 또렷해진다.


왜 하필 전력망인가. 왜 핵시설보다 전기가, 미사일 기지보다 에너지 인프라가 더 중요해지는가.

 

정전이 발생하자 가게 앞에 앉아 있는 이란 주민들 . [사진=EPA 연합뉴스]


9장. 전력망 타격의 의미


전기는 군사보다 먼저 국가를 움직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비가 더 큰 압박이 된다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 가장 직접적인 결과를 만든다


전력망은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한 단계 깊어지는 순간, 전력은 군사시설보다 먼저 중요한 목표가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군사력은 국가 기능의 일부지만, 전력은 그 국가 기능 전체를 떠받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전기가 멈추는 순간 군사 기지 하나가 아니라 산업, 통신, 행정, 금융, 교통, 의료, 일상생활이 동시에 흔들린다. 전력망은 전쟁의 ‘배경’이 아니라, 현대 국가가 버티는 조건 그 자체다.


이 때문에 전력망은 군사적 효과와 정치적 효과를 동시에 갖는다.


군사적으로 보면 전력은 통신과 지휘, 탐지와 대응, 생산과 보급의 속도를 결정한다. 전기가 불안정해지면 방공망과 감시 체계, 지휘부의 연결 능력도 함께 흔들린다. 민간용 전력과 군사용 전력은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부 거점만 흔들어도 전체 체계의 반응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즉, 전력망 타격은 단순히 ‘불을 끄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속도를 늦추는 방식이다.


정치적으로는 더 직접적이다.


미사일 기지가 파괴되더라도 일반 시민은 그 영향을 바로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정전은 다르다. 도시는 곧바로 반응한다. 냉방이 멈추고, 통신이 불안정해지고, 교통 체계가 흔들리며, 병원과 공장과 학교가 동시에 압박을 받는다. 


체제는 군사적 피해보다 일상적 불만의 축적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력망은 “보이지 않는 군사시설”이 아니라, “가장 먼저 체감되는 체제의 약점”이 된다.


과거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NATO는 세르비아의 발전 시설과 송전 체계를 반복적으로 공격했다. 당시 목적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었다. 산업 생산과 행정 기능을 동시에 흔들고, 국민이 체제의 비용을 직접 느끼게 만들려는 의도가 컸다. 


2003년 이라크전 초기 공습에서도 지휘통신과 전력 체계가 함께 타격되면서, 대응 능력은 군사적 손실 이상으로 빠르게 약화됐다. 현대전에서 전력은 표적이기 전에 ‘결과를 앞당기는 매개’로 사용돼 왔다.


전력망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연결성’에 있다.


미사일 기지나 레이더 기지는 개별 표적이지만, 전력망은 하나의 시설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발전소, 변전소, 송전선, 제어 체계가 연결돼 있어 일부만 흔들어도 연쇄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전력망 타격은 동일한 군사 자원으로 더 넓은 범위의 마비를 만들 수 있는 목표가 된다. 가장 적게 때려 가장 크게 흔드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또한 전력망은 핵시설과 달리 정치적 부담의 성격이 다르다.


핵시설 공격은 방사능이라는 국제적 재난 가능성을 동반한다. 반면 전력망은 민간 피해의 문제는 분명 존재하지만, 군사·행정 기능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공격 논리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전력망을 “위험하지만 선택 가능한 목표”로 만든다. 다시 말해, 핵시설은 너무 중요해서 쉽게 못 치고, 전력망은 충분히 중요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칠 수 있는 목표가 된다.


이 지점에서 전력망은 단순한 인프라가 아니라 협상을 대신하는 압박 장치가 된다.


핵심은 상대를 바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지금 상태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핵시설을 남겨둔 채 전력을 흔들면, “핵은 남아 있지만 체제가 버티지 못하는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협상은 더 이상 추상적 선택이 아니라, 현실적 출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전력망 타격이 3막에서 특히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의 경우 이 효과는 더 클 수 있다.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대도시권은 인구 밀집도가 높고, 행정과 금융, 정치 기능이 집중돼 있다. 전력 불안정은 단순한 생활 불편을 넘어 행정 마비와 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여름철 냉방 수요와 산업용 전력 수요가 겹치는 시기라면, 단기적 충격도 훨씬 크게 체감될 수 있다. 전기가 흔들리는 순간, 군사 전선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 전체가 전쟁에 편입된다.


결국 전력망은 3막의 상징이 아니라 실질이다.


군사시설만으로는 부족하고, 핵시설은 당장 치기 어렵고, 지상군은 배제된다면, 남는 수단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만드는 것이 전력망이다. 


이것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다. 남은 선택지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체제 전체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더 좁아진다.


3막이 열릴 경우, 단순히 전기가 끊기는 데서 끝나는가. 아니면 그 다음, 즉 에너지 생산과 수출 자체를 흔드는 단계로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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