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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문학의 세계와 사상’ ⑫정의의 자동 호출
  • 松山 작가
  • 등록 2026-05-21 21: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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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이 영화로 만든 ‘삼포 가는 길’ [사진=한국영상자료원]문학은 사람을 가르칠 때 교과서처럼 가르치지 않는다. “이게 옳다” “저건 나쁘다” 하고 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보여 준다. 사람을 등장시키고, 한쪽은 울게 하고, 한쪽은 때리게 한다. 그러면 독자는 생각하기도 전에 누가 착한지, 누가 나쁜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를 느낀다. 

 

이것이 문학이 누르는 가장 강한 버튼 ‘정의의 자동 호출’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아직 다 알지 못한다. 그런데 벌써 판정부터 내린다. “저 사람은 불쌍하다” “저 인간은 나쁘다” 생각보다 심리적, 감정적 판정이 먼저 나온다.

 

‘생각’보다 빠른 ‘심리적’ ‘감정적’ 판정


이 버튼은 아주 빠르게 눌린다. 문학은 독자가 오래 따지지 못하게 만든다. 먼저 마음을 움직이고, 찬찬히 따지기 전에 이미 한쪽에 서게 만든다. 그래서 문학은 생각을 가르치기 전에 반응을 길들인다. 독자는 스스로 판단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많은 경우 작품이 먼저 눌러 놓은 버튼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이 힘은 한국 소설에서 아주 강하게 보인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영달, 정씨, 백화라는 인물이 나온다. 

 

공사판을 떠돌던 노동자 영달과 정씨는 가진 것이 거의 없다. 백화는 술집에서 도망쳐 나온 여자다. 이 셋은 눈 덮인 길을 함께 걷는다. 이야기는 길지 않다. 그런데 독자는 아주 빨리 이 셋의 편에 선다. 왜 그런가? 이들은 가난하고, 떠돌고, 지쳐 있고, 갈 곳이 없다. 

 

작품이 이 셋을 먼저 약한 사람으로 놓으며 독자는 그다음부터 자동으로 이 셋을 감싸게 된다. 영달이 거칠게 말해도 이해하게 되고, 정씨가 툴툴거려도 안쓰럽게 보고, 백화가 울면 곧바로 마음이 기운다. 독자는 이 셋이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다 모르는데도 벌써 편을 정해 버린다.

 

반대로 이 셋을 밀어낸 세상은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벌써 차갑고 나쁜 것으로 보인다. 공사판, 술집 주인, 도시의 질서, 돈의 세계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도 이미 매정한 것으로 읽힌다. 작품은 설명보다 배치를 먼저 한다. 가난한 사람 셋을 앞에 세우고, 그들을 밀어낸 세상을 뒤에 놓는다. 독자는 생각보다 먼저 판정을 내린다. 이것이 정의의 자동 호출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 버튼을 더 강하게 누른다. 난장이 아버지, 어머니, 영수, 영호, 영희. 이 가족은 키 작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난한 삶을 버틴다. 집은 철거 대상이고, 동네는 밀려나고, 가족은 쫓겨난다. 

 

독자는 소설을 읽자마자 난장이 가족 편에 선다. 그들은 가난하고, 작고, 밀리고, 당한다. 반대로 재개발 업자, 회사, 제도, 도시 권력은 거의 자동으로 차갑고 잔인한 쪽으로 읽힌다. 여기서 독자는 복잡한 경제 구조를 배우지 않는다. 

 

재개발이 왜 생겼는지, 도시가 왜 커지는지, 산업화가 왜 그렇게 거칠었는지 길게 따지지 않는다. 먼저 드는 생각은 “저 가족은 불쌍하다” “저 사회는 너무하다”뿐이다. 작품은 바로 이 빠른 판정을 노린다.

 

이 소설이 강한 이유는 독자를 생각하게 만들기 전에 이미 화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난장이 가족이 쫓겨나는 장면을 읽으면 독자는 먼저 분노한다. 그리고 나서 이유를 찾는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먼저 옳고 그름이 정해지고, 나중에 설명이 붙는다. 이것이 문학의 무서운 힘이다.

 

약한 자는 무조건 피해자라는 도식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처음 읽으면 대부분 한병태 편에 선다. 서울에서 온 학생 한병태는 시골 학교에서 엄석대라는 반장을 만난다. 엄석대는 교실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 아이들을 줄 세우고, 선생 앞에서 점수를 따고, 아이들 위에 군림한다. 


독자는 엄석대를 보자마자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 한병태는 약하고, 낯설고, 외롭다. 그래서 자동으로 피해자가 된다. 반대로 엄석대는 힘이 있고, 교실을 장악하고, 남을 움직인다. 그래서 자동으로 가해자가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이 흥미로운 까닭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엄석대는 분명 교실 권력자다. 그런데 그 교실 아이들도 엄석대에게 기대어 편하게 살았다. 아이들은 억눌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엄석대 질서 안에서 자기 몫을 챙겼다. 

 

여기서 독자는 처음 내린 판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그냥 “엄석대는 독재자, 한병태는 저항자”로 끝낸다. 작품은 복잡한 질문도 던졌지만, 독자는 가장 빠른 도덕 버튼만 누르고 끝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게 빠른 판단의 문제다. 문학은 더 깊은 질문을 던졌는데, 독자는 제일 쉬운 판정만 가져간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도 대표적이다. 장 발장은 빵 한 조각 훔쳤다가 감옥에 간다. 이 첫 장면에서 독자는 이미 장 발장 편이다.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친 사람. 이 설정 하나로 독자는 바로 움직인다. 반대로 장 발장을 끝까지 쫓는 자베르 경감은 법을 지키는 경찰인데도 차갑고 무서운 사람으로 읽힌다. 

 

왜 그런가. 장 발장은 배고픈 사람이고, 자베르는 쫓는 사람이다. 독자는 법 이전에 배고픔을 먼저 본다. 장 발장은 죄인인데도 먼저 불쌍하고, 자베르는 공권력인데도 먼저 매정하다. 작품은 이 버튼을 정확히 누른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독자는 사람을 보기 전에 자리를 먼저 본다. 가난하면 선할 것 같고, 힘이 있으면 의심부터 하게 된다. 노동자는 먼저 옳아 보이고, 사장은 먼저 나빠 보인다. 학생은 먼저 피해자로 읽히고, 경찰은 먼저 가해자로 읽힌다.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나중이다. 먼저 자리가 판정을 끝낸다.

 

이 점은 신경숙의 ‘외딴방’에서도 잘 보인다. 여공으로 일하는 어린 여성의 눈으로 공장과 도시를 본다. 독자는 주인공이 얼마나 어린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먼저 본다. 그러면 공장은 자동으로 차갑고, 기계는 잔인하고, 어른들은 무심하게 보인다. 공장이 왜 돌아가야 했는지, 산업이 왜 그렇게 컸는지는 뒤로 밀린다. 독자는 먼저 소녀의 피곤함에 붙잡힌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세상을 그 눈으로만 읽게 된다.

 

좋은 문학은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방식은 사람을 빨리 움직이게 한다. 빨리 울고, 빨리 화내고, 빨리 편을 들게 한다. 그래서 강하다. 하지만 빠른 판단에는 늘 빠지는 것이 있다. 앞뒤 사정과 책임의 크기다. 누가 무엇을 왜 했는가다. 문학은 독자를 먼저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너무 빨리 움직인 독자가 그 뒤를 안 본다는 데 있다.

 

정의를 빨리 부르는 사람은 멋져 보인다. 불의 앞에서 바로 화내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누른 정의 버튼은 자주 거칠다. 약자는 늘 옳고, 강자는 늘 나쁘다는 식으로 굳어지기 쉽다. 그러면 사람을 이해하는 힘은 줄고, 사람을 재빨리 분류하는 습관만 남는다.

 

문학은 독자를 깊게 만들 수도 있고, 성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좋은 문학은 처음 눌린 도덕 버튼을 나중에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왜 이 사람 편에 섰지, 왜 저 사람을 미워했지, 혹시 너무 빨리 판단한 건 아닐까 하고 다시 묻게 만든다. 반대로 얕은 문학은 처음 눌린 버튼을 끝까지 흔들지 않는다. 독자를 계속 화나게 하고, 계속 울리며, 계속 한쪽만 보게 만든다.

 

문학이 무서운 까닭은 여기 있다. 사람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끝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남는 것은 줄거리보다 반응이다. 누가 울면 먼저 약자로 보고, 누가 명령하면 먼저 악으로 보는 습관이 남는다. 책은 끝났는데 버튼은 남는다. 문학은 바로 그 버튼을 심는 기술이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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