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 중인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자신에게 필요한 무죄추정, 상대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향해 “기본적 상식”을 말했다.
가자 구호선단 나포 사건을 두고 “거기가 이스라엘 영해냐”, “최소한의 국제규범도 어기고 있다”, “법이고 자시고 기본적 상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몰아붙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까지 언급하며 “우리도 판단해보자”고 했다.
해외에서 한국 국민이 억류됐다면 정부가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영사 조력을 하고, 석방을 요구하고, 부당한 처우가 있었다면 항의해야 한다. 국민 보호는 대통령의 책무다.
그러나 국민 보호와 법리 단정은 다른 문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억류 국민 보호를 넘어 이스라엘의 해상 봉쇄, 공해상 나포, 가자전쟁의 성격, 네타냐후 총리의 형사책임 문제까지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국무회의는 토론 방송이 아니다. 대통령의 말은 외교부 논평보다 무겁고, 때로는 공식 문서보다 빠르게 상대국에 전달된다.
상식으로 법리를 덮을 수 없다
가자 구호선단 나포 문제는 “이스라엘 영해냐” 하나로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해상 봉쇄가 적법하게 선포됐는지, 구호선단이 사전 경고를 받았는지, 실제로 봉쇄를 위반하려 했는지, 나포 이후 억류자 처우가 적절했는지를 나눠 봐야 한다.
해상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 원칙을 정리한 전문가용 문서인 샌레모 매뉴얼도 봉쇄 위반 또는 위반 시도 선박의 포획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상식”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와 법리를 분리해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을 비판할 수 있다.
가자지구 군사작전과 민간인 피해, 구호 접근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큰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국제법을 말하려면 더 정확해야 한다. 국민 보호를 말하려면 더 정교해야 한다.
분노가 앞서면 외교는 원칙이 아니라 감정이 된다.
확인보다 빠른 분노
이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발언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는 앞서 가자전쟁 과정의 민간인 피해 문제를 홀로코스트와 병치하는 듯한 발언으로 이스라엘 외무부의 반발을 산 바 있다.
홀로코스트는 단순한 전쟁 피해가 아니다. 나치 독일이 국가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한 유대인 절멸 범죄다. 그런 역사적 범죄를 현재의 가자전쟁 피해 문제와 쉽게 병치하는 순간, 발언은 인도주의 비판을 넘어 역사 인식의 문제로 번진다.
문제는 이스라엘 비판의 방향이 아니라, 그 비판의 언어가 역사적 맥락과 사실관계를 견디지 못했다는 데 있다.
스타벅스 사건도 같은 흐름에 있다.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두고 논란이 제기됐지만, 논란의 상당 부분은 확인된 의도보다 해석의 확장에 가까웠다.
특히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탁 치니 억”과 연결한 것은 확인된 사실이라기보다 의미 덧씌우기였다.
상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장면을 설명하는 문구일 수 있는 표현을 다른 역사 사건의 기억과 연결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해석을 사실처럼 전제했다.
스타벅스코리아를 향해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행태”라고 비판했고, 도덕적·행정적·법적·정치적 책임까지 언급했다.
대통령의 말은 소비자 불매 게시글이 아니다.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향해 “저질 장사치”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권력의 낙인이 된다.
캄보디아 발언 논란도 같은 계열에 놓인다.
이 대통령은 캄보디아 온라인 스캠 범죄와 관련해 “한국인을 건들면 패가망신”이라는 취지의 문구를 크메르어로까지 병기해 SNS에 올렸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초국가범죄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는 한국 교민과 기업인, 선교사, 유학생, 장기 체류자가 있다. 범죄조직을 겨냥한 표현이라 해도 상대국 사회에는 모욕적 경고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고, 그 부담은 현지 교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국민 보호를 말하면서 정작 현지 국민의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행위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무호엔 신중, 이스라엘엔 격앙
나무호 사건과 비교하면 이 선택적 언어는 더 선명해진다.
호르무즈 해역에서 한국 선박 나무호가 피해를 입었을 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이라고 공개 지목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곧바로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공격 주체 특정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고, 정부는 현장 조사와 정보 검토를 앞세웠다.
그 신중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국제분쟁에서 증거 없이 공격 주체를 특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문제는 왜 그 신중함이 이스라엘 앞에서는 사라졌느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특정했을 때도 한국 정부는 단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자 구호선단 사건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제법 위반 여부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ICC 체포영장 문제까지 한꺼번에 꺼냈다.
나무호에는 팩트체크를 요구하던 정부가, 이스라엘에는 팩트체크보다 분노를 먼저 내놓은 것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상식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확인한 뒤 도달하는 기준인가, 아니면 분노를 먼저 정해놓고 사후에 붙이는 명분인가.
무죄추정은 선택할 수 없다
여기서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질문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향해 “상식”을 말했지만, 그 자신도 형사재판의 당사자다. 공직선거법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무죄 원심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서도 제3자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당사자다.
그렇다고 지금 이 대통령을 “범죄자”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다. 확정판결 전까지 무죄추정 원칙은 적용돼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대통령 역시 타국 정상에 대해 체포영장 단계만으로 범죄자처럼 호명해서는 안 된다.
ICC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체포영장은 유죄 확정이 아니다.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혐의에 대한 사법 절차의 한 단계일 뿐이다.
같은 원칙은 국내 정치에도 적용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찍부터 ‘내란’으로 규정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내란 수괴’, 관련 세력을 ‘내란범’ 또는 ‘내란 세력’으로 불러왔다.
그러나 내란죄는 형사재판의 확정판결을 통해 최종 판단되는 범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심 절차를 밟고 있다 해도, 확정판결 전이라면 엄밀한 표현은 ‘내란 혐의 피고인’ 또는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항소심 피고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국내 정치에서 확정 전 낙인을 ‘상식’처럼 사용해 왔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이번 발언은 돌출 발언이 아니라, 그들이 익숙하게 써온 정치 언어가 외교 무대로 번진 장면일 수 있다.
대통령은 활동가의 대변인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종 책임자다. 활동가는 신념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국가는 법리와 국익으로 움직여야 한다.
활동가는 봉쇄를 돌파하려 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 결과를 감정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을 확정판결 전 범죄자로 부를 수 없다면, 그 역시 남을 확정 전 범죄자처럼 불러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확정판결 전 내란범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체포영장 단계만으로 전쟁범죄자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법치는 내 편에게만 주는 예우가 아니다. 가장 불편한 상대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법치다.
상식은 상대에게 던지는 말이기 전에, 자기 언어를 먼저 검증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확인보다 선택적 분노가 앞서는 순간, 상식은 법치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의 감정이 된다.
이스라엘에 상식을 말하기 전에, 대통령 자신의 언어부터 법치의 상식 위에 서야 한다.
센레모 매뉴얼
샌레모 매뉴얼은 조약이나 국내법처럼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문서가 아니라, 1994년 국제인도법연구소(IIHL)가 정리한 해상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의 현대적 재진술·전문가 매뉴얼이다. 국제 인도법 데이터베이스(ICRC)도 이 매뉴얼의 목적을 “해상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의 현대적 재진술”이라고 설명한다. 본 매뉴얼과 해설서는 모두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되었으며, 제목은 "해상 무력 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에 관한 산레모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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