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 보고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발표가 선거용 안보 메시지라는 의심을 받는 이유는 핵잠 자체가 불필요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시점과 내용이다.
정부는 6·3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사흘 앞둔 26일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을 공개했다. 북한의 잠수함 기반 핵·미사일 위협, 수중 킬체인, 자주국방, 한미동맹, 방위산업을 한꺼번에 묶어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핵잠 설계의 출발점인 연료 조달 방식과 원자로 성능은 아직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이날 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진해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대한민국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을 보고했다.
정부는 이 사업을 ‘장보고 N 사업’으로 명명하고,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 2030년대 후반 전력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핵연료는 농축도 20% 미만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고, 핵연료 교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장주기 운전이 가능하도록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내에서 개발·건조하고, 한국의 원자로와 조선 기술을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내세운 1차 명분은 북한 위협이다. 안 장관은 핵추진잠수함이 북한의 잠수함 기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핵심 전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디젤잠수함보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북한 잠수함 전력을 감시·추적할 수 있어 수중 킬체인 구현에 기여한다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핵잠을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건조하게 될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외형상으로는 장기 안보 구상이다. 그러나 선거 막판이라는 시점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이 메시지를 꺼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을 피하기 어렵다.
핵잠의 핵심은 선체가 아니라 연료와 원자로다.
어떤 농축도의 우라늄을 어떤 형태와 밀도로 쓰느냐에 따라 원자로 출력, 노심 크기, 차폐 구조, 선체 배치, 재장전 주기, 작전 지속능력이 달라진다.
정부가 밝힌 “20% 미만 저농축우라늄”은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늄을 쓰지 않겠다는 비확산 기준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한국형 핵잠의 실제 성능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저농축우라늄이라도 농축도와 연료 밀도, 장주기 운전 수준에 따라 잠수함의 전술 전개 능력은 크게 달라진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공동 설명자료)가 중요하다.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이 조선 프로젝트의 요건을 진전시키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고, 그 대상에 “연료 조달 경로”를 포함했다. 즉 미국이 핵잠 건조의 문은 열었지만, 핵연료 조달 방식까지 공개적으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의 “국내 건조”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주국방을 말하려면 핵잠의 심장인 연료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법적 틀에서 공급할 것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정부도 저농축우라늄 확보와 관리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조치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핵잠 연료 문제가 국내 기술 선언만으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라 한미 협의와 국제 비확산 체계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임을 보여준다.
기존 전력과의 비교도 필요하다.
정부가 북한 잠수함 감시·추적과 수중 킬체인을 명분으로 삼았다면, 한국이 이미 보유한 장보고-Ⅲ 계열 잠수함으로는 무엇이 부족한지 설명해야 한다.
한화오션이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제시한 KSS-III CPS는 연료전지 AIP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3주 이상 잠항하고 7000해리 이상 항해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어뢰, 기뢰,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 운용 능력과 수직발사체계도 제시돼 있다.
도산안창호함도 최근 캐나다 입항 과정에서 약 두 달 동안 1만5000km를 항해하며 태평양을 횡단했다. 이는 한국의 디젤·AIP 잠수함이 이미 상당한 원거리 전개 능력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핵추진잠수함이 기존 전력보다 우월한 장기 잠항·지속 고속 기동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핵잠이 저농축우라늄 기반의 어떤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지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면, “북한 위협 대비”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핵잠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정부가 말한 한국형 핵잠이 기존 장보고-Ⅲ 전력보다 무엇을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느냐다.
지속 고속 추적 능력인지, 장기 은밀 감시 능력인지, 원양 전개 능력인지, 수중 킬체인의 실시간성을 높이는 능력인지가 제시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발표는 이 차별성보다 “핵잠”, “북한 위협”, “자주국방”이라는 정치적 상징을 먼저 앞세웠다.
시점도 의심을 키운다. 발표일인 5월 26일은 6·3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사흘 앞둔 날이다.
사전투표는 선거일 전 5일부터 이틀간 실시된다. 선거 막판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회의에서 핵잠, 북한 위협, 자주국방, 전작권 회복을 한꺼번에 언급했다면, 이는 단순한 국방 행정 일정으로만 보기 어렵다.
장기 국방계획이더라도 발표 방식과 시점에 따라 선거정치의 언어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핵잠은 필요할 수 있다. 북한의 SLBM 위협과 주변국 해군력 증강을 고려하면 한국도 수중 작전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필요성의 문제와 발표 시점의 문제는 다르다.
연료 조달 방식도, 원자로 성능도, 기존 전력 대비 우위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투표 사흘 전 핵잠 카드를 꺼냈다면, 그것은 국방정책이면서 동시에 선거 막판 안보 프레임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자주국방은 구호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핵잠의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핵잠의 심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미국의 건조 승인은 있었다. 그러나 연료 조달 경로는 여전히 한미 후속 협의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북한 위협 대응이 명분이라면 기존 전력으로는 부족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자주국방이 명분이라면 연료 조달의 미국 의존 구조를 설명해야 한다.
정부가 이 두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면, 이번 핵잠 발표는 완성된 군사기술 계획이 아니라 선거 막판에 꺼낸 안보 카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